비평을 시작하기 전에 우선 제가 진산의 사천당문이 저급의 소설이라 판단 해 비평을 시작한 것이 아님을 말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오히려 사천당문을 매우 즐겼고, 제 취향에 맞았다는 주관적 관점을 제외하더라 해도 사천당문이 좋은 필력과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객관적 장점을 가지고 있음은 사천당문을 읽으신 대부분의 독자분들이 동의하실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다만 당연스럽게도 사천당문또한 단점이 있을 것이란 사실은 부정할 수 없고, 저는 이 비평을 통해 그 부분을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사천당문은 당문이 가주와 적통들 전원이 사고로 사망한다는 사상최대의 위기를 겪은 후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가주의 딸이자 유일한 적통인 당군명은 여성이기에 적법한 가주가 될 수 없으며, 외성 항렬의 남편들을 가진 당문의 여자들은 그 점을 이용해 피와 철로서 음모를 꾸밉니다. 사천당문은 그 모든 이야기를 세심한 내면 묘사와 흡입력 있는 스토리로 비극적일만큼 무미건조하게 풀어냅니다.
하지만 중반부로 가면서부터 얘기는 달라집니다. 물론 재미는 여전히 있고 필력도 여전합니다. 다만 애자라는 자객이 당군명을 노리는 부분은 분명 제대로 짜인 부분이라 할 수 없습니다.
스포일러 조심!!
애자는 귀독문이라는 당문의 오랜 주적의 호법으로서 암살을 전문한 자입니다. 그는 당군명이 당문 내부의 음모에 의해 불합리한 과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 강호행을 시작하자 그녀를 암살하기 위해 보내졌었습니다. 그는 귀한 독물들을 풀어내며 당군명을 공격했고, 애자는 그녀를 순식간에 죽일 수 있을만한 막강한 무력을 보여줍니다. 위기 조성이지요. 과연 당군명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까요?
정답은 ’헤쳐나가지 않는다‘ 입니다. 당군명은 무력한 모습만을 보여주며 위협에 대해 효과적인 대응은 단 하나도 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 위기는 ‘우연찮게’ 근처에서 모임을 가지던 십대고수들이 개입하며 해결됩니다. 스토리의 중심 위기를 우연으로 해결한다는 것이 그전까지의 잘 짜인 스토리텔링으로 만들어졌던 몰입감을, 다른 분들은 모르겠지만 저는 매우 해친다고 받아들였었습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그 십대고수들은 이왕 등장시켰으니 캐릭터 설명도 시켜야겠다라는 작가의 마음이 뻔히 드러나는 방식으로 등장 후 설명되었고, 주인공에 대한 흥미진진한 위협을 갑작스러운 설정놀음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 부분은 저의 주관적 비평이니 넘어간다고 해도, 십대고수들의 캐릭터도 잘 잡힌 것 같지 않다는 것은 부정하기 힘들 것 같습니다. 예를 들자면 암살자 십대고수인 명제. 아마 그가 십대고수인 명제라는 부연설명이 없었다면, 저는 그를 살인이라는 것을 멋지고 쿨한 것이라 생각하는 자아도취에 빠진 중학교 2학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였습니다. 참고로, 십대고수는 모두 연륜이 깊은 자들입니다. 일부를 발췌해보겠습니다.
"오지 않으신 두 분 중에 한 분은 바로, 자객의 왕이라 불리는 명제(命帝), 그 어르신이시지요. 그리고 다른"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문영의 말을 자른 목소리는 뜻밖에도 땅 속에서 들려왔다. 그것도 애자가 앉아 있는 그 나무 바로 밑의 땅 속이었다.
"내가 바로 명제다. 그러나 나는 여기 와 있다."
애자가 흠칫 어깨를 떨었다. 죽음의 신이 바로 밑에 와 있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도 역시 살기 넘치는 자객, 그대로 기가 죽지는 않았다.
"명제 선배께서 제 밑에 계신 것은 저를 위협하기 위한 것입니까?"
"난 위협하지 않아. 죽일 뿐이야"
솔직히 말해 이 장면에서 명왕은 유치하게도 나는 이런 것도 할 수 있다면서 자랑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난 위협하지 않아. 죽일 뿐이야.‘ 이 대사는 심지어 유아스럽기까지 합니다. 다른 십대고수들도 비슷한 자세를 취합니다. 십대고수들중 한명인 용왕이 그 전에 나와가지고 매우 잘 짜인 캐릭터성과 연륜을 보여줬었기에 그 아쉬움은 다 간절하게 다가옵니다.
애자는 십대고수들에게 오랜 은원에 감놔라 배놔라 간섭 하지 말라는 주장을 펼쳐 다시 싸움을 재개합니다. 또다시 다가온 당군명의 위험! 과연 그녀는 어떤 지혜를 뽑아내 이 싸움을 이겨낼까요? 정답은 역시나 ‘이겨내지 않는다’입니다. 이름모를 죽립을 쓴 남자가 나타나자 애자는 무서워하며 도망갑니다.
정리하자면, 당군명에게 위험이 다가왔으나 완벽한 우연으로 그 위험은 사라졌고 유치하게 짜인 캐릭터 설명 후 위험은 다시 시작되었으나 다시 한번 완벽한 우연으로 그 위험이 끝납니다. 장면의 시작부터 끝까지 당군명은 그전까지 보여왔던 생동감과 존재감을 깍아먹기만 할 뿐 존재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이것 외에도 자잘한 불만점들이 있지만 그것들은 순수한 주관이라 적지 않겠고, 한가지 더 비평하자면 소설의 후반부 마지막이 매우 아쉽고 불만족스럽게 끝납니다. 스포일러라 더 이상은 말해드리지 못하겠고 직접 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마치자면, 사천당문은 매우 훌륭한 소설입니다. 훌륭한 소설이 되기 위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가지고 있지요. 다만 중반으로 가면서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플롯은 중구난방스럽게 끝을 맺었고, 플롯의 중요한 부분들중 일부를 우연에 맡겼습니다. 소설이 훌륭했기에 오히려 그런 부분들이 더 큰 아쉬움으로 다가왔습니다. 뭐, 완벽한 소설은 있을 수가 없겠지요.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요. 제 부족한 비평을 읽어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드리며, 좋은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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