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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표무적을 읽고.

작성자
Lv.3 비진립
작성
04.04.05 21:56
조회
1,820

누군가를 지켜준다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하물며 혈육도 아닌 생면부지의 다른 사람을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지켜내야

만 하는, 그래서 힘들고도 어려운 일이 남을 보호하는 입장에 선 사람들이다.

헌데, 그 더럽게 힘든 보표의 업(業) 중에서도 하루에도 수차례씩 담벼락이 닳도록

넘어오는 목 도둑놈들과 멀쩡한 성찬에 독을 싸재끼는 버르장머리없는 놈들을 열렬

한 추종자로 둔 무림의 큰 주인을 경호하는 재수 오지게 없는 인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우이 였다.

아무리 소박할지라도 사람의 꿈이 뜻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그건 이미 이 세상이 아

닐 것이다.

그래서 여기 두부처럼 물렁한 성격을 지닌 청년도 당연히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

다. 돌아보니 절세미녀요 휘두르면 추풍낙엽 이지만 정작 자신이 바라는 소탈한 삶

은 얻지 못한 청년. 열병처럼 솟은 살업에 대한 죄의식에 의를 쫒아 머물던 곳을 뛰

쳐 나왔지만 안위를 찾아 정착한 곳에서도 인연을 따라 강호의 피바람은 이어지고

결국 청년은 다시 검을 부여잡았다. 취중에 깨어나 돌아보니 집 안 똥간에 자빠져

있던 인간.

그가 또 우이 였다.

다루기 힘든 생선재료같은 보표라는 직업의 표현, 어설프게 다듬었다간 목에 콱 걸

려 고생하기 쉬운 그 가시같은 현실풍자의 대입, 진지함과 경박함이 빠르게 교차하

는 등장인물둘의 별난 성격 등등.. 특별히 이거다 할 만한 특징없는, 이름없는 들풀

과 같은 문체지만 그 줄기를 끌어올리면 따라 올라오는 실한 알감자 군(群)처럼 툭

툭 튀어나오는 작은 이야기들의 군집체. 이것이 보표무적을 정의하는 나만의 평가다

솔직히 나같으면 출판사 사장이 선금을 들고 와서 집 앞 대문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이대로만 써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어도 귀에 촛농을 박고 외면할 소재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상황은 내가 출판사 전체의 바닥을 혀로 핧고 다닌다 해도 이뤄지지 않

겠지만...하하)

그만큼 까다롭다는, 그리고 위험성이 다분한 소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난 며칠

간 무리를 하며 이 책을 탐독한 내 포만감은 어떨까?

좋다...여유를 갖고 정독치 못한 점이 모질게 글을 써오신 작가님에게 죄송하게 느

껴질 만큼.

사건은 무겁게, 이야기는 가볍게 쓰시면서도 그 가벼움이 결코 경박함이나 그런 느

낌이 아닌 마치 흐르는 물 처럼 단란한 것 같아서 좋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외곬수가 아니라서 마음에든다.

우이는 전형적인 두부지만 푹푹 뚫리는 순두부가 아닌 꼿꼿하고 옹골찬 판두부라 좋

고,

소향은 발랄하지만 막 나가진 않아 누나같은 듬직함이 있어 좋다.(쉽게 차이지는 않

겠지?)

그 외 영춘객잔의 식구들도 각자 나름대로의 개성을, 그리고 숨겨둔 맞장구치는 재

주를 지니고 있어 그들의 등장이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담백이

영춘의 억압(?)에 의해 과파를 팔러 나갈때에도 그 상황이 재미있었을 뿐, 그의 카

리스마를 손상시키진 못했으니까.

하지만 연일 이어지는 평이한, 어찌보면 한 인물을 둘러싼 일상사를 들려주는 듯한

느슨한 전개는 이후로 어떤 사건이 터지고, 갑작스레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든지

해도 별로 긴박감같은 감정이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더위먹으

면 만사가 허무하고 귀찮게만 보이듯이 이런 면에서는 조금의 전환점이 필요하지 않

은가 생각한다.      

우이의 이름은 뭔가 생각하게 해주는 면이 있다.

우이...집 우 자에 달팽이 이 자. 나의 가당찮은 선입견(...철무의 첫 등장에서 그

가 우이인줄 알았다는...)으로 첫째장 다섯페이지 까지 우이(牛二)라는 이름의 무식

쟁이 보표로 낙인찍혀 덤벼드는 효웅, 거마들을 뻥뻥 꺼꾸러뜨리는 그렇고 그런 주

인공으로 전락할 뻔한 순백한 청년.

광활한 하늘 아래에서 비록 눈에 차지도 않는 미물이지만 드물게 제 집을 등에 이고

다니며 언제라도 안주할 곳을 찾아 들어가 쉴 수 있는 달팽이의 여유로움을 작가님

은 우이를 통해서 찾아헤메시는 지도 모른다.


Comment ' 8

  • 작성자
    Lv.15 노레이션
    작성일
    04.04.06 02:13
    No. 1

    와! 생생하게 살아있는 느낌이 드는 글입니다.^^
    거칠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정겹게 느껴지는 입담, 독특한 시선, 거침없이 도도하게 흘러가는 어조... 절로 흥이 나는 감상/비평문이네요.
    보표무적 작가님, 이 글을 읽으시면 너무 좋아서 가슴이 콩닥거리지 않을까 싶습니당~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破邪神劍
    작성일
    04.04.06 09:18
    No. 2

    보표무적 요즘 기대가 상당히 많은 작품이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9 남양군
    작성일
    04.04.06 09:23
    No. 3

    잘쓴 글에 잘쓴 감상문입니다.
    경박하지 않은 가벼움이라 ....... 보표무적을 잘 표현하시것 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5 하기사랑
    작성일
    04.04.06 11:20
    No. 4

    햐~ 꼭 읽어보구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멋진 감상문 이었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불멸의망치
    작성일
    04.04.06 15:51
    No. 5

    감상문이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보표무적을 잘 표현하기도 하였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설국
    작성일
    04.04.07 08:27
    No. 6

    근데 우이는 꼭 만독불침이 되어야했던 걸까요?

    이제 '절대'라는 의미의 단어만 들어가면 학을 뗀다는.. ㅡㅡ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북천권사
    작성일
    04.04.07 11:53
    No. 7

    만독불침이 꼭 되었어야만 할 상황이 나와주면 이제 그림이 되는 거죠.

    퍽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 용호(龍胡)
    작성일
    04.04.07 15:30
    No. 8

    이거 비평 맞나요? 비판은 잘 안보이고 거의 칭찬 일색이군요.
    물론..... 그래서 좋다는 거지요^^
    멋지고 깔끔한 비평글이었습니다.
    또 한분의 비평고수의 등장같습니다.
    색다른 시각의 접근이 아주 흥미롭습니다.
    역시 고무림은 저변이 장난 아니게 넓군요.
    좋습니다. 좋아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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