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를 지켜준다는 것은 그리 쉬운일이 아니다.
하물며 혈육도 아닌 생면부지의 다른 사람을 자신의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지켜내야
만 하는, 그래서 힘들고도 어려운 일이 남을 보호하는 입장에 선 사람들이다.
헌데, 그 더럽게 힘든 보표의 업(業) 중에서도 하루에도 수차례씩 담벼락이 닳도록
넘어오는 목 도둑놈들과 멀쩡한 성찬에 독을 싸재끼는 버르장머리없는 놈들을 열렬
한 추종자로 둔 무림의 큰 주인을 경호하는 재수 오지게 없는 인간이 있었으니,
그가 바로 우이 였다.
아무리 소박할지라도 사람의 꿈이 뜻대로만 이루어진다면 그건 이미 이 세상이 아
닐 것이다.
그래서 여기 두부처럼 물렁한 성격을 지닌 청년도 당연히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
다. 돌아보니 절세미녀요 휘두르면 추풍낙엽 이지만 정작 자신이 바라는 소탈한 삶
은 얻지 못한 청년. 열병처럼 솟은 살업에 대한 죄의식에 의를 쫒아 머물던 곳을 뛰
쳐 나왔지만 안위를 찾아 정착한 곳에서도 인연을 따라 강호의 피바람은 이어지고
결국 청년은 다시 검을 부여잡았다. 취중에 깨어나 돌아보니 집 안 똥간에 자빠져
있던 인간.
그가 또 우이 였다.
다루기 힘든 생선재료같은 보표라는 직업의 표현, 어설프게 다듬었다간 목에 콱 걸
려 고생하기 쉬운 그 가시같은 현실풍자의 대입, 진지함과 경박함이 빠르게 교차하
는 등장인물둘의 별난 성격 등등.. 특별히 이거다 할 만한 특징없는, 이름없는 들풀
과 같은 문체지만 그 줄기를 끌어올리면 따라 올라오는 실한 알감자 군(群)처럼 툭
툭 튀어나오는 작은 이야기들의 군집체. 이것이 보표무적을 정의하는 나만의 평가다
솔직히 나같으면 출판사 사장이 선금을 들고 와서 집 앞 대문에서 오체투지를 하고
이대로만 써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어도 귀에 촛농을 박고 외면할 소재이기도 하다.
(물론 이런 상황은 내가 출판사 전체의 바닥을 혀로 핧고 다닌다 해도 이뤄지지 않
겠지만...하하)
그만큼 까다롭다는, 그리고 위험성이 다분한 소재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난 며칠
간 무리를 하며 이 책을 탐독한 내 포만감은 어떨까?
좋다...여유를 갖고 정독치 못한 점이 모질게 글을 써오신 작가님에게 죄송하게 느
껴질 만큼.
사건은 무겁게, 이야기는 가볍게 쓰시면서도 그 가벼움이 결코 경박함이나 그런 느
낌이 아닌 마치 흐르는 물 처럼 단란한 것 같아서 좋다.
특히 등장인물들의 성격이 외곬수가 아니라서 마음에든다.
우이는 전형적인 두부지만 푹푹 뚫리는 순두부가 아닌 꼿꼿하고 옹골찬 판두부라 좋
고,
소향은 발랄하지만 막 나가진 않아 누나같은 듬직함이 있어 좋다.(쉽게 차이지는 않
겠지?)
그 외 영춘객잔의 식구들도 각자 나름대로의 개성을, 그리고 숨겨둔 맞장구치는 재
주를 지니고 있어 그들의 등장이 결코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담백이
영춘의 억압(?)에 의해 과파를 팔러 나갈때에도 그 상황이 재미있었을 뿐, 그의 카
리스마를 손상시키진 못했으니까.
하지만 연일 이어지는 평이한, 어찌보면 한 인물을 둘러싼 일상사를 들려주는 듯한
느슨한 전개는 이후로 어떤 사건이 터지고, 갑작스레 정세가 급박하게 돌아가든지
해도 별로 긴박감같은 감정이입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굳이 표현하자면 더위먹으
면 만사가 허무하고 귀찮게만 보이듯이 이런 면에서는 조금의 전환점이 필요하지 않
은가 생각한다.
우이의 이름은 뭔가 생각하게 해주는 면이 있다.
우이...집 우 자에 달팽이 이 자. 나의 가당찮은 선입견(...철무의 첫 등장에서 그
가 우이인줄 알았다는...)으로 첫째장 다섯페이지 까지 우이(牛二)라는 이름의 무식
쟁이 보표로 낙인찍혀 덤벼드는 효웅, 거마들을 뻥뻥 꺼꾸러뜨리는 그렇고 그런 주
인공으로 전락할 뻔한 순백한 청년.
광활한 하늘 아래에서 비록 눈에 차지도 않는 미물이지만 드물게 제 집을 등에 이고
다니며 언제라도 안주할 곳을 찾아 들어가 쉴 수 있는 달팽이의 여유로움을 작가님
은 우이를 통해서 찾아헤메시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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