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용대운
작품명 : 군림천하
출판사 : 파피루스
저에게도 십 년 전쯤엔 한창 무협소설을 닥치는 대로 보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군림천하와 함께 십 년의 세월을 보낸 이후론 웬만한 무협작품들은 1권이상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겠더군요.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주된 것은 철학의 부재였습니다.
무협소설에 재미만 있으면 되지 무슨 개똥 같은 철학을 따지느냐고 반문할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이 부분에서 만큼은 분명히 생각이 다르지요.
독자(주로 10대들)들의 감정을 쉽게 그것도 급히 이끌어내려는 작가들의 작품은 현실 도피성의 재미를 추구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재미는 일종의 마약과 같습니다. 주인공 이외의 주변 인물들이 소외된 채로 남겨지는 것은 환각 상태와 비슷합니다. 또한, 마약은 끊기가 어렵기 때문에 독자들은 조금도 작품을 기다려줄 수 없지요. 그렇기에 작품의 질적 하락은 예고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군림천하와 같은 작품들은 독자들이 몇 년이 지나든 기다려 줍니다. 그 까닭은 한 번 읽었다고 해서 다 읽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군림천하에는 분명히 현실과 유리되지 않은 철학적인 부분이 존재합니다.(전율적인 작품 내용은 생략합니다. 흐흐)
90년대에 신무협 시대가 열리면서 큰 인기를 끈 것은 현실과 유리되지 않은 인간적인 군상들을 그려낸 작가들이 출현했기에 가능했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에 들어와 신무협 시장의 질이 급하락세를 거듭하게 된 것은 앞서 말한 철학의 부재 즉 인간이 없는 마약 같은 재미만을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작가나 독자의 일방적인 잘못이라기보다 돈이 돈을 벌기 위해 인간과 작품은 단지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이유가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재미란 것은 현실과 상상력의 조화로운 관계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무협소설이 단지 잠깐 짬을 내 현실에서 도피하기 위한 수단의 기능만을 한다면 독자나 작가 모두 더 이상의 발전은 없겠지요.
지금은 이러한 과도기적 단계에 있기 때문에 무협소설을 읽고 있으면 주변에서 한심하게 여기는 분들이 꽤 있습니다.
하지만 내공이 쌓인 무협독자들은 언젠가는 좋은 무협 작품을 만나리라는 순수한 기대감으로 가득 찬 매니아분들이지요. 저도 그러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흐흐
무협소설만이 가진 인간의 비극성과 동시에 함께 어울린 기쁨이 공존하는 그러한 삶의 철학이 느껴지는 군림천하 같은 작품들을 언제나 기다리고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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