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임준욱
작품명 : 괴선
출판사 : 청어람
1. 임준욱은 부단히 기존의 가치를 지키려 한다. 그런 면에서 임준욱은 보수다.
그의 소설을 보면 일면 타당한 면이 있다. 소설에서 변화를 추구하는 세력은 기존의 세력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힘을 갖는다는 건 다만 사람만이 바뀌는 변화를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나는 그것이 임준욱식 세상보기라고 생각한다. 임준욱은 상당히 비관적이라고 할 수 있겠다. 괴선도 그 맥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2. 임준욱도 현실에 만족하는 건 아닌 것 같다. 그가 현실의 해결책으로 내세우는 것이 가족이다. 소설에서 주인공들이 이루고자 하는 건 무림일통 같은 커다란 가치가 아니다. 자신과 가족의 생활 토대를 지키려는 것 뿐이다. 그가 내세우는 가족은 아주 복고적 기준의 가족이고 이상적 가족이다. 물론 임준욱이 가족의 정만으로 세상이 바꿀 수 있다고 주장한다는 말은 무리다 . 과거의 가족을 잃어버린 세상에 대한 개탄 정도의 느낌이다.
임준욱은 소시민이다. 소시민의 삶은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불안하다. 그래서 그는 안정을 희구한다. 임준욱이 만든 주인공은 불안요소를 제거하는 운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그의 소설은 그 불안을 극복하는 희망이나 위안에 대해 이야기 한다... 고 생각했다. 그런데 괴선에 이르면 조금은 달라진다.
3. 엄밀히 말하면 임준욱의 소설은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의 이야기는 가족보다는 가장에 초점이 맞춰져있다. 남자가 성장해서 온전한 가장이 되는 이야기다. 딸린 가족은 정을 나누고 힘을 주는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발목을 잡는 커다란 짐이다.
4. 임준욱이 이상으로 생각하는 가족은 (남자)가장이 이끌고, 그를 이해하고 복종하는 가족이다. 내 기억에 임준욱의 소설을 통털어 작가의 형벌(?)을 받는 캐릭터는 단 하나다. 그의 소설은 악역에게도 충분한 변명의 기회와 애정을 준다. 그들의 최후도 형벌이라기 보다는 실패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런데 괴선에서 남편이 밖에서 낳아온 자식을 냉대하는 부인에 대해서만은 매정하다. 가장에 대한 그 정도의 반기도 허용하지 못한다. 물론 장경식으로 머리채를 잡아 끄는 식의 확연한 벌은 아니지만 임준욱에게 가장 정을 못 받은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4. 임준욱은 보수다. 그렇지만 기존의 가치를 지키려하면서도 완전히 신뢰하지는 않는다. 그의 소설을 이끄는 주인공의 신분이 늘 속가인 것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증명되지 않는 새로운 가치에 비해서는 기존의 가치가 낫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미 형성된 권위을 거의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그 권위를 누리지 않는 인물. 임준욱의 영웅상은 그것이 아닐까 싶다.
5. 괴선은 이전의 소설과는 조금 다르다. 일단 주인공이 사생아다. 좀더 가장 중심의 이야기라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또 괴선의 가족은 여전히 복종과 유대의 틀 안에 있지만, 이전과 다르게 갈등이 존재한다. 더구나 주인공은 충분히 성장한 뒤에도 가정을 이루지 않는다. 한 편으로는 좀더 개인, 임준욱의 욕망에 충실한 것 같기도 하고, 다른 한 편으로는 집단의 확장같이 보이기도 한다. 전혀 엉뚱한 생각을 한 건지, 두 가지가 혼재되어 있는 건지, 아니면 둘 중 하나만 맞는 건지... 아직 잘 모르겠다.
새 소설을 시작했다니 그걸 보면 조금은 더 분명해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6. 읽어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임준욱의 소설이 싫다고 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임준욱의 시선은 늘 따뜻하기 때문이다. 그 온기는 낙관과 긍정에서 비롯됐다기 보다는 너나 내나 할 것 없이 모두 아픈 불쌍한 존재라고 보는 측은지심이다. 상처입은 존재끼리 서로 보둠어 주자는 것이 임준욱의 생각이 아닐까 싶다.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들은 그에게서 위로 받고 나만이 아픈 것이 아니라고 안도하는 것에 아닐까 싶다.
7. 그럼에도 나는 임준욱의 소설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임준욱은 늘 넘친다. 너무 많이 주고자 한다. 어찌 보면 임준욱은 자신이 주고 싶은 만큼 주는 것 같다. 그런 쪽에서도 복고적인 일 면이 있다고 이야기해도 될 것 같다.
내가 임준욱의 소설을 다 읽은 것은 오로지 촌검무인의 힘이었다.
나는 임준욱이 2권 짜리 소설만 썼으면 좋겠다. 촌검무인은 술이 잔 위로 봉긋이 올라와 있는 것 같은 꽉 찬 소설이었다. 다시 한번 그런 소설을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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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말하는 임준욱은 소설을 통해 내게 비춰진 임준욱이나 임준욱의 소설이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본문의 모든 단정의 앞에는 '내 생각에는...'이라는 말이 있다고 생각해 주시길... 또 하나 '임준욱이 어떻다'는 말은 '임준욱만 그렇다'는 말과 다르다는 걸 유념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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