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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영원의 아이

작성자
Lv.34 카이첼
작성
07.05.12 07:35
조회
1,199

작가명 : 텐도 아라타

작품명 : 영원의 아이

출판사 : 살림

가족 관련 소설 이벤트를 하는 모양이군요. 마침 과거 썼던 글 가운데 같은 종류의 것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

예전 유치원 원장에게 성적인 농락을 당했던 유치원생이 법정에서 진술을 거부한 때문에 그 원장이 불구속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분노와 안타까움을 느끼며 침을 삼켰다. 꿀꺽 목젖을 타고 식도로 넘어가는 자기 자신의 체액은 단지 뉴스에 맞춰 목이 말랐던 것인지도 모르며, 그저 습관 같은 행동이었던 것인지도 모르며 속에서 일 끓으려는 그 어떤 감정들을 참아내기 위한 시도였던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개입할 수 없는 외부자로서 그 목덜미를 타던 침의 의미가 무엇인지 이제와서 다시 읽어내기 어렵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아직 초등학교도 가지 않은 아이에게 그런 곳에 나서 자신이 당했던 기억을 되새기며 상대의 악업을 증언하라고 하는 소리는 잔인하다. 또한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확고한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피해자의 진술 없이 마냥 피해자의 주장에 따른 판결을 부과하는 것도 마땅찮다. 또한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비록 그러하다 하더라도 원장이 불구속으로 그 처분이 끝났다는 것 역시 인정하기 힘들다.

이 서글픈 사건을 다시금 화두로 꺼내 주의를 돌리는 것은 '영원의 아이'라 이름 붙은 세 권의 소설의 끝에서 생각하게 되는 사유의 흐름 때문이다. 나는 이 흐름과 이어지는 이들 상식의 부딪힘이 일깨워내는 세계 모습에 아픔을 느낀다.

그것은 이 상식의 부딪힘이 마침내 만들어낸 산산히 조각난 비상식은 우리에게 숙명적인 타자의 운명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타자란 무엇인가. 타자와 타자론에 대한 이야기는 무수하다. 그러나 내가 목표로 하는 것은 그 무수한 언어의 의미망을 읽어내며 타자를 읽어내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계층의 분할논리가 작명 해낸 가슴아픈 이들로서의 타자를 말하고자 함이다. 그럴 때 그것은 말하지 못하는 자를 말함으로 규정된다. 말하지 못하는, 그러하기에 자신이 누구인지 다른 이들에게 설명하지 못하고, 다만 규정 당하는 그런 이들을 말하게 된다.

말할 입이 없다는 것은 말할 입이 없다는 것을 말함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가 이해하고 있는 바일 것이다. 말할 입이 없다는 수사의 뒷면을 슬쩍 들척일 때, 우리가 보게 되는 것은 권력의 문제다. 말할 입이 없다는 것은 그들의 말이 제도권력의 힘에 포섭되어 울림을 가지지 못하고 단지 공허한 떠돎으로서만 존재하게 된다는 말을 말함이다. 그들의 언어는 권력을 가지지 못하기에 의미가 없고, 의미가 없는 말은 말이 아니고, 말을 말하지 못하는 입은 입이 아니고, 그러하기에 그들은 입이 없다.

이런 전개 속에서 적어도, 내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타자란 약자의 다른 단어다. 그러나, 정의의 진보와 함께 대부분의 타자는 극복의 희망을 가진다. 도덕의 황금률들이 사회의 기저에 침투해 모든 이의 기본이 되어갈 때, 그 관용의 정신이 모든 이의 기본이 될 때, 우리는 타인을 규정하지 않는 정신을 배우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때 우리는 우리 아닌 타자들에게 '너는 무엇이다.'가 아니라 '너 스스로 말하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령 이 정신이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가지는 기본으로 이해되고 실천된다 해도 결코 극복 될 수 없는 타자의 한 부분이 있다. 왜인가? 모든 이가 자신의 입으로 자신을 말하라고 할 때도 그들은 자신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타자의 한계는 그러하기에 문화적인 것이 아니라 생리적인 것이다. 이들이야말로 '숙명적인 타자'다. 이 극복 될 수 없는 타자의 운명 위에 선 그들을 총칭해 우리 사회는 '어린이'라 부른다.

어린이의 타자성은 그들의 생리적 한계 위에 기초해 있음을 나는 앞서 말했다. 그들은 어리기에, 그 부족한 시간의 흐름에 의해 아직 많은 것을 접하고 사고하지 못했기에 선악의 판별이 설 수 없고, 서 있는 선악의 판별조차 확정을 내릴 수 없다. 하지만 이 보다 더욱 중요하게 그들의 타자성을 결정짓는 것은 그들이 자립할 수 없는 존재라는 점 때문이다. 자립할 수 없는 그들은 자신의 생존을 자신보다 더 강한 자의 보호 아래 두고 있을뿐더러, 사고의 기저 역시 마찬가지의 기저를 기초로 하여 이루고 있다. 이 지점에서 그들의 숙명적인 타자성이 명료히 드러난다. 시고의 기저를 자신의 보호자의 것을 기반으로 해서 이룬다는 것은, 달리 말해, 그들의 발언은 그들은 발언이기 보다 그들 보호자의 발언이기 쉽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않겠는가? 그렇기에 그들은 사랑받아야 한다 주장되고, 또한 무수한 실천 속에 보호받고 있지만, 그 위험한 가능성 위에서 타자의 위치에 놓일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처지에 있다.

나는 여기서 신화를 말하고자 한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자 하는 신화는 그 찬란한 영광의 이름으로 쓰이는 아름다운 수사로서의 신화이거나 문화의 기저 층부에 존재하는 원형으로서의 신화가 아니다. 신화라는 단어가 현실의 단어 위에 덧씌워지며 영롱한 울림을 울린다 해도 그것이 언제나 아름답고 숭고한 것은 아니다. 도리어 그 영롱한 울림을 조롱하기 위해 '신화'라는 단어는 또한 쓰여지고 있음을 우리는 안다. 이성이라는 신화, 계몽이라는 신화, 주체라는 신화. 이들 단어에 신화라는 수사를 붙일 때, 신화의 영롱함은 그들 단어가 과거 우리에게 던져주었던 영광을 되새김과 동시에 그들 영광이 거짓이거나 지금은 부정되어야 할 악이라는 부정을 함의하게 한다. 내가 말하는 것은 이 부분의 신화이며, 이 '신화'의 수사 가운데는 '어린이'역시 포함되어 있다. 그렇다면 가족과 어린이의 깊은 연관을 알고 있는 우리는 이 두 신화의 연결 역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어린이와 가족의 신화가 함께 하는 순간 탄생하는 그림은 '순수하고 선하고 아름다운 어린이가 단란한 가정에서 좋은 부모들의 사랑을 받으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숭고한 모습일 것이다. 나는 이 이상이 실현되는 가정의 모습에 언제든 박수칠 준비가 되어 있다. 또한 이는 우리 모두의 이상이며 추구해야할 가치의 한 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이상은 이상이지 현실이 아니다. 달리 말해 이 것은 많은 경우 현실이 아니기에 '이상'이라는 수사와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친밀한 이들의 모임이라 해도 결국 다른 개인들의 집합이 가족이라는 것이고, 그 다른 것들이 집합한 공간에서 소요가 일지 않을 수는 없다. 신화의 문제는, 이 당연한 소요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도록 한다는 데에 존재한다. 마치, 가족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 당연하며, 아름다워야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거기서, 이 현실적인 소여는 비현실적인 것이 되어 눈앞에서 치워진다. 치워진 소요는 곯고 곪아 마침내 터지고, 그 터짐의 궁극에서 희생되는 것은 다른 누구보다 결국은 '어린이'다. 사회의 모순이 가족의 모순이 되고, 가족의 모순이 마침내 어린이의 비극이 되는 것은 그들이 약자이기 때문이다. 응축된 모순의 덩어리의 책임지기는 약자를 향해 계속해 굴러가게 됨은 이기적 인간 집단의 필연이라 할 것이며, 그렇기에 어린아이는 이 비극의 가장 최전선에 서게 되고야 만다.

유키와 료헤이, 쇼이치로 라는 세 캐릭터를 통해 소설은 이 비극의 연쇄고리를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물론 이 소설은 단지 그들의 비극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며, 슬프기는 하지만, 이 가련한 세 사람이 서로의 상처를 껴안아 성장을 이루어가나는 구원의 이야기 역시 함께 포함하고 있었다.

그러나 내 가련한 글이 소설의 구원보다 비극에 중점을 두어 타자를 말하게 되는 것은, 그들의 구원은 특별한 사건인데 비해 그들의 비극은 보편적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이는- 역설적인 운명에 서 있다. 그들은 가장 존중받고 사랑받는 이들이지만, 그 존중과 사랑의 나약한 보호 밑에는 숙명적인 타자라는 아가리가 자리하고 있을 뿐이다. 아니, 그들이 받고 있는 사랑과 관심조차 실은 이 숙명적인 타자의 운명 위에 성립하고 있을 뿐인지 모른다. 우리는 그들에게 씌여진 타자의 운명을 부정하거나 거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타자의 운명 위에 그들의 자립을 성립해 타자의 숙명을 벗겨주는 것이다. 그러나 말하지 못하는 그들에 대한 우리의 정답은 어디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어려운 물음일 것이다. 단지 시작을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의 신화를 격파하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나는 이 세 권짜리 소설을 읽고 그런 생각을 해 봤다.


Comment ' 1

  • 작성자
    Lv.16 Zinn
    작성일
    07.05.12 11:17
    No. 1

    추천하고 갑니다~

    요즈음 가라타니의 언어와 비극을 읽고 있습니다만, 타자의 문제와 언어를 연관지어 설명하는 것이 꽤나 흥미로웠습니다.

    숙명적인 타자라는 운명 위에 서있는 어린 아이, 그리고 타자화의 보편적인 비극. 아이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개별적인 구원이 아닌 보편적인 구원이 이루어져야 하겠지요. 그러기 위해서 과연 무엇을 해야할 지 저도 한 번 생각해볼 계기가 생긴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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