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김언수
작품명 : 캐비닛
출판사 : 문학동네
“사랑이나 지성보다 더 귀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준 것은 구라이다.”
美 피플지가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진실한 50인”에 선정된 바 있던 밝은구라세계시민연합회 초대 회장을 역임한 정영수선생의 묘비명으로 유명해진 문구입니다. 서울시는 6월 “정확한 구라 사용의 달”을 맞이하여 이와 같은 명언이 새겨진 티셔츠를 제작하여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는 행사를 진행 하고 있습니다. 이 행사는 시민들의 폭발적 반응에 힘입어 준비된 수량이 3분 만에 동이 나는 품귀현상이 20일 넘게 일어나고 있을 정도로 시민들의 참여가 뜨겁습니다. 거리 곳곳에는 이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거리를 활보하는 젊은이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고무된 주최측은 밝은구라세계시민연합회와 공동으로 다음 달 초 故정영수선생의 사상이 담긴 전시회-구라 그 미지의 세계-를 열 예정이라고 합니다.
라는 것은 그렇습니다. 구라입니다. 눈뜨고 못 볼 정도로 유치한 이 몇 줄의 구라를 적기 위해 저는 밤마다 그렇게도 먹었나?? 봅니다(웃음). ‘이 선 넘어오면 다 내꺼’를 삶의 지표로 삼던 어린 시절에도 하지 않았을 되도 않는 구라를 써보고 나니 352페이지를 황홀한 구라의 향연으로 장식한 작가 김언수에게 이 말을 꼭 전하고 싶네요. “사랑이나 지성보다 더 귀하고 나를 행복하게 해준 것은 구라이다.”
“세상 말세다 말세.” “아무리 세상이 요지경이지만 별 꼬라지를 다보는 구만.” “ 아, 망할 놈의 세상.” 자주 입에 오르내리기는 말이 지만서도, 말세는 오는 듯 안 오는 듯 말이 많더니 언제 올지 모르겠고, 별의 꼬라지는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듯 하고, 망할 놈의 세상은 아직 망하지 않았으니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세상은 그럭저럭 정상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다. 뭐 아주 정상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요.
자! 그정도 이상함 쯤이야 명함도 못 내밀 기이한 사람들이 13호 캐비닛 안에 숨겨져 있습니다. 삼백일흔다섯 명의 심토머-새끼손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남자, 시간이 사라져버리는 타임스키퍼, 혀를 먹이로 바치고 도마뱀을 혀 대신 갖게 된 키메라, 짧게는 두 달에서 길게는 이년 가까이 잠을 자는 토포러, 기억을 조작하는 메모리자이커, 고양이가 되고 싶은 남자, 여러 몸을 함께 나눠 쓰는 다중소속자, 달빛을 먹고사는 사람, 노숙자계열의 마법사, 자신의 분신을 매 주 화장(火葬)하는 여자, 환상에게 잡아먹히는 블리퍼 등. 믿거나 말거나의 제작자조차 절대로 믿지 않을 그런 이야기가 말입니다.
소설의 중추를 이루고 있는 13호 캐비닛 안에 가득 차있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창조해 낸 작가의 상상력은 질투가 날 만큼이나 부럽기 그지없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기담적 성향의 인물을 창조한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곰이었으나 100일간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웅녀 감동적 설화’나 ‘엑스맨의 호모 슈퍼리어 이야기’와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으니 완전히 새롭다고는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새롭고 창의적이며 감동적이기까지 한 구라를 대면 할 수 있는데요. 그 이유는 작가의 ‘구라를 담아내는 김언수만의 방법’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캐비닛』의 주인공 공대리는 캐비닛 13호의 현실적이지 않은 심토머들과는 다른 매우 현실적 인물로 그려지고 있는데요. 소설은 상담 전화를 받는 남자 공대리의 현실과 그에게 상담 전화를 거는 심토머들의 현실을 오가며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공대리의 일상은 그저 평범하고 평온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고, 심토머들의 이야기는 9와3/4 승강장 너머의 세계처럼 몽환적이고 환상적이기만 할까요? 공대리를 둘러싼 회사생활의 모습은 일상성이라는 모습 속에서 현실의 모순을 들추어냅니다. 그렇기에 평온함을 가장한 불편한 진실처럼 느껴지더군요. 그래서 일까요. 오히려 공대리의 사회생활이 심토머들의 존재 보다 더 기이하게 보여 집니다. 그리고 우리의 심토머들이 세상 속에서 본질적 차이를 숨긴 채 살아가기 위해, 혹은 숨기지 못한 채 멀어지기 위해 그렇게 살아가는 모습, 또한 심토머들이 심토머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심토머로 되어버리는 사정이 아이러니 하게도 현실적으로 느껴지더군요. 현실과 판타지의 사이를 넘나드는 갖가지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현실과 판타지의 경계를 구분할 수 없게 됩니다. 현실이 판타지처럼 느껴지고, 판타지가 현실처럼 느껴지게 되지요.
물론 작가가 몇 가지 기괴한 이야기를 창조했다고 해서 그를 천재적 구라쟁이로 치켜세우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로 놀라운것은 이 책이 모두 구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일 겁니다. 아아, 물론 모든 소설은 허상으로 만들어진 이야기지요. 그런데 이 글에는 정말로 그러했을 것과 같은 사실과도 같은 구라가 곳곳에 펼쳐져 있지요. 오죽했으면 작가가 책의 마지막 장에 소설에 나오는 대부분의 정보가 창작되었거나 오염되어 있다는 주의사항까지 친절히 적어두었을까요. 말도 안되는 캐비닛 13호의 인물들을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구라들 속에 촘촘히 엮어 넣으니, ‘이렇게 말도 안되는 말을’하는 감정에서 ‘어쩌면 이럴 수도’로 바뀌었다가 ‘어떻게 이럴 수가’로 바뀌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한마디로 문학이 요구하는 창조적 상상력과 시대가 요구하는 현실성을 동시에 갖춘 소설이라 생각됩니다.
수상소감이 상당히 인상적이더군요. 작가에게 관용을 베푸는 독자는 이 세계에 단 한 명도없다. 당신은 자장면 한 그릇만한 소설을 쓰고 있는가? 이 저열한 자본주의에서 땀과 굴욕을 지불하면서 힘들고 어렵게 번 돈으로 한 권의 책을 샀는데 그 책이 당신의 마음을 호빵 하나 만큼도, 붕어빵 하나만큼도 풍요롭고 맛있게 해주지 못한다면 작가의 귀싸대기를 걷어올려라. 자신은 귀싸대기 맞을 각오가 되어 있다. 멋지더군요.
평소에도 잠을 자는 시간이 많은 저로서는 혹시, 나 역시 토포러가 되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을 가지며 감상을 마칩니다.
* 감상란이 시끌벅적 하네요. 무슨 일인지 잘 모르겠네요. 그래서 정담란을 살짝 기웃거렸더니 제 감상을 누가 썼다는 이야기도 있고 뭔 이야긴지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감상 한편 올리려면 최소한 3-5시간 말을 고르고 골라서 쓰는데요,(이럴때면 정말 글을 쓴다는게 얼마나 힘든지 작가님들 존경스럽습니다) 이쁘게 봐주십쇼. 요 근래 장르소설을 책으로 못 봐서 일반 소설만 올리게 되네요. 바하문트도 그렇고 신간이 많이 나온 것 같으니 주말 지나면 보러가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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