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박찬규
작품명 : 천리투안 3권
출판사 :
* 미리니름 다소 있습니다 *
◇ 일단 서평부터
제목은 천리투안이지만 갈수록 양쪽 눈의 활용도는 낮아지는 느낌이다. 소호가 워낙 많이 강해져서 그걸 써야 할 정도의 위기상황이 없기도 하고, 스스로도 눈의 능력을 편법이라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 듯. 독특한 소재에 얽매여서 이야기가 한계지어지는 것은 싫어하지만, 거의 존재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활용하지 않는 것도 아쉬운 일 아닌가 싶다.
사실 꼭 전투에만 사용하지 않더라도 두가지 눈의 능력을 다각도로 활용하는 모습 정도는 충분히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천리투안을 다른 무협과 구분지어 줄 것이고, 독특한 재미를 줄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소호는 갈수록 그냥 평범한 무림인이 되어가고 있고 양쪽 눈알은 단순히 나중에 강적을 만났을 때 사용할 비장의 한수 정도로 쓸 모양이다. 검후에게 지도(지적?)받은 부분이 있으니 4권에서는 좀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지도.
소호가 황제를 만나서 죽이려 마음 먹은 것을 알고 솔직히 조금 놀랐다. 황제를 죽인다는 것은 엄청난 파장을 불러 오는 것이다. 단순히 목 하나 따는 게 아니다. 천하의 주인 자리가 비는 거다. 엄청난 혼란이 몰아칠 것은 불보듯 뻔하고, 그 와중에 피흘리는 것은 백성들이다. 나는 소호가 개인적 원한을 빌미로 황제를 슥삭해버리겠다고 결심하리라곤 예상치 못했기에 상당히 의외였다.
이번 권에서는 여성 캐릭터 두명이 눈에 띄었다. 천유향은 자기 욕망에 솔직한 내숭녀로 성장해 있었다. 전혀 신경쓰지 않던 캐릭터인데 의외로 깊이있게 다루어져서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검후. 현재의 강호에선 거의 최강자인 듯 한데, 뭐랄까 포스라고 해야하나... 그런게 막강하다. 한두번 만나보고 소호의 모든 것을 파악하는 눈썰미.. -_- 천리투안은 소호가 아니라 검후가 갖고 있는 것 같다.
소호 쪽은 좀 마음에 안들었다. 2권의 쌈박한 모습은 어디로 가고 상당히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모습... 이제까지 읽었던 박찬규님의 작품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라 보는데, 얼마나 무공이 높고 얼마나 수양이 깊은가에 관계 없이 주인공들은 심한 감정적 충격에 매우 약하다. 태산처럼 굳건히 서있는 것 같더니 태풍 한번에 평지가 되는 모래언덕이었다, 정도의 느낌이랄까.
◇ 공감할 수 없는 감정묘사
3권까지 읽으며 느낀 점이 있다. 박찬규님께서 이야기를 재미나게 쓰는 것은 부인할 수 없지만, 감정 묘사 부분에 있어서는 절제가 부족하다(고 느껴진다)는 것. 아니, 여러 작품을 쓰신 작가분이고 그 모든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특징인 만큼 박찬규님의 작풍이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매력적인 캐릭터에 흐뭇한 웃음을 짓고, 점점 성장하는 소호를 보며 즐거워 하다가도 격한 감정이 드러나는 장면이 되면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다. 그 부분만 없었으면 좋겠다고 느낄 정도로, 몰입에 심대한 악영향을 주었다. 나는 작가가 보여주는 극단적인 감정묘사에 도저히 공감할 수가 없었다.
그 시작은 1권의 프롤로그였다. 천지분간도 못할 겨우 네살짜리 인물이 그 나이에는 이해는 커녕 존재조차 알지 못할 정서를 마구 표출하는 것을 납득할 수가 없었다. 네살짜리도 슬퍼할 수는 있고 안타까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표현방식은 네살짜리의 그것이어야지, 스무살 성인처럼 나타내는 건 문제가 있다.(사실 처음에는 스무살 정도 되는 캐릭터인 줄 알았다가 뒤늦게 네살인 걸 알고 어안이 벙벙했다)
호유용의 옥사로 인해 소년 소녀들이 지하에서 강제노역을 하던 시기에도 마찬가지다. 거기에 있는 것은 설정상으로만 10여 세의 아이들이지, 실제 그들이 보여주는 감정라인이나 대사 등은 훌륭한 스무살 언저리 청년들의 모양새였다.
나는 연령별 지각적 성장단계까지 고려해서 글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유아/아동 심리학이나 교육학을 배우지 않는다면 알기도 힘들 뿐더러, 작가에게 거기까지 요구하는 것은 분명 무리한 일이다.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최소한 그 나이대로 보일 정도의 묘사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네살짜리가 현실의 4세 아동과 같은 언행을 보이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스무살처럼 느껴져서는 곤란하지 않은가.
더군다나 감정의 표현방식이 감상적이랄까 센티멘탈하달까, 지나치게 자기 감정에 빠져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느낌이다. 평소에는 매우 평범하게 진행되다가, 아주 강한 감정을 느낄 때만 이런 식의 묘사가 나오는데 그 부분으로 인해서 전체적인 몰입이 매우 저하된다. 공감을 할 수 없으니까.
솔직히 소호는 3권까지 오는 십수년의 세월 동안 지하에서 함께 생활한 소년 소녀들에 대해서 그닥 생각도 하지 않고 있었다. 언급조차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형편이 나아지고 나서도 그들의 생사여부나 행방을 확인하려는 시도도 없다. 그의 머리 속에는 새로 얻은 행복과, 은혜를 갚기 위한 노력, 그리고 황상에 대한 복수 정도밖에 없었다. 이후 연인과의 약속이 추가되고.
그런 그가 어느날 갑자기 옛 친구 하나를 만났고, 그를 알아보지 못해서 헤어지게 된다. 무척 아쉬울 것이다. 왜 알아보지 못했나 하고 자책하는 것 정도는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소호 정도의 캐릭터가 '으아아아아아아~~~~!!!!' 하고 소리지르고, 흐느끼며 울부짖고, 미친듯 자책하고, 이러는 것 까지는 도무지 공감할 수 없었다. 솔직한 감상으로는 왜 이렇게 오버하냐 싶었다.
천리투안은 재밌게 읽고 있다. 문제는 꼭 중요한 부분에서 이렇게 오버스러운 감정의 폭발 때문에 몰입이 확 깨진다는 거다. 박찬규님의 독특한 표현방법일지도 모르겠지만, 장르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건 독자와 캐릭터의 공감대 형성 아닐까. 적어도 나는 실패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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