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윤현승
작품명 : 뫼신사냥꾼
출판사 : 아키타입
반말체로 쓰게 됨에 사죄를 먼저 올립니다.
항상 그렇지만, 나는 작가 윤현승을 좋아하고, 또 이건 그가 어떤 작품을 쓰던 변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작가 윤현승.
그는 뫼신사냥꾼을 통해 무얼 말하려고 하는 걸까?
진실? 왜곡? 삶? 인간?
뫼신사냥꾼을 읽는 내내, 나는 작가 윤현승의 분노를 느꼈다.
그는 대체 무엇에 분노하고 있는 것일까?
그의 분노는 어쩌면 하얀늑대들에서부터 시작을 했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주관적인 견해이며, 작가 윤현승의 생각과는 거리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점을 염두에 두기 바란다.
하얀늑대들을 연재 할 때, 작가 윤현승은 아마도 꽤나 고심을 했을 것이다.
'카셀 언제 강해져요?'
'마법을 쓰려나?'
'그래도 기사인데 칼을 써야지.'
등등, 내가 본 리플만 수백 개는 되는 것 같다.
카셀은 끝끝내 강해지지 않았다.(육체적인 능력으론.) 하지만 개인적으로 카셀에 대한 강함의 표현은 '엄청나게 산재해 있다.' 그 중, 제이메르가 말하는 '칼잡이와 정치가의 살인능력에 대한 차이.'에서 더욱 극명하게 갈린다. 또한, 시나비아의 마지막 말, '당신의 마법으로 세상을 지배할 건가요?'에서 다시금 강조한다.
그런 독자들의 리플에 받은 작가 윤현승의 스트레스는 또 마지막 후기에서 나타난다.
'어때, 카셀 강해졌지?'
본인은 그 한 마디에 엄청난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작가 윤현승이 그간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아 왔는지를 확연히 느껴올 수 있는, 그리고 완결과 함께 그가 보일 수 있는 작은 복수의 한 마디였던 것이다.
아마도, 내가 뫼신사냥꾼에서 느낀 분노란 단순히 '독자만'을 향한 칼날은 아니었을 것이다.
정체되고, 그저 책을 내려고만 하는 출판사.
책을 사지 않는 독자.
망해버린 시장.
그 모든 것에 대한 분노였을 것이다.
그리고 더스크워치를 쓰며, 그는 자신의 '판매를 위한 열망.'을 보이지만, 결국 작가 윤현승으로써 그 사실에 대한 회의를 가진 듯하다.
맞다. 그가 옳다.
대여점을 노리며 쓰는 글을 탈피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물론 누군들 그런 작품을 노리고 쓰고 싶겠냐마는..)
그런 분노가 쌓여 내보인 작품이 바로 뫼신사냥꾼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안에 그의 분노를 고스란히 담았다.
모든 이들이 '설마.'라고 생각하는 장면에 고스란히 분노를 싣고 그는 묻는다.
'이래도 다음 장면 볼래?'
'이렇게 해도 볼 거잖아?'
'볼 거면 내가 뭘 말하려는 지에 집중해봐. 그러면 더 재미있을 걸.'
매 장면, 매 순간, 그의 한 마디에 그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당황한다. 그가 글을 쓰며 얼마만한 상처를 받아 왔는지에 안타까워하며, 그가 가진 수많은 깊이의 일부를 느낀 것만 같아 슬프다. 그 안의 몸부림을 내가 겪은 듯해 가슴이 시리다.
그리고 사람.
애정, 신뢰, 배신, 절망, 희망.....
그 안의 케릭터는 지나가는 행인1이 없다. 그 모든 인물들이 하나의 중심 선안에서, 혹은 자신들만의 삶 속에서 살아 숨쉰다.
세상의 어느 누가 죽음의 무게를 감히 잴 수 있는가?
악인과 선인의 가름은 대체 무엇이 기준인가?
작가 윤현승은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퍼붓고 있다.
나는 또 한 번 윤현승이란 작가에 끝없이 빠져들며, 뫼신사냥꾼이란 글이 '라이트노벨 매대'에 올려 있음에 좌절한다. 이미 박탈당해버린 뛰어난 작품의 경쟁력을 도대체 어떻게 궤도로 올릴 수 있단 말인가?
제발,
'세계 유수의 글들과 정면대결을 하게 해줘!'
라는 작가 윤현승의 소리 없는 외침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란다.
첨가.
뫼신사냥꾼은 상하권으로 기획된 일반소설입니다.
라이트노벨을 폄하하려는 표현이 아니라, 라이트노벨을 좋아하는 분은 뫼신사냥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할 테고, 뫼신사냥꾼에 흥미를 가질 계층은 라이트노벨 매대에 가지 않음을 말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좌절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그런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라이트노벨 매대에 올라간 것을 산산님의 말씀처럼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해야만 하는 현실 때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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