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진산
작품명 : 정과 검
출판사 : 시공사
(편의상 존칭을 생략하니 이해바랍니다.)
대만의 무협 작가 고룡의 산문에서 본 인상적인 글귀가 있다.
人在江湖 身不由己
사람이 강호에 있음에 자기 몸도 자신의 것이 아니다.
무엇인가에 얽매여 살아가고 자신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비애를
겪고 산다.
정과 검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다.
가문에 매인 사람...검에 매인 사람 그리고 정에 매인 사람들...
그런 구속을 벗어나 자유를 꿈꾸는 사람들이 모인 도망자들의 땅 유주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천하제일인을 스승이자 아버지로 둔 출생의 굴레에서 자유를
찾아 떠난 무정검 이결
그리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유주로 찾아온 소녀 서영
둘의 만남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정과 검은 결국 사랑 이야기다.
강호라는 공간에서 상처받은 이들의 극단적인 사랑 이야기이다.
자유를 찾아 방황하던 이결이 결국 선택한 길은 정이었다.
역설적으로 이결은 자유를 버리고 한 줌의 정에 얽매임으로서
또 다른 의미의 자유를 찾은 것이 아니었을까...
'꽃은 다정할수록 빨리 시들고, 사람은 다정할수록 초췌해져 간다. 그러나 꽃은 언젠가 시들고, 사람도 언젠가 초췌해 지는 것. 사람에게 정이 없다면 그 무슨 재미가 있으랴?'
이 역시 고룡의 작품에서 나온 글이다.
언젠가 정 또한 다할 날이 있겠지만 그것 없이 사람이 어찌 살겠는가.
정과 검은 나로선 드물게 오래 전에 본 이후에도
지금까지 세 번 이상 손을 내밀게 되는 글이다.
그 책장을 마지막에 덮을 즈음엔 심장에 아련한 그리움이 너무도 스며들어서 그 무게을 감당하기가 힘든 글이다.
소리없이 사람이 그리울 때 이 책을 보면
나 역시 때로 바람소리 한 점 없는 고요 속에 땅바닥에 귀를 귀울이며 기다리는 서영처럼 기다리단 말을 듣는 환상에 젖고 싶어진다.
그 아득히 깊은 곳에서 이결이 깨어날 그 시간까지...서영의 기다림
계속되리라.
어쩌면 사람들이 영원이라 이름붙인 시간의 길이만큼 말이다.
그 아득한 기다림의 깊이가 주는 여운에 오늘 흠뻑 취해본다.
Comment '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