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송하지만 반말로 쓰겠습니다.
빙하탄을 처음 읽었을때는 밑에 '거대한 고래 장경'이라는 제목의 글을 쓴 분의 말대로 철봉황을 때려 죽이고 싶은 분노가 치밀었다. 현모양처는 못될 망정 왜 그리도 남편이나 아들들에게 냉정하고 비정하게 굴어야 했는지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그러나 빙하탄을 읽으면 읽을수록 그녀는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일 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단 그녀의 출생과 주변상황부터 살펴보자. 그녀는 강호의 4대세력(?)중의 하나인 열사자성의 성주의 딸로 태어났다. 만약 여자가 아니었으면 의문의 여지없이 후계자로 낙점되었을 정도로 능력이 뛰어났다. 여자임에도 능력이 너무 뛰어나 주변의 남자들에게 경원의 대상이 될 정도였다. 그런 그녀는 그 당시 가장 세가 컷던 천붕방주의 후계자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그녀가 미래의 천붕방주와 맺어지게 될때에는 천붕방이 마치 날개를 달게 될것이라 생각한 아버지(열사자성주)에 의해 그가 아닌 천붕방주의 가신에게 시집보내 진다. 그러나 이미 그녀는 뱃속에 사랑하는 남자의 자식을 품고 있었다. 아마도 모든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자 따져보자. 그래도 그녀는 아버지의 말을 따랐다. 사랑하는 남자의 자식을 뱃속에 품고 있으면서도 사랑하는 남자의 가신에게 시집을 갔다. 왠만한 남자들을 능가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박탈당하고 인고의 세월을 겪었다. 그러나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은 어떠했는가?
열사자성의 이익을 위해 그녀를 절망의 구렁텅이로 밀어넣은 그녀의 아버지, 그녀를 사랑하면서도 그녀가 다른 사람에게 그것도 자신의 가신에게 시집가는걸 눈뜨고 지켜본 조원호(천붕방주), 미안해 했지만 주인이 사랑하는 여자와 결혼해버린 주인공의 아버지, 그런 상황을 그냥 지켜본 주변 남자들... 도대체 뭐하는 남자들인가. 장난하나...
한편으로 정략결혼이라는 것이 그런거고 여자의 운명이라는게 그런거라 생각할 수 있다. 사랑하는 남자는 아니었지만 남편에게 잘 내조하고 자식들을 사랑으로 키울 수 있지 않았느냐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녀가 그래야 할 의무는 없다. 그녀를 비난하려면 다른 남자들에게 더 큰 비난을 퍼부어야 한다. 쉽게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 주인공과 주인공의 형에게도. 왜 그녀만 인내하고 순종해야 하는가? 다른 남자들은 자신의 야심을 위해 가문의 이익을 위해 혹은 피해의식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희생을 강요하고 제 멋대로 사는데.
암튼 빙하탄에 나오는 인물들은 대개 비정하다. 강호또한 다른 무협보다 더 비정하다. 빙하탄을 읽는 동안 마치 '죄와 벌'을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주인공의 감정과 완전히 동화되어 분노와 좌절, 고통의 감정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교검, 도영때문에('죄와 벌'에서는 두냐와 쏘냐) 빙하탄을 읽는 동안 내 마음속에 휘몰아쳤던 그런 감정들을 절제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Comment '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