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에서 한 발 물러선 전업 작가이다 보니 먹고 살려고 이런저런 유료 작품 판매에 발을 담근 경험이 있습니다.
완간된 책을 전자책으로 판매하기도 했고, 정액제 시스템 하에서 연재도 해 보았습니다. 뭐, 요즘은 정액제 연재를 포기하고 편 당 과금제와 전자책 판매만을 하고 있는데요.
하여튼 정액제 시스템 하에서 연재를 해 본 경험에 따르면,
정액제의 경우 작가의 입장에서 컨텐츠 소모가 굉장히 빠르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작가가 쓸 수 있는 작품 양은 명확한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공장처럼 찍어 내도 한 달에 세 권, 네 권을 쓸 수는 없는 일이고, 설혹 문득 '그분'이 오셔서 세네 권을 한 달에 썼다 하더라도 그렇게 두 달, 석 달을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제가 정액제 하에서 『링크』를 연재할 당시 9개월 간 하루 조횟수가 평균 3만에서 4만 정도였습니다. 월 평균 90만에서 120만 사이가 꾸준히 나왔으니 가감은 있어도 대략 비슷한 수준입니다. 이건 제가 글을 잘 써서가 아니라 정액제의 특성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정액제의 특성을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5만 명의 남자가 5백 명의 여자를 놓고 일정 기간 동안 마음껏 취하라는 시스템과 같습니다.
비유가 19금스럽지만, 제가 느낀 바는 그러했습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5만 명은 5백 명에 대한 권리가 사라집니다. 따라서 능력이 닿는 한 최대한 많은 여자를 간 보고, 취하게 됩니다. 세상에는 5백 명의 여자보다 훨씬 더 예쁜 여자, 멋진 여자가 있지만, 그 여자들은 관심 밖입니다. 그 여자들은 돈 안 들여도 얼마든지 취할 수 있지만, 여기 5백 명의 여자들은 딱 오늘만, 혹은 딱 이번 달까지만 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5만 명의 남자들은 죽어라 5백 명의 여자를 떠돌며 취하게 됩니다. 개중에는 가끔 탤런트만큼 모든 남자들의 눈을 확 사로잡는 여자도 있어서 5만 명은 시뮬테이니어스하게 그 여자를 취하게 되지요. 혹은 조금 덜 예뻐도 5백 명 중에 가장 나은 여자에게는 5만 명의 남자들이 벌떼처럼 몰려 들게 됩니다.
세상에 나오면 아무 것도 아닌 작품이 정액제 시스템 하에서는 말도 안 되는 조횟수와 환호를 받는 이유는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전 제 작품 링크가 9개월 내내 연재를 하든 안 하든 매일 3~4만 조횟수가 나올 만큼 엄청나게 재미있다고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다른 작품들보다 덜 유치하고, 누구나 보는 데 거북하지 않은 로맨스를 담았을 뿐입니다. 거북함을 제거한 결과(민낯을 가리는 화장빨로) 모든 독자들의 선택을 받았을 뿐이었지요.
(본론으로 돌아와서) 근데 문제는 컨텐츠 소모가 기가 막힐 정도로 빠르다는 데 있습니다. 연재 작가는 출판 작가와는 달리 시장이 극히 한정되어 있습니다. 책 아니면 안 보는 분도 꽤 많고, 오고가며 빌리는 책(다시 빌려 오기 귀찮아!)과 달리 인터넷 연재는 한 회, 한 회 읽어 나가기 때문에 어디 한 군데라도 불만인 부분 나오면 바로 읽기를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특히 얼마 안 읽은 초반에 자신의 사상과 관념에 위배되는 부분이 나올 경우는 그 확률은 매우 높아집니다.
때문에 가급적 잘 써서 비싼 가격에 팔아야 수지타산이 맞습니다. 인터넷 연재에서 전자책으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이용하지 못한다면 연재 작가는 결코 전업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인터넷 연재에서 이미 컨텐츠 소모를 다해 버리면(볼 사람 다 보면) 전자책 판매는 처참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럼 인터넷 연재시에 수익을 다 뽑으면 되지 않겠냐고 말씀하실 분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이건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정액제로 가장 많은 독자와 작가가 모여 있는 조아라만 보아도 수위권에 있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 글을 써서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만일 컨텐츠 소모가 적었다면 몸이 아프거나 혹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재를 하지 못하더라도 얼마든지 고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있지만, 정액제 하에서 뼛속까지 탈탈 턴 상태에서는 더 이상 볼 독자가 남아나길 바란다는 게 욕심입니다.
전 앞으로 삼십 년은 더 글을 쓰며 살고 싶은 바람을 가진 작가로서 기존의 정액제 시스템이 제 바람과는 반대되는 시스템이란 것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물론 보완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작가로 하여금 반드시 한 작품을 완결해야만 다른 작품을 쓸 수 있도록 한다든가 작품에 대한 평가 부분에서 분량을 배제하고 일정 분량(대략 5천 자) 이상이면 분량이 얼마건 몇 회를 올렸건 상관없이 동일하게 취급한다든지 하는 방식으로요. 정액제 하에서 같이 작품을 쓰던 선배는 무조건 하루 한 편 이상 못 올리게 하라는 말도 했지만, 그건 너무 극단적이란 생각이 듭니다.
정액제의 장점도 무시 못 합니다. 독자의 입장에서 적은 비용으로 많은 작품을 읽을 수 있기 때문에 좋지요. 작가의 입장에서는 미리 설명드린 바와 같이 500명의 여자 안에 포함될 수 있으니 그냥 세상 밖에서 홍보하는 것보다 '선택'될 가능성이 훨씬 높습니다.
이러한 정액제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잘 보완한다면 정액제도 결코 나쁜 제도는 아니라고 봅니다.
생각나는 대로 썼더니 두서가 없군요. 감안해 읽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음에는 편 당 과금제의 장단점에 대해 한번 써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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