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글쓰는 사람이 꾸는 꿈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
13.10.09 13:25
조회
1,324

한 편의 로맨스 코미디 영화 같은 꿈을 꾸었다.
우리집에 여자애가 한 며칠 지내다가 떠나게 되었다.
그 여자애도 나도 같은 목적을 갖고 있었다.
자기 가족들에게 사귀는 사람이 있는 척 가장하기 위해서 그런 일을 꾸몄던 것이다.
그런 연극을 벌이는 남녀가 둘 다 아직 스무 살도 되지 않은 파릇파릇한 나이라는 점, 그리고 그 연극을 여자애 집이 아니고 남자 쪽 집에서 벌인다는 점, 그러면 나는 목적을 달성하겠지만 여자애 쪽은 따로 사귀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자기 식구들에게 알려 줄 수 있느냐 하는점 등등.... 여러 모로 엉성한 설정이었지만 꿈이란 게 원래 엉성한 거니까 그 부분들은 그냥 넘어가기로 하고ㅡ

 

 

나는 현실의 나와는 달리 아주 명석한, 학생회장 타입의 남학생이었고, 여자애도 비슷하게 똑똑하고 야무진 아이였다.
꿈꾸는 사람이 지난 며칠 동안 인스턴트 냉면이나 자장면 따위만 먹었던 탓에 뜨끈뜨끈한 국물이 먹고 싶었는지 내 꿈에는 생선 매운탕이 밥상에 올라왔다.
여동생에게 수저를 가져오라고 시킨 다음,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숟가락으로 내가 열심히 매운탕 국물을 떠먹고 있는데 여자애가 갑자기 식탁에서 일어서더니 짐을 챙기기 시작하였다.
자기 집으로 돌아가겠다는 것이었다.
그제서야 여자애가 아직 식사를 하지 않은 것을 깨달은 나는 여자애를 붙잡아 앉히고 나의 매너 없는 행동에 관한 해명을 하려 들었다.
밥상 위에 수저들이 얹혀 있는 것을 내가 못 봤었다, 그래서 수저를 가져오라고 시켰었다, 너에게 식사를 하라고 권하지 않았던 건 그 때문이다.... 등등.(나중에라도 수저를 발견했으면 식사를 권했어야 하는데 어째서 계속 여동생이 수저를 가져오기를 기다렸고, 그러면서 나는 왜 혼자서 식사를 시작하였는가 하는 점은 내 꿈이 안고 있던 또 한 가지 허점이다.)

 

 

그런데 막상 얘기를 시작하자 내 '해명'은 엉뚱하게도 지난 며칠간의 동거에 대한 회고 형식을 띠게 되었다.
  "널 처음 본 순간 난 널 부른 것을 후회하였어."
아, 이 절묘한 언어 감각을 보라!
얼핏 여자애의 첫 인상이 신통치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말로 운을 뗀 나는 곧바로 반전으로 들어갔다.
  "이런 일로 널 만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하고 말야."
아직 결혼 적령기에도 이르지 않은 미성년자들 주제에 마치 결혼하라는 가족들의 성화에 지친 30대 후반의 노총각, 노처녀처럼 따로 사귀는 사람이 있는 척 가족들을 속이는 연극에 동원시키기에는 너무 해맑은 소녀에 대한 아첨, 그런 불순한 의도로 만나지 않았으면 어쩌면 싹텄을지도 모르는 진정한 애정의 가능성에 대한 아쉬움....등을 담은 나의 언어 구사력에 보이지 않는 관중이 들리지 않는 감탄을 일제히 토했다.

 

 

소녀는 분명 내 말에 감동한 눈치였다.
그 뒤에도 나는 몇 마디 말을 더 하였지만 그건 지금 생각나지 않고ㅡ 아무튼 내 말을 들은 소녀가 섭섭한 감정을 풀고 연극으로 시작된 관계가 진정한 사랑으로 접어드는 단계에 이르기도 전에 나는 오줌이 마려워 꿈을 깨고 말았다.
무슨 꿈이 이 모양이람!
어째서 난 꿈을 꾸면서까지 언어를 가다듬는 버릇을 버리지 못하는 거야!


Comment ' 3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강호정담 게시판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209012 낙월소검 볼라고 했는데 +4 Lv.54 야채별 13.10.06 1,169
209011 이제는 미소녀 애니가 재미 없네요?? +18 Lv.19 ForDest 13.10.05 1,543
209010 단언컨데 내 인생에 연애상담 할 일이 없을 줄 알았는데 +30 Lv.6 올드뉴비 13.10.05 1,706
209009 역시 뭐든 참는다는 건 너무 힘든 것 같아요. +6 Personacon 별빛밤하늘 13.10.05 1,046
209008 지금까지 본 여주중에 한손에 꼽을만큼 멋있네요. (여주... +2 Personacon 엠피쓰리 13.10.05 2,874
209007 내 독자 들은... +12 Lv.18 글도둑 13.10.05 1,257
209006 뭐랄까 인터넷상에서 친목질이... +24 Lv.25 시우(始友) 13.10.05 1,551
209005 감기가... 아주 독하네요... +6 Lv.39 도버리 13.10.05 931
209004 여러분? +22 Personacon 이설理雪 13.10.05 1,263
209003 조금 늦게 덱스터 마지막 시즌을 보게 되었습니다.(미리... +5 Lv.6 올드뉴비 13.10.05 1,112
209002 으으 플래티넘... +3 Lv.78 IlIIIIIl.. 13.10.05 1,220
209001 롤 다이아 달고싶어요... +11 Lv.14 피즈 13.10.05 1,251
209000 집에와서 노래를 틀었는데 이런 이질감이.. +2 Lv.55 영비람 13.10.05 1,086
208999 일반연재란에 연재를 하고 있노라면... +22 Personacon 메앓 13.10.05 1,407
208998 무한도전 보니까 왠지 마음이 이상하네요. +30 Personacon 묘로링 13.10.05 1,527
208997 정말 안 될.... +4 Personacon 엔띠 13.10.05 1,131
208996 솔직히 푸틴 좋아하는 사람들 이해가 안가요 +27 Lv.96 강림주의 13.10.05 2,131
208995 저희 아부지. +10 Personacon 이설理雪 13.10.05 1,810
208994 롤드컵 진짜.. +4 Lv.47 그래이거다 13.10.05 1,258
208993 아시나요? (41) +8 Lv.51 한새로 13.10.05 1,175
208992 제 슬픈 퍼스나콘... +7 Personacon 별빛밤하늘 13.10.05 1,173
208991 롤드컵 우승~ +4 Lv.1 [탈퇴계정] 13.10.05 1,134
208990 미스터피자,피자헛은 도우선택 불가능한가요? Lv.15 Gaster 13.10.05 1,414
208989 근데 강호정담은 자유게시판이잖아요? +5 Personacon 마존이 13.10.05 1,078
208988 게임에 쓸 플레이어 도트 이미지... +4 Personacon 엔띠 13.10.05 1,236
208987 요즘 미드 볼데 없나요? +4 Lv.99 flybird 13.10.05 1,100
208986 음 달조 히든클래스가 사기인가요? +11 Lv.99 낙엽사묘정 13.10.05 1,520
208985 두시간동안 컴퓨터정리하니까 칠백기가정도 나오더래요 +8 Personacon 마존이 13.10.05 1,227
208984 요즘에는 출판사들이 투고를 아예 안 받나요.... +2 Lv.5 10월 13.10.05 1,367
208983 검은사막 클로즈베타가 5일남았군용! +10 Personacon 마존이 13.10.05 1,299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genre @title
> @subjec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