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불 시트를 빨아야지 빨아야지 하면서도 계속 미루기만 하다가 마침내 날 잡고 세탁에 들어갔다.
어지간하면 세탁소에 맡길까 하고 가격을 물어봤더니 만 5천 원인가 얼만가를 내란다.
그 정도면 거의 새로 하나 사는 것과 같은 가격이다.
이러니 요즘 길가다 보면 사람들이 버린 이불뭉치가 자주 눈에 띄었구나 싶다.
이불이 일회용품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한번 쓰고 버리곤 하는 지금 내가 사는 세상의 인스턴트적인 행태가 참 마음에 안 든다.
나는 그렇다. 뭐든지 하나를 사면 수명이 다할 때까지 오래오래 사용하는 편을 좋아한다.
굳이 자원 낭비니 뭐니 하는 면까지 고려할 것도 없이, 그저 그렇게 절약하는 편이 내게 맞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그런 사고방식이 더러 빈축을 사는 세상이 된 모양이다.
적당히 활발한 소비를 해주어야 산업이 발달하고 국가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정말 이해가 안된다. 함부로 물자를 낭비해야 잘 돌아가는 사회라니.
청렴결백, 청빈, 청백리.... 이런 단어를 선호하는 나로서는 도무지 적응이 안되는 세상이다.
산업구조니 뭐니 하는 거시적인 차원은 난 모른다. 알고 싶지 않다.
내가 아는 것은 검소하게 쓰던 것을 또 쓰고 또 쓰는 행동이 그 자체로 덕성스럽다는 것이다.
때가 묻으면 빨고, 해어지면 기워 가며 쓰는 생활이 단지 경제적인 차원을 떠나, 그 본인의 정신건강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을까?
조금 낡으면 이내 집어던지고 간단히 새것을 집어드는 행동양식은 곧 얄팍하고 참을성도 없고 믿음도 가지 않는 인간성을 낳는 것이 아닐까?
한푼의 돈에도 바들바들 떠는 태도가 금전에 얽매인 궁상맞은 정신상태를 나타내기도 하겠지만, 반대로 마치 소비를 하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것처럼 허겁지겁 포장지를 뜯고 부지런히 쓰레기통을 채워 가며 사는 모습 또한 참다운 자유와는 거리가 먼 신경증적인 삶이 아닐까?
깨끗이 빨고, 구멍난 곳은 천을 대어 깔끔하게 기운 색 바랜 옷에는 갓 상표를 뜯어낸 새옷에서 느낄 수 없는 건강한 아름다움이 있다는 생각은 나만의 착각일까?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불 시트는 이제 그만 빨고 새로 하나 장만하고는 싶다. 오전을 몽땅 바쳐 빨아 말렸는데도 영 깨끗해지지를 않네.
Commen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