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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1 야생까마귀
작성
04.09.04 13:35
조회
651

야생까마귀는 MT를 갈 때마다 하는 일이 있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집에 전화를 걸어 문안인사를 드리는 것이지요. 그 내용은.

"일어나셨어요? 아침은 잘 드셨나요?"

"기분좋게 드셨다니, 잘 됐어요. 식사를 제대로 해야 하루가 즐겁지요? 그동안 집안에 별일 없나요?"

"와아. 역시. 어머니. 믿음직스러워요."

어쩌구. 저쩌구. 가족이라고 하기에는 꽤 친밀한 대화를 5-7분 정도 소모합니다. 등뒤에 와닿는 시선이 따갑다하는 생각이 들면 급하게 이별인사를 나누지요.

"어머니. 사랑해요∼. 시간을 너무 끌어서 어쩔 수 없네요. 이만 끊어야될 것 같아요."

라고 마무리를 합니다.

그리고 몸을 돌리면 모두들 흰눈을 하고 있습니다. '나도 전화를 해야 되는 데 저것이!'하고 말하는 듯한 분노에서 '말로만 듣던 근친상간?'하고 반문하는 듯한 의심까지.

"누가 들으면 엄마와 연애하는 줄 알겠어."

"으응. 맞아. 사랑하는 걸∼."

친구의 말에 재빨리 대답했습니다. 얼음처럼 꽁꽁 얼어붙은 모습을 뒤로 하고 몰래 본심을 중얼거렸습니다.

"어쩔 수 없잖아. 부엌데기 신세를 함부로 나불거리고 싶지 않으니까."

야생까마귀의 정신은 처음 MT를 갔을 때로 돌아갔습니다. 세면도구를 챙기고, 여벌의 옷도 챙겼습니다. 용돈을 줄까하고 말하며 들어오시던 어마마마께서 짐을 챙기는 모습을 보고 근심스런 얼굴을 했습니다.

"뭐니? 며칠 숙박할 사람처럼."

"당연하잖아. MT니까."

"그런데, 이렇게 많이 챙겨? 빈몸으로 가도 되잖아."

왠지 동문서답같은 기분이.

"………혹시 MT를 소풍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가요?"

"아니었어?"

반문하는 목소리에 경악이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신경질적인 눈을 보아하니 꽤 불안한 듯 했습니다. 곧이어 큰 소리를 지르시더군요.

"안돼!! 처녀가 밖으로 싸돌아다니다니!!"

왠 시대착오적인 말?

같은 연령의 어머니들 중에서 제일 개방적인 어머니가 하는 말이라곤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파마도 NO! 염색도 NO! 통금시간은 해가 질 때!인 유교사상에 찌들은 파파에게서 자유노선을 구축한 어마마마의 말이라니! 이 내가 잘못 들었나?

야생까마귀는 멍한 눈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말은 MT지만, 꼭 가야되요. 생물채집을 하는 것이니까, 빠지면 학점이 깍여요. 1학년에서 4학년까지 전부 간다구요. 교수님도 동참하세요."

"너희 과에 남자가 한명도 없다면 허락하마. 하지만 열댓명 정도 있는 것을 아니까 허락할 순 없어!"

삐이익------!!

머리 속에서 에러 메세지가 떠올랐습니다. 파파의 입에서 나왔다면 본심이라고 생각될 말이, 묘한 부분에서 배배 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파파마저도 교수님 동참이라는 사실에 승낙한 와중에) 본심을 감추기 위해 아무말이나 늘어놓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진심을 말하세요."

"뭐?!"

"진심이요! 진심!! 그런 허울좋은 말을 믿을 정도로 바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처음에는 기어오르지마!라고 외치는 듯한 눈초리가 조금씩 사그러들었습니다. 멀건 눈으로 오른쪽의 상단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리는 말이….

"너, …평소에 쌀은 얼마만큼 씻었니?"

"계량컵으로 4컵이요."

갑작스런 말에 순순히 대답을 하면서도 석연치 않더이다.

"시장은 봤어?"

"……봤어요. …여기 이렇게."

역시 이번에도 순순히 대답했습니다. 냉장고 문을 열고 가득 채워져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까지 했습니다. 그제서야 어머니의 얼굴이 풀리더이다.

"됐어. 이제 MT가도 좋아."

"………역시 집안일 때문이었군요."

"어쩔 수 없잖아. 네가 집안일을 거들어준 덕분에 손에 물 묻히지 않은 지 어언 10여년이야. 된장국을 어떻게 끓였는지 조차 가물가물하다고."

이것도 이유가 있습니다. 아들이 태어날 적부터 이유없이 아팠습니다. 당시 의사선생님도 어떻게 된 병인지 모르겠다고 말하시면서, 이 녀석이 죽을 먹으면 그때부터 낫는 징조라고 보십시요라고 말하더군요. 초등학교 4학년이 되어셔야 겨우 낫는 징조를 보인 동생, 초록물고기는 그야말로 걸어다니는 돈덩어리입니다. 죽지않도록 병원비에 영양주사(당시 이것이 병원비와 맞먹었음)에, 그것을 갚기위해 빚을 몽땅 지고, 어마마마와 파파는 맞벌이에 부업으로 야간일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건장한 체구의 파파조차 집에 들어오자마자 기절하듯 잠이 들었습니다.

그렇다면 집안일은 누가 할까요?

있습니다. 딱 하나뿐인 딸이! 초등학교 입학할 당시부터 조금씩 집안일을 배우고, 4학년이 되자마자 전권위임! 야생까마귀가 대학입학한 후에 빚을 다갚고, 야간일은 하지않고 널널한 상황이 되어도 위임된 집안일은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집안일은 딸의 것이 되어버렸으니까요.

이런 상황이다보니 곤충을 채집하고 식물들을 조사하면서도 마음은 집을 떠나질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숨을 쉬면서 자꾸 이런저런 망상이 떠올랐습니다.

그야말로 좌불안석!

아침이 되자마자 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모두들 잘 있는지 확인해야 마음이 놓일 것 같았습니다. 가스는 잘 잠그었는지, 밥은 제대로 먹고 있는지, 빨래감을 쌓아놓고 서로 안하겠다고 싸우는 것은 아닌 지. 무언가 꼭 하나는 일을 낼 것 같은 불길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어머니! 그동안 아무일 없었지요?"

[응, 별일 없어.]

어마마마의 대답에 한시름을 놓은 순간, 배경음으로 심상치않은 대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우웩! 된장국이 왜이래?! …아앗!! 아빠 비겁해! 언제 계란 후라이를!]

[뺏어가지마! 이 멍청한 자식! 이 정도는 스스로 해! 가장이 만든 요리에 손대지 말란 말이다!]

두두두두. 벌컥(정확히는 냉장고 문의 술병이 부딪히는 소리)

[이럴수가! 계란이 없잖아! 그럼, 아까의 것이 마지막?!]

[먼저 손대는 자가 임자다!]

[엄마! 아침밥이 이게 뭐야?! 맛이 더럽게 없는 된장국에 김치밖에 없잖아! 김이라도 구워줘!]

[엄마라고 부르지마! 어머니라고 불러! 교양없이! 난 그런 아들로 키운 적 없어!!]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어머니! 적어도 인간이 먹을 것으로 준비해 주셔야죠!!]

[너어∼. 이제는 아예 겁을 상실했구나! 주방장이 만들어 준대로 얌전히 처먹어! 그렇지 않으면 굶어!!]

[그럴수가!]

[난 너의 법이요, 생명이요, 신이다! 어설프게 반란을 일으킬 생각이라면 당장 이집에서 나가!!]

풀썩!

야생까마귀는 쓰러지고 말았습니다. 귀에서는 위이잉∼!하는 소리가 맴돌았습니다. 눈앞은 노랗게 변했습니다. 머리속은 텅 비었습니다.

-이 무슨, 아비규환?!

참고로, 아비규환이란. 불교에서 말하는 가장 고통스러운 아비지옥(통칭 무간지옥)에서 울부짖음, 참혹한 고통 가운데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상태를 일컬음.

결국 부엌데기는 MT를 갈때마다 식구들을 모두 불렀습니다. 그 후에 쌀은 얼마만큼 씻고, 냉장고 안에는 뭐가 있으며, 세탁기를 돌릴 때에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인가하고 설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자, 이제 대강 사태를 짐작하시겠지요? 맨처음 쓰여져있던 통화내용의 의미가 액면으로 해석할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럼 자세한 해석을 첨부하겠습니다.

"일어나셨어요? 아침은 잘 드셨나요?"

번역: 그정도로 챙겨드렸는데, 이상한 것을 드시지는 않았겠지요?

[그래. 잘 먹었어. 덕분에 아침이 조용했어.]

"기분좋게 드셨다니, 잘 됐어요. 식사를 제대로 해야 하루가 즐겁지요? 그동안 집안에 별일 없나요?"

번역: 오늘도 어머니의 독재정권은 변함없나요? 남자들이란 항시 반란을 생각하는 종족이라 편하진 않으시겠는데.

[별일없어. 호호호. 딴에 머리가 굵었다고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하지만, 제깟 것이 어쩌겠어? …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그만큼 뼈저린 충고를 받아왔으면, 슬슬 현실이란 것을 깨달을 날이 와야 되는 것 아닌가? 다들 학습능력이 떨어져. 특히 아들놈은 젊은 놈 답지않게 창의력까지 떨어진단 말이야. IQ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와아. 역시. 어머니. 믿음직스러워요."

번역: 젠장. 파파는 아니더라도 동생은 기대하고 있었건만.

"어머니. 사랑해요∼. 시간을 너무 끌어서 어쩔 수 없네요. 이만 끊어야될 것 같아요."

번역: 어머니의 스트레스를 풀어드리느라 시간을 많이 끌었어요. 뒤에서 친구들이 죽일듯이 노려본단 말입니다!

[어쩔 수 없네. 이만 끊자. MT에서 돌아오면 그 기념으로 아구탕을 끓여다오.]

이것이 진실이었습니다.


Comment ' 8

  • 작성자
    Lv.53 박람강기
    작성일
    04.09.04 14:00
    No. 1

    놀랍다, 요즘 유머는 왜 이렇케 어려운 거샤!!! ㅋ 재밌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 철동
    작성일
    04.09.04 15:32
    No. 2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東 仙
    작성일
    04.09.04 15:57
    No. 3

    [뺏어가지마! 이 멍청한 자식! 이 정도는 스스로 해! 가장이 만든 요리에 손대지 말란 말이다!]

    단연 최고 였습니다 >.<b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 AMG
    작성일
    04.09.04 16:54
    No. 4

    처 먹어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붉은이리
    작성일
    04.09.04 17:40
    No. 5

    실....실화일까???
    믿기지가 않아~~~~~~ OTL
    웃대보면 지어낸 이야기가 엄청 많던데 -_-;;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39 파천러브
    작성일
    04.09.04 23:10
    No. 6

    좀..어렵다고 느껴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메아리歌
    작성일
    04.09.04 23:34
    No. 7

    미안해요. 무조건 퍼갈게요. 가족사가 들통나는게 싫으시면 여기 와서 방명록에 "누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기 전에 당장 삭제못할까!"라고 3번만 써주세요.OTL

    www.cyworld.com/eivers

    찬성: 0 | 반대: 0 삭제

  • 작성자
    Lv.10 애린
    작성일
    04.09.05 08:18
    No. 8

    너무 재미있어요~^^
    잘 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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