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아베라는 정치인 한 개인의 문제보다는 일본을 지배하는 자민당 내부의 계파 파벌 싸움에서 '합리적인 보수(예를 들면 무라야마 전 총리의 파벌)'가 패배하고, 극우주의에 동조하는 계파들이 부상한 것이 문제가 아닌가 합니다. 전체적으로 우리가 일본이 빠르게 우경화되었다고 느끼는 것도 결국 자민당 내부의 권력 균형이 90년대에서 2000년대로 넘어오는 한 지점에서 고이즈미에 의해 큰 폭으로 뒤틀렸고, 그 과정에서 합리적 보수는 완전히 몰락해버렸으니까요.
이 포스트 고이즈미 체제에서 정치인 한 사람이 바뀐들, 이 정치 환경에서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유신회와 같은 보다 과격한 정당, 자민당 내부의 보다 강경한 파벌이 힘을 얻어가는 세태 속에서 아베보다 더하면 더한 정치인이 나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 않을까요.
또 하나 되짚어볼 부분은 우리가 알던 국제 정치의 역학 관계가 제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는 점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점입니다. 아베라는 정치인이 하는 말은 분명히 아니꼽지만, 일본이라는 나라가 원래의 강대국 지위로 돌아가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생각합니다. 1차대전 전후 베르사유 체제에서 프랑스가 그토록 반발했음에도 독일이 다시 강대국 지위로 복귀한 것이 역사적 흐름이었듯이요.
결국 언젠가는 일본이란 나라의 변화된 정치 풍토에서는 제 2, 제 3의 아베가 나와 지금 아베가 하려는 일을 하고, 자국을 ‘정상 국가(즉 군사대국)’로 되돌리려는 시도를 할게 뻔합니다. 하필이면 그것이 우리 시대에 이루어졌다는 것이 유감이지만요.
그래서 저는 당장 선악에 기초해서 일본을 보는 것보다는 조금 냉정하게 그들을 바라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지금 그들이 무얼 생각하고, 어떤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들이 꿈꾸는 동아시아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 그들의 생각을 알아야만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을 보다 현명하게 고를 수 있지 않을지. 저는 그렇게 생각해봅니다.
아베 이야기를 하다보니 미래 이야기가 나와버렸군요. 논점이 피탈되었다면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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