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물 하나 제대로 못 맞추는 주제에 나는 독신이다.
한 달 월급에서 얼마간씩 떼어다 바치고 친지 집에 얹혀 사는데, 살림하는 사람이 바깥에 나가 장사를 하기 때문에 저녁 밥상 차리는 날보다 안 차리는 날이 더 많다.
그러니 자연 외식을 하는 날이 잦다.
라면이나 과자 부스러기로 적당히 때우고 식사에 들어가는 돈은 저축을 하려고도 해봤었는데, 그런 생활을 반 년쯤 계속하고 나니 거의 위기의식이 느껴질 만큼 몸 상태가 망가지는 바람에 먹는 것 하나만큼은 제대로 먹으면서 살기로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요즘 자주 찾아가게 된 한식집이 있다.
탁자들 간격이 다소 좁아서 등뒤로 종업원들이 바쁘게 오가는 기색이 그대로 전해져 오는 탓에 허겁지겁 쫓기듯이 먹을 수밖에 없는 분위기의 허름한 집이다.
대신에 나오는 음식의 질에 비해 가격은 싸다.
몇 차례 찾아갔더니 레스토랑으로 치면 지배인에 해당되는 듯한 아가씬지 아줌만지 한 명이 내 얼굴을 기억하겠다는 듯한 미소를 보내 오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그녀의 머릿속에 입력된 그놈의 기억이란 것이 꽤나 변변찮은 것이었던 모양이다.
오늘은 자리를 잡고 앉는 내게 달랑 냉수만 갖다 주고 물수건은 슬그머니 생략을 하고 있었다.
적당히 대해도 되는 손님으로 인식되었다는 얘기다.
하기사 한창 바쁜 시간대에 찾아와 탁자 하나를 혼자 차지하고 앉아서는 고작 갈비탕이나 물냉면 하나를 시켜먹고 돌아가는 손님이 식당 사람들 눈에 뭐 그리 대수롭게 비치랴마는, 주문한 음식을 쟁반에 담아 오지 않고 그냥 손으로 하나씩 들고 오는 걸 보고는 기분이 조금 나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무리 주방 바로 앞 자리라고는 하지만 말이다.
게다가 배추김치는 한눈에 척 봐도 다른 손님들이 먹다 남긴 김치를 적당히 합친 물건이 분명하였다.
불쾌하다.
나라는 인간이 워낙에 사람 먹는 음식을 함부로 버리는 짓을 혐오하는 터라 남들이 먹다 남긴 반찬이라도 너무 불결하지만 않으면 먹어 줄 용의는 있다.
그러니 내가 불쾌해진 까닭은 저 사람들이 남이 먹다 남긴 김치를 내게 주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김치를 내놓기 전에 조금만 다독거렸으면 다른 사람이 먼저 손을 대었던 물건임을 내가 모르게 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작은 수고마저도 생략해 버렸다는 데 있다.
불쾌해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는 손님이라는 뜻인가....
'다시는 내가 이 집에 오나 봐라.'
그렇게 마음먹으면서도 오늘도 나는 일단 나온 음식들은 마지막 국물 한 방울까지 싹싹 비워 내었다.
집에서건 음식점에서건 간에, 젓갈이나 장아찌같이 아주 짠 반찬만 아니라면 이렇게 접시 바닥이 나오도록 깨끗이 먹어치우는 내모습을 남들은 주접스럽다고 눈살을 찌푸릴지 모르지만 내 자신은 썩 마음에 들어 한다.
이건 식탐의 표현이 아니라 음식물에 대한 존중의 표현인 것이다.
"또 오세요."
홀 아가씨가 생글생글 웃는 얼굴에 나 역시 생글생글 웃어 주긴 했지만 아마 다음부터는 그 집에 가지 않기 쉬우리라....
그건 그렇고, 오늘도 나는 독신으로 사는 사람의 비애를 고기 굽는 연기가 자욱한 한식집에서 잠깐 맛보았었다.
혼자서 영화 보고, 혼자서 쇼핑하고, 혼자서 커피 마시고 빙수 사먹고ㅡ
남들은 모두 끔찍하다고 아우성을 치는 일들을 무덤덤하게 잘도 해내는 나이지만 삼겹살이나 불고기를 구워먹는 일만은 혼자서 하기가 영 어려운 것이다.
반찬 접시들이 가득한 식탁 앞에 앉아 자기 손으로 고기를 구워 혼자 꾸역꾸역 먹는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우울한 것이다.
모르지. 어쩌면 장차 그 일까지도 씩씩하게 잘해 내는 단계에 도달하게 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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