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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1 [탈퇴계정]
작성
12.12.07 15:55
조회
1,874

 

(피시방에서 일하던 시절의 얘기)

 

 

피시방에 매일 오는 손님 중에 마흔 안팎의 부부가 있다.
남자는 직업 게이머다.
임요한이니 누구니 하는 그런 '스타'들은 특수 케이스일 테고, 나머지 고만고만한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온라인 게임이 과연 직업으로 택할 만한 건지 어떤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온종일 리니지를 하는 것 말고는 그가 달리 붙잡고 하는 일은 없는 듯하였다.
남편과는 달리 아내는, 이쪽도 하루의 꽤 많은 시간을 게임에 쏟는 편이기는 하였으나 그래도 어엿한 자기 사업을 가지고 있었다. 안마방이라고 하던가 터키탕이라고 하던가....

사실, 나라는 인간이 꽤나 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의 소유자다.
혼외 정사, 혼전 섹스, 매춘.... 이 정도는 너그러이 봐 줘야 세련된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요즘 추세인 듯하지만 세련되지 못한 나는 그런 것들을 대하면 거부감부터 느껴진다.
성적 문란과 동의어로 알려진 ㅡ바깥에서의 인식뿐 아니라 아마 실제로도 그럴 것으로 짐작되는ㅡ 안마소를 경영하는 여자인 걸 알고 나니 갑자기 그녀가 좀 꺼림칙하게 여겨지는 것이었다.
  '어쩌면 젊었을 때는 본인도 현역으로 뛰었을지도 몰라.'
화대를 차곡차곡 모아 포주로 신분 상승을 한 창녀.... 뭐, 그런 케이스 말이다.
뭐, 꺼림칙하건 어떻건 피시방 알바는 손님에게 여전히 공손하게 대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고, 그래서 그녀와 나는 지금까지도 그럭저럭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음, 이 여자....
비쩍 마른 왜소한 체구에 얼굴 생김새도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떠나 전체적 느낌 자체가 피곤하게 시들어 있는 느낌을 주는, 영 볼품없는 외양을 한 여자인데, 그런데도 실제로는 보스 기질이라 할 만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하기사 그 계통에서 오너 자리에 올랐을 정도면 보스 기질이 없을 수가 없겠지.
그리고 그 보스 기질이란 것도 단지 아랫사람들을 잘 부리는 유능한 상전이라는 차원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인정스럽달까, 후덕스럽달까, 이명박처럼 조그만 눈에 궁상기가 좔좔 흐르는 겉모습과는 잘 일치가 되지 않는 자상함이 더해진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그 계통에서는 그래도 한 자락 하는 듯한 그녀의 남편을 '형님, 형님' 하고 부르며 함께 게임을 하는 2,30대의 리니지 손님들이 있는데, 그들을 만날 때마다 그녀는 이걸 마셔라, 저걸 먹어라 하고 늘 챙겨 주곤 하였다.
아마도 그녀가 데리고 있는 여자들도 그렇게 잘 챙기며 살 듯하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그녀들을 착취하는 것이 아닌 게 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차피 그 바닥에 들어간 여자들이 만날 수 있는 고용주들 중에서는 그나마 가장 인간미 있는 바람직한 고용주가 그녀일 듯하였다.

음, 그러고 보니 나한테도 잘 대해 주었던 것 같다, 이 여자.
온라인 게임이란 게 정말 생계 방편이 되긴 되는지 허구한 날 피시방에서 세월을 보내는 이 리니지 팀들은 식사도 피시방에서 하는 때가 종종 있는데, 그렇게 배달을 시킨 닭도리탕이니 탕수육이니를 놓고 작은 회식을 벌이면서도 그들은 피시방 알바에게 좀 먹어 보라는 소리 따위는 절대 하지 않는다.
물론 나 역시 그들이 벌이는 회식판에 곁들이로 앉아 한 입 먹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지만, 그래도 뻔히 보이는 사람을 싹 무시하고 자기들만 향연을 벌이는 그들의 무신경에는 매번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치 내가 잠깐 동안 그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투명인간이 된 듯싶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자리에 그녀가 끼이면 양상이 좀 달라진다.
  "아저씨, 식사 하셨어요?"
  "안 하셨으면 이것 좀 같이 드셔 보세요. 어차피 남아서 버려야 해요."
무슨 일을 처리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설렁설렁 잘 넘길 듯한, 전라도 쪽 억양이 조금 느껴지는 시원시원한 말투로 자신이 경영하는 소프랜드 직원들을 챙기듯 나까지 챙기곤 하는 것이었다.
(어, 갑자기 그녀가 무지 고마워지네....)

남들을 그렇게 챙기는 그녀가 제 남편을 챙기지 않을 리 없다.
식사는 했느냐, 뭘 먹고 싶지 않느냐 하고 만날 때마다 참 열심히도 챙기고 있었다.
피시방에 올 적마다 남편에게 먹일 샌드위치며 생과일 쥬스 따위를 들고 있었고, 한동안은 무슨 한약 팩 한 묶음을 피시방 냉장고에다 재어 두고 하나씩 꺼내어 먹이기도 하였다.
남자가 사용하는 컴 사용료를 내는 것도 그녀였다.
  '저 비쩍 마른 남자는 무슨 복에 저런 여자를 만났을꼬. 장동건이 울고 갈 이 미남자도 여자가 없는데.... '
보고 있노라면 눈꼴이 시어 문득문득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면 그녀가 그러는 것은 당연한 일일 듯하였다.
여느 여자들은 빠듯한 수입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어 살림을 불리는 방식으로 남편에게 보탬을 주지만, 자기 일에 시간을 쏟느라 살림에 어느 정도 등한할 수밖에 없는 여자들은....
아니, 아니다. 살림에 충실하고 등한하고의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이건.
우리 사회는 남자가 바깥에서 일하여 식솔들을 먹여 살리는 수컷의 전통적인 역할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당장 자괴감에 빠지지 않을 수 없도록 사회 통념이니 보편적 정서니 하는 것들이 압력을 가하는 시스템이 확립돼 있다.
여자의 수입이 남자의 수입을 능가할 때, 더 심한 경우는 여자가 남자를 먹여 살리는 꼴이 됐을 때, 여자는 자기 남자의 수컷으로서의 자부심이 손상받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할 필요가 있다.
지금 그녀가 열심히 표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 각별한 주의다.
  ㅡ나는 이 정도로 내 남편을 중하게 여긴다. 남편의 경제력보다 내 경제력이 더 우월하다고 해서 행여라도 내가 그를 무시한다고 착각하지 말기 바란다.
그녀의 그 극성스럽다면 극성스러운 남편 챙기기를 말로 표현하면 이렇게 되는 셈이다.

뭐, 나쁠 것 없는 일이다.
여자가 제 남편의 위상을 높여 보겠다는데 나쁘게 볼 건 뭐 있겠는가.
물론 그러는 과정에서 그녀가 자신이 남편 눈치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남들까지 자신과 함께 그의 눈치를 봐 줄 것을 기대하는 건 좀 밉살스럽지만....
(심각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런 기미가 살짝 엿보였더랬다. 왜, 있잖은가. 남들 앞에서 제 남편 얘기 하면서 극존칭을 사용하는 그런 류의 여자들의 꼴불견.)
하지만 아무리 그렇게 남자 앞에서 설설 기는 것처럼 굴어도 일단 여자 쪽에 경제력이 있으면 그로 인한 자신감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법이다.
그 자신감이 바깥에까지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사건이 며칠 전에 발생하였다.

피시방마다 다 그럴 테지만, 우리 피시방에도 '명당'이 있다.
그래 봤자 별 건 아니고 그저 컴 사양이 다른 자리들보다 비교적 양호하고 카운터 가까이 자리잡고 있어 피시방 전체의 분위기를 그곳에서 결졍한다는 정도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아무튼 뜨내기 손님은 넘볼 수 없는 자리라 할 수 있다.
(처음 오는 손님이 멋모르고 그런 명당 자리에 앉으려 들면 얼른 나서서 다른 자리로 유도하는 것도 피시방 알바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일종의 선민의식이랄까, 게이머들은 그런 부분에서 티를 좀 낸다.
일단 자기 마음에 드는 자리가 있으면 그 자리에 집착하곤 한다.
다른 이가 그 컴에 새로 프로그램을 깔면 냉큼 지워 버리고 그 자리를 자기 사유의 것으로 만드는 것이다.
근래 들어 우리 피시방에 드나들기 시작한 회원이 있는데, 이 사람도 컴 하나를 그렇게 사유화 하려 들었다.
하루에 열두 시간씩 리니지를 하며 가게 매상을 올려 주곤 하니 사실 그에게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자리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다른 기존 단골들이 늘상 앉던 자리였다는 점이었다.
게임을 하러 오는 시간이 조금씩 서로 비껴 갈 때는 괜찮았는데 어느날 결국 충돌이 일어났다.

어느 날 아침, 좀 있으면 새로 단골이 된 손님이 올 시간에 위에서 얘기했던 부부가 피시방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남자만 게임을 하고 여자는 옆에서 보고만 있었는데, 나중에 보니 어느 틈에 앉았는지 바로 그 문제의 자리에 냉큼 앉아 자신도 게임을 시작하고 있었다.
아침 청소 하느라 정신없이 왔다 갔다 하던 나는 그 동안 새 주인을 맞은 그 자리에 그녀가 앉는 것을 막을 틈이 없었고, 실상 그들 부부 두 명을 합하면 아직도 우리 피시방의 가장 큰 고객인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자리에 앉는 것을 막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아침 청소가 거진 끝나 갈 때 그 자리의 '주인'이 왔다.
새로운 단골은 엉거주춤하니 서서 뭐라고 뭐라고 툴툴거리고, 여자는 여자대로 부은 얼굴을 하고서 묵묵히 게임을 하는 모습 앞에서 나는 그만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 왔다.
사장 같으면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하였을까?

조금 뒤, 새로운 단골이 잠깐 자리를 비웠을 때 갑자기 여자가 왈칵 짜증을 부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왜 나한테만 자꾸 일어나라 그래요?"
보아하니 남편이 여자한테 자리를 양보하하고 권한 모양이었다.
게이머들에게는 그들대로의 인간관계가 있으니 그 상황에서 남자가 그렇게 나온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지만, 여자는 여자대로 그동안 쌓인 것이 많았던 모양이었다.
  "이 사람이 와도 일어나라, 저 사람이 와도 일어나라.... 왜 맨날 나만 일어나 줘야 해요? 난 사람 아녜요?"
  "고마 하자."
남자의 말끝이 올라갔다.
그만하는 것이 좋을 거다, 그만하지 않고 계속 종알거리면.... 하는 위협의 뜻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지지 않고 빽 소리쳤다.
  "뭘 그만해요? 당신은 그냥 보고만 있어요. 왜 당신이 나서서 그래?"
  "자꾸 종알종알거릴래?"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지만 여자의 단도처럼 뾰죽한 목소리가 즉각 남자의 목소리를 덮었다.
  "소리지르지 말아요!"
여자 쪽도 말끝을 올리고 있었다.
소리만 질러 봐라, 나도 가만 있지 않겠다....는 위협이 들어가 있었다.

  "에이!"
남자는 벌떡 일어나 피시방을 나가 버렸다.
여러 사람 보는 앞에서 아내가 남편의 지시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있으니 그로서는 그 순간에 달리 대처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사람들 보는 앞에서 마누라를 패겠는가, 어쩌겠는가.
남자가 망신을 당하고 나가는 모습을 본 내 머릿속에 대뜸 떠오르는 생각은 '아하! 사람이 자기 수중에 돈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바로 이런 데서 드러나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여자한테 경제력이 없었어도 그렇게 남편의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할 수 있었을까?
조금 전의 그녀의 모습에서는 수틀리면 남자하고 갈라설 수도 있다는 자신감마저 엿보였다.
사자가 암만 겸손하게 굴더라도 사자는 역시 사자였던 것이다.

아무튼, 며칠 지난 지금 그들 부부의 사이는 평상을 되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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