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미국영화를 즐겨 보고, 한국영화를 거의 보지 않습니다. 한국영화의 수준이 미국영화보다 많이 낮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영화의 수준을 높이는 방법을 몇 가지 제안해 봅니다.
첫째는 시나리오를 쓸 때 미국영화 시나리오를 쓰듯이 썼으면 합니다. 미국영화 시나리오가 어떤 것인지를 알려면 [시나리오란 무엇인가] 사이드 필드 지음, 유지나 옮김, 민음사를 읽어 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재미있는 시나리오에서 재미있는 영화가 나온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예외가 있다면, [중경삼림]이나 [에이스 벤추라] 정도입니다. 들은 바에 따르면, [중경삼림]은 2주만에 후다닥 찍었다고 합니다. 워낙 바쁘게 찍고 해서 배우들도 줄거리가 뭔지 모르고, 무작정 감독이 시키는 대로 찍었는데, 나중에 보니 정말 재미있는 작품이 되었다고 하더군요. 저는 금성무가 나오는 앞 부분은 아무 재미도 못 느꼈고, 양조위가 나오는 뒷 부분은 아주아주 재미있게 봤습니다. 이 영화에 나오는 [캘리포니아 드리밍]이라는 노래가 좋아져서 한동안 계속 듣기도 했을 정도였죠. [에이스 벤추라]에서는 짐 캐리의 표정연기가 압권이었는데, 이 연기만으로도 영화의 재미를 대폭 향상시키는 데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줄거리나 시나리오 자체로는 그닥 재미있는 것이 못 되었다고 봅니다.
둘째는 촬영할 때 클로즈숏을 많이 쓰라는 것입니다. 숏(shot)이란 카메라가 보는 것을 말합니다. 얼굴 부위 혹은 그보다 작은 부위만 나오는 클로즈업숏이 있고, 가슴 윗 부분이 나오는 클로즈숏이 있고, 허리 윗 부분이 나오는 웨이스트숏이 있고, 무릎 윗 부분이 나오는 미디엄숏이 있고, 발가락까지 나오는 풀숏이 있고, 여러 사람이 모두 다 보이거나 배경이 다 보이는 롱숏이 있습니다. 그런데 배우의 연기를 가장 잘 보이게 하려면 클로즈숏이나 클로즈업숏을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드라마에서는 클로즈숏이나 클로즈업숏을 많이 쓰는 것 같습니다만, 이상하게도 영화에서는 애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면 배우의 연기가 죽어버립니다. 배우의 연기가 단지 사건을 보여줄 뿐이고, 등장인물의 어떤 면을 보여주지 못합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이 누군가를 폭행하는 장면이 있다고 칩시다. 클로즈숏으로 주인공의 얼굴을 보여주면, 지금 주인공이 느끼는 분노와 두려움과 폭력욕구를 적나라하게 보여줄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롱숏이나 풀숏으로 찍으면 액션만 보여주게 되고, 주인공의 표정은 분간이 잘 안 됩니다. 재미가 반감하게 됩니다. 영화 [공공의 적1]에서 강철중 형사의 연기보다는 조폭두목의 연기가 더 재미있었습니다. 섬뜩한 연기가 나왔는데, 저는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것입니다.
셋째는 영화제작 시스템을 만드는 것입니다. 제가 알기로, 미국영화는 철저한 계산 끝에 예산이 나오고, 촬영일자가 예정됩니다. 영화를 촬영하기 전에 사전작업을 잘 해 두는 것이죠. 그러고도 사정에 따라 촬영이 늦어지거나 합니다만..... 또 영화제작 스태프에게 봉급이나 일하는 규칙이 제대로 지켜집니다. 우리나라처럼 스태프의 월급이 늦게 나오거나 안 나오는 식으로는 제대로 된 인력을 양성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영화 현장에 가서 이런 영화제작 시스템을 배워 와야 합니다. 모든 영화가 그렇게 할 수는 없겠지만, 우선 한 사람만이라도 이렇게 해야 합니다. 지금 이대로는 한국영화는 질적으로 도약할 수가 없습니다.
넷째는 배우의 음성연기입니다. [은행나무침대]에는 한석규가 남자주인공으로 나오는데, 그 목소리는 참 듣기 부드럽고 좋습니다. 원래 성우 출신이라고 합니다. 요즘은 [뿌리 깊은 나무]에서 세종대왕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압니다만... 저는 한국드라마도 안 보거든요. 제가 어렸을 때는 [명화극장]이나 [토요명화]에서 나온 영화를 즐겨 보곤 했습니다. 목소리 좋은 성우들이 한국말로 대사를 말해 줍니다. 그런데 나중에 자라서는 성우의 목소리보다 영화배우의 목소리가 실제로 더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음성연기에 있어서 배우가 성우보다 더 표현력이 좋다고나 할까요.... 여러분도 [슈렉]이라는 애니메이션을 보셨을 텐데, 거기에 나오는 음성 연기가 어색한 점은 아마 거의 못 느끼셨을 겁니다. 제 짐작으로는 성우가 그 음성연기를 했더라면 어느 정도 어색함을 느꼈을 겁니다. 같은 대사라고 해도 누가 말하느냐, 어떤 목소리로 말하느냐, 어떤 감정으로 말하느냐, 어떤 크기로 말하느냐에 따라서 느낌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건 시나리오 작가가 재치있는 대사로 살려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라, 배우가 자신의 목소리로 살려내야 하는 부분입니다. 안성기라는 배우는 한 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남자배우였습니다만, 목소리가 워낙 안 좋아서 배역을 많이 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목소리만 좀 더 좋았다면 월드스타가 되었을지도 모르죠.
Comment '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