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를 내야 이긴다.
'화', 비겁하게 다스리고만 있습니까?
사무실에 앉아서 모두를 둘러본다. 화를 낸 모습을 목격한 적이 있거나 혹은 화의 직격탄을 주고받았던 상대가 있는가를 찾아본다. 전무하다.짜증나고 스트레스 받을 일은 사방에 널려있지만 화내는 사람을 한 명도 찾을 수가 없다.
모두들 조용하고 평화롭기만 하다. '오늘도 무사히' 라는 카드라도 붙이고 심신을 다해 기원이라도 하는걸까? 주말마다 산에 들어가 떨어지 폭포를 맞으며 수행을 거듭한 결f과 해탈이라도 한 걸까? 아니면 퇴근길에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아드레날린을 억제하는 약물치료라도 하는 걸까? 그러나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래와 같은 방법으로 평정을 유지 해 왔을 것이라 짐작한다.
'참지 뭐, 모두 내 탓이야' : 기계적인 자책
'잊자. 시간이 약이지.' : 나태한 처방
'말이 안 통해,저 인간은 꼴통이야.' : 습관적인 방어의 번복
'인간사 무심(無心)이나니' : 가슴에 품은 뜨거운
응어리 모른 체 하기
'언젠가 복수하리라' : 앙심 품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운명을 탓하기
요는, 솔직히 우리는 화를 다스리는 공력을 키웠던 게 아니라 비겁함의 목록을 늘려왔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참을 인(忍)자 세 개면 화병을 면할 수 없다.
화는 타인에 의해 자기 자신의 존엄성에 상처를 입었을 때 반응하는 정당한 감정이다. 존엄성이 훼손된 채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부정이기 때문에 인간은 어떤 식으로든 존엄성을 회복하려 한다. 그러므로 삶에 대한 자기보호 행위를 적절하게 하지 못했을 때 화가 쌓이게 되고 화병이 된다. 화는 되도록 발생하는 순간 정확히 화를 내게 만든 그 상대방에게 풀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고 엉뚱한 곳에 화풀이를 하게 되면 당신은 결코 만족할 수 없고 마음에 계속 가시를 품게 된다. 당신의 존엄을 '인정' 해야 하는 것은, 존엄을 훼손한 그 상대방이기 때문이다. 참을 인(忍)자 세 개면 살인을 면한다 하지만 그 화는 이내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와 가시가 되고 화병이 된다.
일단 쌓이기 시작한 화는 안전핀이 뽑힌 수류탄과도 같다.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적절하게 화를 내지 못하고 쌓아두다가 엉뚱한 곳에서,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폭발하는 것이 문제인 셈이다.
안 좋은 추억을 곱씹지 마라.
화를 내는 것은 큰 소리를 치거나 이성을 잃고 폭력적으로 상대방을 몰아붙여서 자기의 의견이나 주장을 상대방에게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해서는 결코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의 존엄에 대한 '인정'을 이끌어 낼 수 없다. 화를 내는 것은 자기를 소중하게 생각해서이다. 그리고 화응 나게 만든 그 사람을 용서하고 그 사람에 대한 가시를 마음속에 품지 않기 위해다. 단순히 분출하고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뒤끝을 남기지 않는' 건강한 정신 상태로 살아가기 위해 화를 내야 하는 것이다. 무엇과 관련된 '안 좋은 추억이 있다.' 는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개그가 있다. 우리는 그렇게안 좋은 걸 곱씹고 있다. 개그처럼 그 안 좋은 추억이 웃어넘길 수 있는 것이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곱씹는 것은 화가 마음속에 고이는 것, 가시를 남기는 것, 참는 화의 전형이다. 궁극적으로 화를 내는 것은 가시를 품지 않기 위해서이고, 곱씹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위해서이다.
화를 내는 것은 마음의 똥을 치워버리는 일이다.
화는 가장 강력하고 직접적인 표현의 도구이다. 화를 내는 것은 '당장 그만해,하지 마!'를 말하는 것이다. 나 이러저러해서 괴롭다. 나의 상처와 피해를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화가 아니다. 우리는 화를 느끼고 표현하고 전하고 받아들이고 즐기는 기술을 터득해야 한다. 다른 사람에게 상처주기 싫어서 화를 안 낸다고? 사실은 자신이 더 큰 피해를 받을까 봐 두려워서 화를 내지 못하는 것이다.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한다.'는 말로 화를 내지 못하는 지신을 위로해 봤자 소용없다. 어쨌든 그 똥에게 당신은 마음의 상처를 입었고, 그 똥을 치워버리지 않는 한 당신은 마음속에서 상상의 똥을 곱씹을 것이기 때문이다. 화를 내지 못한 것에 대한 핑계들은 모두 가면일 뿐이다.
화를 내는 건 스스로의 존엄을 보호하는 일이다.
교양의 가면을 벗고 지성이라는 넥타이를 풀고 뻑 하면 싸우라고 조장하는 것이 아니다. 단순한 대거리가 아니라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기술로 화를 대하기 시작하면, 화를 통한 커뮤니케이션이 참는 것의 커뮤니케이션보다 백 배 낫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자신의 권리를 위해 제대로 따지고 들고 옳다 싶으면 팥이 몇 알이네, 콩이 몇 쪽이네 하면서 화를 내라! 눈감으면 코 베가는 상황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싸워라! 화를 냈다면 그 것으로 족하니 자신에 대한 평가나 상대에 대한 미안함을 가슴에 담아두지 마라. 자신의 화를 대의명분을 통해 대체 만족하려 들지 말고 가장 사적인 것으로 화를 얘기하라. 자신에 대한 존엄을 보호 할 줄 아는 사람만이 대의명분에 있어서도 사심 없이 그 목표를 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미안하다면 다야? 나 완전히 화났어.
출근길 버스에서 새로 산 구두코가 묵사발이 되었다고 해보자. 운이 좋다면 상대가 '미안합니다.' 라고 사과를 한다. 그러면 당신은 '어,어' 하며 손수 자기 구두를 닦거나 어쩔 수 없이 '괜찮습니다.'라고 해야 한다. 그렇게 행동하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새구두를 신고 직장동료나 친구에게 뽐내고 싶어하던 당신의 즐거운 마음은 완전히 망쳐버렸다. 당신은 전혀 괜찮지 않다. 사실은 밟혀버린 구두 때문에 하루종일 속상한 상태로 지낼 게 뻔한 좀생이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그럼에도 당신은 괜찮다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며 속으로 끙끙 앓고 있다.
이럴 경우 당신은 상대에게 정중한 사과와 함께 구두를 더럽힌 것에 대한 보상을 요구해야 했다. 구두를 다시 새 것처럼 닦는데 드는 노력과 비용이 아무리 작아도 그런 보상을 통해 당신의 화난 감정이 상대에게 정당하게 평가될 수 있다. 그 몇 푼 안 되는 돈은 구두가 밟힌 것과 상대방에 대한 당신의 마음에 응어리를 남기지 않게 만들어 줄 것이다. 당신은 그 것을 요구할 자격이 있다. 당신은 소중하니까!
Comment '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