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무협소설과 한국판타지소설에 보면 ‘깨달음’이 중요한 요소인 경우가 있습니다. 무공고수가 되기 위해서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설정하거나 마법사의 써클이 생성되기 위해서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설정하거나 소드마스터가 되기 위해서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설정하지요. 재미있는 것은, 이 깨달음을 작가가 말로 표현하지 못하고, 두루뭉수리 설명하고 넘어가곤 한다는 겁니다. ^ ^ 이 부분을 보면서 독자는 한편으로 부족함을 느끼고, 다른 한편으로 자신만의 상상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작가의 부족한 설명을 독자의 뇌가 채운다고나 할까요? ^ ^ 사람은 수수께끼를 보면 그걸 풀려고 아둥바둥하게 됩니다. 아마 그런 특성이 발휘된 것이겠지요.
그런데요, 제가 생각하기로는, 깨달음은 ‘천재나 생각해 낼 수 있는 오묘한 것’도 아니고, ‘말로 표현하지 못할 것’도 아니고, ‘특별한 사람만 알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생각하는 깨달음은 뭐냐고요? 깨달음은 단지 남이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스스로 알게 된 것, 책에서 읽지 않았음에도 스스로 생각해 낸 것입니다. 외부의 정보가 없이 사람의 뇌가 스스로 생성해 낸 정보가 깨달음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원효대사가 의상대사와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가던 중이었습니다. 길을 잃고 헤매다가 무덤가에서 잠을 잤는데, 도중에 목이 말라서 잠이 깨었고, 옆에 바가지에 물이 담겨 있어서 마셨더니 감로수처럼 달더랍니다. 나중에 잠이 깨어 보니, 바가지인 줄 알았던 것은 해골이었고, 원효대사는 그 해골에 담긴 물을 마셨던 거였죠. 그 순간 원효대사는 ‘일체유심조’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말인데요, 일체유심조는 남이 가르쳐 준 것도 아니고, 책에서 읽은 것도 아닙니다. 경험에서 바로 생성해 낸 정보였지요. 불가(佛家)의 이치 중의 하나를 그렇게 스스로 알게 되었던 겁니다.
사람은 자신의 경험에서 어떤 특별한 이치를 생각해 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이미 아는 이치에 따라서 살기에도 바쁘고, 관심이 이치보다는 돈이나 즐거움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남에게서 배우지 않았으면서도 스스로 알게 되는 이치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것이 깨달음이죠.
깨달음을 얻으면, 그 순간 참으로 즐겁고 기쁩니다. 오랫동안 풀지 못했던 수수께끼가 풀렸을 때 느끼는 바로 그 기쁨입니다. ^ ^
저도 살아오면서 몇 가지 깨달음을 얻었는데요, 오늘 새벽에도 그런 깨달음이 두 가지나 생겼습니다. ^ ^ 그래서 이 글을 적는 것입니다. 너무 기뻐서 이 글을 썼지요. 무엇을 깨달았는지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너무너무 중요하고 후폭풍이 큰 것이라서 제가 함부로 누설해서는 안 되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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