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가 찰 뿐이다. 이 책에 대한 진솔한 감상평을 말하자면 배 속에서 드글드글 끓는 실망과 짜증에 욕짓거리를 한바가지 퍼붇고 싶은 소설이라는거다.
강무가 누구인가? 라혼 시리즈, 수인기, 바이바할 연대기를 쓴 사람이다. 작가라는 존칭은 쓰지 않겠다. 장르소설 중에서 내가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을 꼽으라면 그 중에 수인기를 반드시 넣을 정도로 좋아했었다. 호쾌한 강무식 주인공은 사람마다 호불호가 갈리는 문제지만 바이바할의 섬세한 세계관과 차별화되고 작가만의 특징이 보이는 정성스러운 설정들과 함께 나는 그 모든걸 좋아했었다.
그런데 이게 대체 뭔가? 책장을 펼친지 5분도 안되서 나는 내 눈을 의심해야했다. 이 유치하고 허술한 날림 활자모음은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였다. 어처구니가 없어 집구석 한켠에 박혀있는 박스를 뒤적거려 꺼낸 수인기를 다시 읽어봤다. 그래 강무라는 사람의 필력은 단지 내 추억 속에 미화된 허구의 것이 아닌데 지금 내가 읽고 있는건 뭔가?
어떤 사람들은 나한테 그렇게 추상적인 말로 화풀이하지 말고 근거를 조목조목대라고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내게 이딴걸 옹호하는 사람들조차 납득시킬만큼의 말주변은 없다. 그래도 굳이 설명을 하자면, 우리들은 왜 초등학생들을 유치하다고 생각하는가?
그건 초딩들이기 때문이다. 초딩들은 유치하다. 말도 안되는 소리를 빽빽 우기기도 하고, 내가 잘났네 아니 니가 잘났네 목소리를 키워가며 싸우다가 결국 분이 넘쳐 울기도 한다. 좋아하는 이성에게 그걸 표현할 요령이 없어 어쩔 줄 몰라하다 심술을 부린다. 내가 이 책을 보면서 느낀건 그런것보다 순수하지도 않고 이해도 안가는 유치함 뿐이었다.
나는 솔직히 구구절절하게 이 글에 어떤 점이 잘못됬는지, 그리고 어떤 점을 고쳐야하는지 설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이 책 38쪽에는 현재 위치한 왕국은 신분제 계급사회가 아주 공고하다고 나와있다. 21쪽에는 주인공이 딱봐도 귀족이나 기사로 보일 차림새라고 나와있다. 얼굴도 아주 잘생기고 귀티가 난다. 그런데 용병대장은 칼집으로 쿡쿡 찔러서 주인공을 깨우다 봉변을 당한다. 그래 이 용병대장이 아주 멍청하거나 아주 담대하고 ‘마을 한복판에서 이런 짓을 하면 사달이 나지만’ 으슥한 숲 속이니까 상관 없어서 그랬다치자. 바로 56쪽에는 왕국 수도에서 그런 주인공을 향해서 병사 나부랭이가 깔보는투로 말이 짧다고 언짢아하고 기사양반 볼일 보슈하고 통과시킨다.
이게 뭐냐하면 그냥 날로 먹겠다는거다. 나는 그냥 아무런 생각없이 글을 쓰겠다는거고 이건 곧 강무를 좋아했던 사람이 뺨을 맞은 듯 얼떨떨하고 어처구니 없게 만드는 배신행위다. 글을 쓰면서 밥을 먹고 산다는 사람이 아주 가관이다. 요즘 이런 수준의 글은 넘쳐흐르지만 그래도 강무가 이러면 안되는 것 아니었나?
이런 글이 최신작은 없어서 못빌려가고 그나마 최근 나오는 것들 중 가장 재미있다니 아 이렇게 날로 먹어도 상관없는거구나 싶다. 장르소설이 아주 멸망의 길을 걷는가 싶다. 하긴 예전에도 완성도나 농밀한 재미와는 상관도 없이 별 웃기지도 않는 쉽게 읽고 쉽게 잊어버리는 것들이 각광을 받았었으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올 뭐시기나 매 뭐시기 달 뭐시기 같은 것들. 그래도 장르소설의 주류가 작품성을 버린 킬링타임으로 옮겨갔구나 싶어서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강무라는 사람이 이렇게 변한건 단순히 말로 뭐라고 할 수 없는 울분을 느낀다. 내가 강무라는 사람한테 뭐 하나 해준거라고는 꼴랑 수인기 전질을 구매한 것 밖에 없는데 괜시리 화가 나고 울분을 토하고 싶고 배신을 당한 것 같다.
오늘은 수인기나 뒤적거리면서 주말을 보내려고한다. 씁쓸하다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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