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천마행
작가 : 백보
출판사 : 파피루스
천마행(天魔行). 이 소설은 다른 소설들처럼 가장 흔한 마교교주부터 몇 대 천마, 천마의 전인, 천마의 후계자, 천마의 혈통.... 이런 천마라는 ‘직위’ 를 가지고 있는 캐릭터가 아닌 천마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은 소설입니다.
그렇기 때문인지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정말 강력하며, 그 위력은 여태껏 제가 봐왔던 모든 무협지 주인공의 위력을 초월할 정도입니다. 기물파손, 지형파괴보다는 인명살상 쪽으로 강한 무협지 먼치킨 중에서는 정말 희귀한 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가진바 능력으로는 다른 소설에서도 손가락을 추켜세웠던 천마의 이름을 ‘어느정도’ 충족시켜줬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런 소설이 10권 완결이라는 게 믿을 수가 없습니다.
1. 완전기억능력의 주인공
이 소설의 주인공 ‘진천우’ 는 완전기억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대단한 핏줄이라거나 무골이라는 것도 아니라서 마교의 잡졸로 살아가고 있었고 주인공의 꿈은 한 번이라도 제대로 된 상승무공을 접하는 것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위엄 있는 다른 마교들과 달리 폭삭 망해가는 마교는 인재들을 모아 최후의 역전극을 벌이고자하고 그 인재로 주인공이 뽑혀가게됩니다. 그리고 살벌한 묘사의 시련을 통과한 주인공은 마침내 상승 무공을 넘어 초절정 무공들이 즐비한 마교의 비고에 들어가게되고, 1주일도 안되는 시간 안에 ‘난 머리가 좋아서 다 외웠단다, 열등아들아.’ 하는 식으로 나간 다른 선택받은 인재들관 달리 비고에 죽치고 무공만 외워됩니다. 4천권 넘는 초절정 무공들을 외우는 것에서부터 이 주인공의 비범함은 그 진가를 발휘하게 됩니다.
2. 강해져가는 주인공
다른 인재들도 특유의 자질과 상승 무공, 영약으로 강해졌지만 주인공은 장로급의 인물에게 받은 초대 마교교주의 신물 ‘천마패’ 의 힘과 특유의 머리로 각종 무공들을 결합&마개조함으로써 얻게 된 ‘천마신공’ 이라는 거창한 무공의 힘으로 ‘평범한 무공 자질’ 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날려보냅니다. 여기부터 생기는 의문은 바로, ‘이렇게 개념없이 강해질거면 왜 무공 자질이 허접한거냐?’ 입니다. 주인공은 전력을 다함을 가정하면 장로급 인물도 움찔할 정도로 괴물이 되는데 무공 자질은 허접하다고합니다. 아무리봐도 이건 주인공에게 어려웠던 과거를 만들어주기 위한 장치라고밖에 생각이 안 됩니다. 개연성이 완전히 날아갑니다.
3. 과거로 날아간 주인공
마교의 작전은 바로 ‘월광초월대법’ 이라는 대법으로 인재들을 30년 전의 과거로 전이, 그 후 적세력의 수뇌가 될 자들을 싸그리 몰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소설의 콩가루 마교는 첩자들의 수작으로 대법이 일부 실패, 그 10배인 300년 전으로 날아갑니다. 그 후 주인공들은 자신들이 있는 300년 전에 마교가 탄생한 것(뭔 역사가....)과 ‘월광초월대법’ 이 주인공에게 천마패를 준 장로의 가문인 ‘서씨’ 에서 탄생했다는 것을 알게됩니다. 그렇게 주인공 일행은 신강으로 가서 아마도 거기 있을지도 모르는 서씨 가문을 찾아 떠납니다. ....앞서 말한 단점도 있었지만 여기까지는 어느정도 읽을만 했습니다.
4. 천마행에서는 알이 닭에게서 나오지 않고 갑툭튀합니다.
거기서 주인공 일행은 아직 마교가 없는 현실과, 마교가 없는 신강을 지배하는 세력을 알게됩니다. 마교를 세운 천마가 붉은 머리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혹시 천마일지도 모를 인물에게 ‘쳐’들어가고.... 상대가 너무 ‘찌질’하고, ‘마음에 안 든다’라는 일방적인 이유로 패죽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이 소설에서 가장 어이가 없을 장치 하나가 발동합니다.
그것은 바로, ‘천마신공’ 이 자신이 죽인 강자의 내공을 흡수한다는 숨겨진 효과(?!)였습니다! ──랄까 지금 레벨 업하는거냐?!
화룡점정으로 주인공의 머리가 빨개집니다. 이후에 등장하는 것은 주인공이 천마라는 놀라운 사실(...). 지금 장난치는거냐. 주인공이 과거로 가서 천마패를 만들었다 ─ 가 아니라 후권에는 정말 만들어서 물려줍니다─ 고 치자. 아니 그러면 과거 이동 전의 주인공이 받은 천마패는 뭐라 설명할건데? 게다가 이 소설은 후에 신선을 초월한 주인공이 직접 ‘타임패러독스’ 와 같은 개념을 언급합니다. ─너 자체가 버근데 무슨 소리니? 게다가 주인공이 천마면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천마신공의 효용인데.... 후에도 이 녀석은 ‘자신도 모르는 채’ 로 다른 강자들의 힘을 흡수합니다. 허허허허.... 이런 멋진 녀석을 봤나. 넌 책 쓰는데 주인공 이름도 모르고 주인공이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지도 모르는거냐? 어떻게 네가 만든 무공 효과도 모르는거냐? 설마 무공이란 건 운빨로 만들 수 있는거냐? 허허허허....
5. 강적들은 강적인데 주인공에게는 예외
주인공은 신강을 지배하던 빨간 머리가 속했었던 집단의 강자들. ‘왕(王)’ 칭호를 가진 여러 명의 초고수들의 주목을 받고, 직접 공격도 당합니다. 하지만 한 명을 보내면 목숨 하나가 날아가고, 두 명을 보내도 목숨 두 개가 날아갑니다. 게다가 후에 등장하는 ‘신(神)’ 칭호를 가진 초강자들도 주인공과 맞딱뜨리면 그대로 목숨이 날아갑니다. 주인공이 고생하는 듯한 묘사는 거의 없고 ‘이정도의 피해를 받았다’ 식의 묘사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 소설 도중에 그 유명한 ‘달마’ 가 등장하는데 이 달마도 주인공을 압도했다가 주인공이 숨겨진 힘을 격발함과 동시에 주화입마에 도달하자 그대로 밀립니다(...). 주인공에게 덤빈 초강자들이 모두 쳐죽은 것을 생각하면 달마가 아닌 달마급의 중을 만들어서 보냈다면 얘도 죽었을겁니다. 한 마디로 달마는 강해서 살아남은게 아니라 ‘다른 무협지에서도 인지도가 최강인 달마’ 여서 살아남았다는 이야기.... 지금 진천우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쓰고 싶은겁니까, 아니면 천마가 주인공인 이야기를 쓰고 싶은겁니까?
6. 마교=모래성
이 주인공의 위대함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톡 까놓고 말해서, 이 주인공 곁 100km 내에는 접근하지 않는게 좋습니다. 주인공과 시간이동한 일행들은 교주 역할을 맡을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죽습니다. 그것도 괜히 주인공이 시비 걸었다가 무책임하게 본진 버려두고갔다가 본진 털리는 식으로도 죽고 자기 무공의 백 분의 일도 가르치지 못하면서 ‘쟨 강하니 괜찮아.’ 타령하다가 또 죽습니다. 정말 대단합니다. 어차피 얘 실력이라면 자기 일행 모두 데려갔다 관전시켜놔도 능히 멀쩡하게 지키면서 적들 다 쓸어버릴 수 있는데 그렇게하지 않고 다 죽게 놔둡니다. 게다가 다 죽으니까 하는 짓이 ‘복수’.... 게다가 주인공이 만든 이 마교는 정말로 모래성입니다. 주인공이 시간이동을 통해 탄생한 존재라는 것을 알아챈 최종보스(라 쓰고 엑스트라 Z라 읽는)는 손가락으로 지워버릴 수 있는 마교를 끝끝내 놔두다가 참다 못해 없애버립니다. 간단히 묘사하면
부하 1 : 천마가 한 짓을 잊을 수 없습니다! 마교를 날려버리는 것을 허락해주십시오!
보스 : 안돼.(마교가 없어지면 천마 놈이 사라져. 그럼 복수할 수 없다고)
─그렇게 시간이 흘러
부하 2 : 마교를 없애고 싶습니다!
보스 : 안된다고.(사실을 말해봤자 니가 나처럼 300년을 살 수 있겠냐.)
─또 다시 시간이 흘러
부하 3 : 마교를─
보스 : 아놔! 걍 없애!(그냥 내가 월광초월대법으로 찾아가련다!)
─그리고
부하 4 : 마교를 없애고, 월광초월대법을 가져왔습니다!
보스 : 참 잘했어요. 이제 천마나 내가 사라질 시간의 변수를 없애야겠지? 다 죽으렴.
....이런 멋진 녀석을 봤나. 자기 친구 다 사지로 모는 천마 따위보단 최종보스가 더 마교교주 같아 보이지 않습니까? 이 녀석 덕분에 백 년도 못 갈 마교가 삼백 년이나 버텼습니다. 오오, 최종보스님, 오오.
7. 칼질 밖에 못하는 천마
결국 이 소설의 천마가 보여준 것은 하나부터 열까지 사람 죽이는 것 밖에 없습니다. 얘는 3년 동안 잠도 안 자고, 밥도 물도 안 마시고 싸우는 짓은 할 줄 알아도 누굴 살리거나 회복시키는 것은 하나도 할 줄 모릅니다. 그렇다고 문파를 잘 만드는 것도 아니라서 그 문파도 300년의 역사가 끝.... 게다가 누군가가 시비를 걸면 조금이라도 굽혀주거나 대화를 하는 것도 하지 않습니다. 끝까지 ‘건들면 죽는다’, ‘그 이상하면 죽는다’, .... 그 놈의 죽는다, 죽는다, 죽는다.... 이 놈 성격파탄자입니까? 무협지에서는 초월자는 고독하다는 말이 되게 자주 나오는데.... 이 녀석은 고독하다 못해 정신이 나가버린 모양입니다. 말 없고, 무관심하고, 중요할 때에 ‘죽인다’ 라고 지껄이는건 쿨한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시크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사교성 없는 살인광일 뿐입니다.
8. 결국 그는....
그렇게 천마의 혈겁은 그렇게 말로만 바래왔던 ‘가족 곁으로 가고 싶다’ 를 이루고나서야 줄어듭니다. 네, ‘줄어듭니다’. 일단 있는 무공이니 가족들을 보살피기 위해서 돈 좀 벌어야겠다, 마교의 잔당의 부탁 좀 들어주고 돈을 뜯어옵니다. 그 후 가족과 함께 살다가 ‘왜 안 늙느냐.’ 라는 말에 가짜 주름도 만들고, 머리에 화이트칠하고, 눈동자도 투명도 떨어뜨리면서 간간히 살아가다가 가족을 몰살시키려는 놈들을 쓸어버리고.... 그 후에 엔딩이──
어느 시간대에서 점 찍어놓은 여자에게 달려가고 끝.
.....
.....
....살인마 주제에 잘도 평범하게 사시겠어?
솔직히 말해서 전 이 소설의 결말에 주인공이 신적 존재가 될거라고 생각했습니다. D.I.O. 세계관을 빌려 설명하자면, 신적 존재가 된 주인공이 세계에 각인됨으로써 ‘어떻게든 천마가 된다’ 라는 결과를 만들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시간대의 천마’ 가 우연히 천마패를 얻고, 그것을 통해 신이 되어, 그런 과정과 결과를 세계에 각인시킨다는 그런 식의 결말이 나올거라고 생각했습니다.(이 경우엔 천마패를 우연히 동굴에서 발견한다는 전개가 되야했겠지만.... 그렇게 되면 자신도 몰랐다던 천마신공에 대한 떡밥이 어느정도는 풀릴텐데.... 허허허허)
....그런데 이건 뭐죠.
천마를 할거면 처음부터 끝까지 천마로 살아가지, 왜 결말이 농사 짓던 여자 캐릭터에게 다가가는 것으로 끝인거죠. ‘가족에게 돌아간다’ 는 소박한 꿈을 위해 적을 쳐죽이는 아주 근사한 녀석이 결국엔 소박한 행복이라니. 이 녀석은 주인공 이전에 인간으로서 말도 안된단 말이지요. 결국 자기가 자초한 싸움인데 이렇게 행복하게 살아간다니, 주인공이 죽인 놈들은 대부분 가족에 대한 설명도 나오지 않는 오래 산 초월자들이 대부분이지만 그 중 세 명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천시멸존이라는 왕(王)들의 대장. 그리고 그의 아들, 그리고 그의 동생인 최종보스.
‘복수해주지 않으면 당신 보지 않을거야!’ 라고 말한 아내도 문제였지만, 한 번 격렬해진 감정 때문에 남편도 잃고 그나마 남은 아들까지 영영 곁을 떠난 이 어머니는 어떻게하죠?
고작 엑스트라에게 감정 이입하지 말라는 말이 나올수도 있지만, 이건 너무하지 않습니까? 네 피는 정말 빨간거냐? 너 찌르면 정말 피가 나오긴 하냐?
이 소설을 읽은 후의 감상을 말하자면, 이 소설에서 나오는 천마는 절.대.로. 천마(天魔)가 아닙니다. 이 놈은 천마(千魔)입니다. 이 녀석이 다른 소설에서 나오는 천마라는 것 자체가 천마에 대한 모욕입니다. 차라리 무능해서라거나 성격에 결함이 있는 바보 천마는 이해를 해도 이런 정신병 천마는 인정 못합니다. 인간성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동료를 지켜줄 행동조차 하지 않고, 결국 가족을 찾겠다고 말로만 떠든 명분으로 여기저기 깽판 치는 이런 놈은....
이건 천마행이 아니라 살마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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