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배준영
작품명 : 더 세컨드
출판사 : 동아&발해
3권까지 읽자마자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뭐랄까요. 지금 왠지 가슴이 막막합니다. 질끈 눈을 감으면 눈물 한 방울 쯤 뚝 떨어질 것 같네요.
처음 농부라는 소설을 썼던 작가의 작품이라기에 내용도 확인하지 않고 덜컥 주워왔습니다. 그리고 1권을 펼친 뒤 프롤로그를 보고 난 후 곧장 책을 내던졌지요. 아니, 정말로 내던졌습니다. 프롤로그에 나온 것은 왠 자살하려던 고교생이 드래곤을 만나 전설의 검을 얻고 드래곤의 마력을 전수받는 장면이었거든요. 그런 주제에 참 뭐 같이 잘난 체 하는 모습이 재수없더군요.
가장 싫어하는 패턴이랄까요. 아무 노력도 없이 낼름 힘을 주워먹고 깽판치는 이야기.
그나마 돈이 아까워서, 그리고 전작에서 보여주었던 작가의 역량을 믿고 다시 한 번 책을 집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조금 전 책을 던질 때로 시간 이동을 할 수 있다면 10단콤보를 휘두르며 자기 자신을 패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예, 착각했던 겁니다. 저 찌질이 고교생은 주인공이 아니었던 겁니다.[줄여서 이고깽(이세계 고등학생 깽판남)이라 부르겠습니다.]
주인공은 로아도르 반 바이파. 공작 가문의 후계자이나 마나 부적응자로 마나를 얻을 수 없는 몸을 가진 채 태어난 사내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리 수련해도 그는 마나를 가질 수 없습니다. 마나를 익힌 자들과 달리 두 발로 땅을 박차며 달리면 금방 지치고, 검을 휘둘러도 마나를 익힌 자들의 검보다 나약합니다.
그러나 그는 노력합니다. 우둔한 황소처럼. 공작 가문의 후계자라는 타이틀에 어울리지 않게 오만하지도, 욕심 많지도 않은 순수한 사내는 누가 보아도 가슴이 찡할 정도로 노력하는 사내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의 결말은 이고깽의 칼질 한 번 조차 되지 않는 것에 불과했습니다. 소드마스터임을 드러내는 이고깽의 칼질 한 번에 초라하게 동강나버리는 로아도르의 검.
로아도르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흘리며 웁니다. 서러워서, 운명의 선택으로 용사가 되어, 공주의 사랑을 받으며 온 세상의 관심을 받는 이고깽을 바라보며....운명의 선택을 받지 못한 사내는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그는 조우합니다. 자신을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과.
마나 부적응자도 강해질 수 있다는 이유로 로아도르는 그를 스승으로 모시며 길을 떠납니다.
그리고 수련 합니다.
스승의 가르침에는 기적도, 기연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의 검을 만들어가는 주인공과 그를 우직하게 가르치는 스승만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소설의 진행은 주인공의 성장에 맞추어집니다. 소설의 진행에서는 하늘과 땅이 뒤바뀌는 음모도, 감탄이 나올만큼 절묘한 반전도 없습니다. 뼈가 부러지고, 근육이 찢어지는 수련을 반복하며 오로지 하나의 검만을 만들어나가는 주인공이 존재할 뿐입니다.
어느 사이에 가족도, 그를 초라하게 만들었던 이고깽에 대한 질투도 그리고 귀족으로서의 명예도, 한 때 그 작은 가슴을 들끓게 만들었던 어리고 여린 사랑조차도 모두 잊어버린 채 하나의 검을 만들어 나가는 수련자.
오로지 하나만을 위해 존재하는 몸뚱이. 그렇기에 그는 순수합니다. 그 순수함이 너무나 아름다워 글을 읽어나가는 내내 이 글을 쓰고 있는 저의 가슴을 막막하게 했습니다.
소설 자체가 무언가 반전이나 악한 악당들을 쳐죽이며 통쾌함을 얻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닙니다. 그런 재미를 얻기 위해 책을 든다면 실망할 소설이라고 봅니다.
이 소설은 오로지 로아도르라는 남자가 커가는, 성장하는, 완성되어 가는 이야기를 적어내는 그런 소설이니까요.
그의 성장에 안타까워하고, 동감하고,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쥐며 응원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책은 무척 재미있는 소설이 될 거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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