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근요전기 4권, 긴장감을 느끼다.
백야작가는 1부에서, 색마 두근요가 양물을 잘리고 나서 새로운 인생과 인연을 쌓아나가는
것을 보여주었다. 결국 끝에 가선 무기를 다시 찾아 색마로 귀일하지만 두근요는 이미 예전
의 그가 아니게 되었다.
3권의 종결과 함께 손효란과의 은원을 공평히(?) 정리한 작가는 그와 함께 수면 위로 떠오
른 적들을 타겟으로 2부를 속도감 있게 끌어나가려 하고 있다.
그렇게 시작된 4권의 감상 포인트는 뭐니해도 백야작가가 단단히 매어 놓은 긴장감이다.
4권 서문을 보자. 혈세신마의 죽음과 관련한 옛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순히 배경이해를 위해 짜 넣는 숱한 프롤로그들은 많은 우를 범하기 마련이다.
앞과 뒤의 상황을 다 자르고 밑도 끝도 없는 상황하나를 툭 던져놓고 그에 독자가 호기심을
갖길 바라는 순진함이라던가, 혹은 반대로 액자형으로 소설 사이에 집어넣은 뒤 이미 알만
한 내용을 지루하게 읊어대기도 한다.
하지만 놀랍게도 백야작가는 서문에서조차 독자를 갈팡질팡하게 만든다. 읽으며 지그시 손
톱을 깨물게 만든다. 혈세신마의 말과 행동과 심리에 대한 적절한 묘사에서부터 현실감을
체감하게 만든 그는 독자에게 은근슬쩍 책임을 밀어둔다.
<어디를 찔러 죽이느냐!>
작가는 서문에 답을 제시하지 않음으로써 독자에게 선택을 강요한다. 잘못된 선택으로 인한
결과는 섬짓하다. 독자는 제 1장의 첫 페이지를 넘기기 전까지 선택을 해야 하고, 이에 왼
손 검지가 닿은 순간부턴 손무양의 잘못된 선택을 비난하거나 혹은 그에 동감하며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불행하게도 나는 그 부비트랩에 걸렸지만 여러분은 부디 잘 선택하기 바란다.
4권의 중심축을 흐르는 떼어놓을 수 없는 긴장감은, 두근요의 정체를 확연히 단정치 못하
게 하는 잘못된 정보에 있다. 3권 클라이맥스 부근에서의 무기 재생이 두근요의 정체를 알
듯 모를 듯한 위치에 옮겨 놓았다. 이에 따라 독자는 일희일비하며 두근요가 선 양쪽을 넘
나드는 것을 손에 땀을 쥐고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그러던 작가는 이제 손효란에게까지 마수를 뻗친다. 손효란은 첩보요원이 되어 연극에 나
서고 암언을 주고받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 들키느냐 들키지 않느냐의 싸움은 초운학에게
까지 이어져 독자의 유리가슴을 끝내 깨버리고 말았다. 사실 여기서 조성된 긴장감은 초운
학의 발언 하나에서 촉발된다. 철검방 서열 2위인 그가 하는 말을 들어보자.
‘내가 굳이 전음을 보내지 않고 글자로 네게 경고를 보낸 까닭은 내 전음이 발각날 수도 있
다는 경계심 때문이었다. 그러니 너도 허투루 전음을 보낼 생각은 하지 말거라.’
오랜 무협독자로서 형성된 전음에 대한 안심에 뒤통수를 날리는 파렴치함! 여기서 만들어
진 섬짓한 압박감은 독자가 숨소리마저 죽이게 만들었다.
게다가 뺨 때리고 떡준다더니 마치 독자를 어르고 달래려는 듯, 가현이 끌고 오는 철검방
방주들로부터 안도감까지 쥐어준다. 사실 이런 형태는 또 다른 곳에서도 존재하는데, 이전까
지는 구앙생의 일이라던가 급작스런 성세에 대한 의심을 말하며 철검방을 적의 형태로 묘사
하여 거리감을 만들더니 4권 말미에 가서는 어느새 독자인 내가 철검방의 손을 드는 것도
모자라 열렬히 흔들게 만들었으니 가히 장난이 지나치다 하겠다. ㅎ
어쨌든 백야작가는 4권 마지막 페이지까지 그러하고 있으니 독자 여러분은 조심하길 바란
다. 안심하다간 뒤통수 맞는다.
두근요전기의 매력은 인간 심리와도 연결되어 있다. 착한 사람이 착한 일을 하면
그건 당연한 거다. 하지만 착한 사람이 나쁜 일을 하면, 이제껏 그가 무슨 일을 했던 간에
엄청난 공분을 사게 되어있다.
“좋은 사람인 줄 알았는데 어찌 저럴수가! 본성이 음흉한 사람이었어”
간단히 말해, 말 그대로 경악하고 폄하한다.
바로 이것에 동전의 양면이 있으니, 바로 나쁜 사람이 착한 일을 하면 이제까지의 모든 나
쁜 행동에까지도 꽃향기가 진동한다는 것이다.
“나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의외로 속마음은 따뜻하구나.”
두근요전기는 주인공인 두근요가 색마이기에 더 빛을 발하는 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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