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황포추권의 특징
삼황포추권은 신화시대부터 전승되온 권법으로 인기가 높은 권법이다.
아주 오래 된 권법이라고 이야기되고 있으나 확증은 청 대부터 밖에 없기 때문에 연구가들 사이에서 신뢰성은 낮다.하지만 인기의 이유는 전통 때문만이 아니라 기법이 단순해서 간단히 습득할 수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삼황포추권은, 다른 권법에 비해 복잡한 기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투로는 모두 직선으로 변화가 거의 없이 움직이도록 구성되어져 있고, 기술의 수도 적다.
그다지 노력도 필요치 않고, 단기간에 기법을 익힐 수 있는 것이 이점이라고 한다.또한, 삼황포추권은 용맹 과감하게 싸우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다. 공격 궤도는 단순하지만, 찬스가 보이면 단 숨에 연타를 퍼부어 승부를 내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삼황포추권의 연타에 의한 공격은, 궤도의 단순함과는 달리 상당히 피하기가 어려운 것이 많다. 왜냐하면,기본기를 익히기가 쉽기 때문에 권사들이 모두 연타 콤비네이션의 습득·연마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해, 확고한 공부를 몸에 익히기 때문이다.[기본기가 단순하기 때문에 확고한 공부가 실린 연타를 펼치는 공방을 이룬다]는 것이 삼황포추권이다.
역사와 배경
삼황포추권의 기원에 대해서는 일반에서는 신화에 등장하는 삼황(복의,신농,황제의 3인)시대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설이 정착돼 있다.
황제(黃帝)가 수많은 금수(禽獸)와 치우(蚩尤)라는 군신(軍神)을 쓰러뜨릴 때 섰다는 무술이 사람들에게 전해져 정리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설에 대해서는, 아무런 역사상의 증거가 없기 때문에 연구가들 사이에서는 어디까지나 전설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간주된다. 삼황포추권의 이름이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때는 의외로 늦어서 명 대 말부터 청 대 초기 무렵(1600년대 전반)이 되기 때문이다.당시,하북성 기현(冀縣)에서 이름을 떨치던 교삼수(喬三秀)라는 삼황포추권을 하던 자가 그 기술을 책으로 기술한 것이 최초의 기록이 되고 있다. 그 이전에 대해서는 전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그 때문에 삼황포추권의 역사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불확실한 것으로 다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발전을 이루게 된 것은,1845년, 북경에 삼황포추권을 전하기 위한 무도장[북경회우표국(北京會友 局)]을 만들면서이다. 북경회우표국은,전승자의 하나였던 송언초(宋彦超)가 설립한 것으로서,삼황포추권이 북경에 뿌리내리는데 큰 공헌을 했다. 북경에서 인기가 정착한 덕에 삼황포추권은 1912년 중화민국 건국이래 국기의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1916년에는,산서성 태원(太源)에 있는 산서국술관이라는 국기로 인정받은 권법을 가르치는 학교(중국 각지에 있다)에 전승자의 하나인 자우감(子于鑒)이 초대되 거기에서 지도를 했던 점도 크게 공헌했다. 자우감은 국기로 갓 인정된 삼황포추권을 열심히 보급해 산서성에서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삼황포추권은 근대에 이르기까지 외국에 전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명도는 낮지만, 수련이 용이하기 때문에 중국에서는 일반에도 널리 보급되었다. 특히 하북성과 산동성 일대에서 인기가 높아서 시민들은 일종의 건강권(健康拳)으로 받아들여 널리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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