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이어질 글은 모두 저만의 독단적인 생각이므로 감히(발칙하긴 하지만)
반대입장을 받지 않겠습니다. 어디까지나 광협님께 도움이 될
까하여 올리는 것일 뿐이니 나쁘게 생각 말아 주셨으면 합니다.
1. 한성수란 이름의 어긋난 톱니바퀴(악연적으로 느껴버리게 되다.)
한성수. 이 이름을 외우게 되기까지는 나름대로 고민이 있었다.
왜냐하면 발칙하게도 난 그가 절대 글을 잘 쓰지 않고 그저 몇
년 전부터 주류가 되어온 인터넷 소설에 편향된 3류라고 생각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제까지 그에 대해서 보게된 작
품활동을 보면 절대 그게 아니라는걸 알게 되긴 하지만 말이다.
처음 그의 작품을 보게 된것은 서울창작에서 출판했었던 마왕
협녀기를 중3때 책방에서 볼 때였다. 당시 나는 한참 인기를 끌
고 있던 퓨전판타지의 반쪽인 무협에 대해 나름대로 흥미를 느
끼고, 궁금함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신무협 위주일 망정 무협
에 대해 손을 대고 있었다(참고로, 지금은 몇몇 작품을 인터넷에
서 보는것외에는 책으로 보는건 황제의 검이 전무합니다. 편향
적으로 작품을 보는것도 있지만 지금 제가 고3이기 때문이죠.)
엽기무협이라는 표제에 흥미를 가진게 감히 죄라고 할 수 있을
까? 나는 마왕협녀기의 표지만을 읽고 무식하게도(지금 제입장
에서는 그거 말고 달리 할말이 없습니다.) 2권인지 3권인지정도
를 빌리고야 말았다. 그래서 결과가 좋았다면 이글도 이렇게 나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여기서 잠시 변명의 변자를 하자면...)
내가 이제까지 빌려다 놓고서 빌린 분량조차 끝까지 못 읽은 경
우는 상당히 드문 편이다. 가장 기억에 남는게 책방에 남아있던
예문당의 반지전쟁(반지의 제왕)을 3권까지 빌려놓았었는데. 그
만 1권도 못채우고(1권의 50쪽밖에 못 읽었다. 요새 나온것도
50쪽을 전후로 못 읽고 때려치고 말았다.)을 못 읽고 돈만 고스란
히 날린것. 그리고 몇개월전 마창을 읽다가 마창이 너무 진행이
빨라 초반부터 활약했던 조연급 캐릭을 가차없이 죽인것에 충격
받아 때려친것. 그리고 그 사이에 끼인 기억이 마왕 협녀기이다.
물론 2권까지는 읽었다. 하지만 마왕협녀기는 차라리 읽다가 때
려친것만도 못한 느낌을 가져다 주었다. 무어랄까?
어긋난 톱니바퀴. 내가 알고 있는 개념중에서 한성수라는 작가의
작품을 단적으로 묘사할 수 있는 단어를 찾으라면 단지 그것말고
는 떠오를게 없다. 왜인지는 나도 그의 이름을 떠올릴때마다 고민
했지만 단지 그것말고는 할말이 없었다.
그는 지금 작가로서 무언가 고민을 하고 있음에는 틀림없다고 느
껴진다. 지금까지 그의 작품 활동을 보면 솔직히 나로서는 그가
아직도 작가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놀랄 지경이다. 그의
작품은 어떠한 가능성자체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어디까지나 저
의 독단적인 생각입니다.) 심하게 뒤틀리고 어긋났음에도 나름대
로 사람들의 칭찬을 먹고 살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게 작가
로서 얼마나 고민을 하고 있었는지, 그가 고민하고 있는것들에 대
한 성실성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저기, 그러니까 이건 저
의 독단적인 생각이라니까 그러네요.)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그의 작품은 그 존재자체만으로도 무언가
기묘하게 어긋나 버려있다. 파문제자도 안 읽고 단지 그의 작품
중 읽었던 두개의 작인 마왕협녀기와 무당괴협전(그것도 하나는
2권까지, 다른 하나는 1권의 반도 제대로 못넘기고 때려친것들
입니다.)만을 가지고 평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제까지 올라왔던 파
문제자의 평중 몇개만을 읽고도 그의 파문제자가 지나간 행로를
나름대로 유추해 볼 수 있다 생각하기에 쓰는 것이다. 절대 나 자
신에 대한 자만 이라던가 싫어서가 아니다.(고무림에 활동하는 작
가라면 나와 코드가 안 맞는다 하더라도 그 필력을 인정할 수 밖
에 없다는 것이 제 지론입니다.)
이 글을 쓰기전에 생각을 정리한 것으로는 아마도 이런게 아닐까
싶다. 한성수라는 인간은 아마도 어렸을 때부터 무언가 소설류의
글을 많이 썼을 것이다.(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이 글자체가 저의
독단적인 생각입니다. 현실과는 거리가 수억광년이나 떨어져 있
더라도 그저 꾸욱 참고 읽어 보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그
렇게 써나가면서 그는 작가의 주관의지를 작품에 개입시키는 것
을 매우 중요하게 느끼거나 혹은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거기
에서 그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면 너무 심한 억측이 되는 것
일까?
작품이란 것은 절대 작가의 주관의지가 직접적으로 개입될 여지
가 남을 수 없는 독자적인 생명체이다. 작가가 가진 결론을 이끌
려고 아둥바둥 대더라도 작품전체를 흐르는 주제(판타지에서는
세계관도 포함됩니다.)가 결론과 다르다면 결국엔 다르게 나타날
수 밖에 없는것도 작품이고, A캐릭에게 B캐릭을 죽이지말고 살려
야 한다고 수없이 외쳐도 비정하게 살인극을 일으키는 것도 작품
이다. 작품이란것은 그렇게 흘러갈때에야 비로소 자기만의 현실
성을 획득하게 된다. 만일 작가가 생각하는것 그대로 작품에 여
과 없이 무조건적으로 투영시키려고 한다면 그것은 이미 현실에
反하는(에구, 이제야 한자가 겨우 하나 나오네요.;;;) 소설이 된
다. 판타지조차도 현실에 직접적으로 대립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판타지 그자체는 그 어느 것보다 현실에서 그 구조를 찾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현실과 많이 밀접해진다. 하지
만 작가의 의지를 직접 개입시키는건 틀리다. 그것은 이를테면 사
과가 나무 밑으로 떨어지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고, 흐르는 시냇물
을 처음 나온곳에서 다시 땅밑으로 우겨넣는 행위인 것이다.
나도 확신하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벌써 3년가까이나 한
성수라는 광협에 대해서 생각하고 내린 결론이다. 물론 미흡한 결
론이긴 하지만 작품 자체로도 작품 외적으로도 그의 문제점에 대
해서 해답을 찾을 길이 없다면 결국 이런 결론말고 나오는게 아닐
까?
한가지, 딱 한가지 작가 그자체로서 그에 대해서 유일한 희망을 가
질 수 있었던 대목이 있다. 무당괴협전의 처음 부분. 나는 한성수가
쓴 것인줄도 모르고 감동했었다. 물론 처음 왕년의 악한이 죽을때는
상투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했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인 아이가 사람
들을 데리고 가면서 벌어진 온갖 일들에 대해서는 정말로 감동을 받
았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돌변한 그의 원래 문체에서 나는 또다시
어긋난 느낌에 그의 작품에서 "튕겨져 나가 버린"것이다.
한성수. 이 세글자를 가지고 내가 할 수 있는것도, 알 수 있는것도
없지만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그는 아직도 자기가 가장 잘 할수 있
는것을 남들에게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대중성에 얽매여 있기 때문
인 것일까? 아니면 자신에게도 그런 구석이 있다는것을 못 믿기 때
문일까? 그런것들에 대해서 보여줄정도로 무언가를 이루지 못해서
일까? 나는 아직도 무당괴협전의 처음부분이 단지 작가로서 억지
로 무리한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작품에 충실했었던 처음이었기
때문에 이룰 수 있었던 어떤 경지가 아닌가 싶다.
나는 한성수라는 사람에게 정말로 기대 하고 있다. 영화 그녀에게
를 만든 감독도 처음에는 이리튀고 저리튀는 작품들을 만들었지만
어느샌가 그런 경향을 버리고 관조를 얻어 거장이 될 수 있었다 한
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봐서라도 그는 충분히 거장이 될
소지가 충분하다. 사람은 먹은만큼만 내놓는다고 했다. 사람이 부
족한게 잘못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사람들
에게 충분히 내보이지도 못했고, 자신이 가진것의 절반또한 제대로
내놓지 않았다. 만일 제대로 내놓을 수 있었다면 적어도 파문제자가
처음 1~2권이 그렇게 비판받을 수 없었고, 내가 이런식의 글을 내놓
지도 않았다.
기다리겠다. 참나무가 제대로 크려면 100년이 넘게 걸린다고 했다.
광협이 대협이 되는 그날을 나는 기다리겠다. 이것은 단지 그의 앞
길에 나침반이 되는것일까 하여 철이 달라붙는 희안한 돌덩이를 내
놓는 것일 뿐이다.
부족한 우문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