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견화
작품명 : 황궁법사
출판사 : 파피루스
글을 쓰는 이가 자신의 상상력을 소설에 그대로 반영하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일단 그 상상을 실현하기 위한 개연성을 확보하는 작업이 어렵지요. 그것을 표현한다 하더라도 시대상으로 혹은 상황 상으로 옳은 것인지, 최선인지 혹여 오류는 없는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합니다.
그 때문에 많은 제반 지식을 쌓지 않고서야 선택하기 힘든 소재에 있어서는, 단순히 재미있는 상상을 생각하는 것과 그 상상을 소설에 반영하는 것은 어쩌면 다른 차원의 일일 겁니다.
그런 점에서 황궁법사는 재미있게도 거리낌 없이 성큼성큼 걸어 나간다는 느낌을 줍니다. 마치 상상력을 그대로 소설에 옮겨 놓은 느낌을 갖게 합니다.
복잡한 것을 단순화 할 수 있다는 것은 재능입니다.
그것에 있어서 황궁법사를 쓴 작가는 마치 그 상상에 제약이란 없다는 듯, 인세에 보기 힘든 천재를 주인공으로 선택하고 황궁에 대한 이야기를 기술하면서 거침없이 전진합니다.
마치 총기, 방독면 뺀 단독군장으로 행군하는 듯 가볍고, 몸에 딱 붙은 얇은 조깅복을 입은 여성처럼 날렵합니다.
이 소설의 기본 베이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갈가의 장남이지만 무가로 변질 되어가는 세가를 위해서 동생에게 후계자의 위치를 넘기는 주인공. 그는 인세에 보기 드문 천재적인 기억력과 사고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제 세가를 떠나 황궁으로 출사하는 그는 황궁에서 특이한 서적을 발견하게 되는데 과연 그에겐 어떠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소설의 스토리가 물 흐르듯 흐르고, 독자의 눈도 총알처럼 책을 훑고 페이지 또한 술술 넘어갑니다. 하지만 황궁법사란 버거엔 패티가 하나 빠져있습니다. 본시 둘이 있어야 풍족한 법인데 하나만 있고 다른 하나는 충족되어 있지 않습니다.
본시 이 모자란 패티는 책의 무게감을, 이야기의 풍미를, 지적 만족감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분명 소설을 적는 화자에게 넘치는 끼는 풍족했지만 연륜과 지식을 넣는 데는 모자란 감이 있었습니다. 관련지식의 기입이 대단히 적었고, 등장인물의 생각과 사고, 판단 및 책략에서 느껴져야 했을 깊이와 무게감은 부족했기 때문에 패티 하나가 모자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또한 책을 읽은 후 배부름을 느끼는 데에는 지적인 만족감뿐만 아니라 감정적인 만족감도 큰 영향을 줍니다. 이 감정적인 포만감이란 등장인물 사이에 흐르는 믿음과 신뢰에서 채워질 수도 있고 억울함과 울분을 삼키는 와중에 채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감정적인 부분에서도 그다지 감흥을 주지 못했습니다.
흐트러진 밸런스 또한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주인공의 주변엔 특수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 두명 포진해 있는데 그들에 대해 이제껏 작가가 표현해 오던 것과 달리 2권 후반에 실망스러울 정도로 낮은 능력을 보입니다. 도저히 신투의 후계자나 일급살수라고 말하지 못할 만큼의 잠적술. 어쩌면 이것은 복잡한 사건을 조형하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일 수도 있습니다. 소설 안에서 쓰이는 책략이 전체적으로 독자를 충분히 설득하고 만족시킬 만한 수준으로선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같은 맥락에서의 문제입니다.
따라서 이 소설에 대해 제 개인적인 취향에서 총평을 하자면. 분명 재미있게 읽을 수는 있으나 가슴엔 충족되지 않다고 평하겠습니다. 아무래도 패티 하나를 더 넣어야 합니다. 기름기 잘잘 흐르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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