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신의 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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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에 앞서
제목은 저렇지만 간만에 좀 재밌는 책을 만난 것 같습니다. 다른 현대판타지는 기대할 것이 없었기에 아쉬운 점도 없었지만 이 책은 의외로 아쉬웠습니다. 지금부터 그 이유를 한번 서술해보고자 합니다.
작가는 스토리를 전개하면서 “정보의 통제”를 합니다. 모든 정보를 독자에게 전달할 수도 있고, 일부의 정보만을 전달하면서도 스토리 전개를 보면 대략적으로 내용을 유추할 수 있는 정보를 전달하는 작가도 있습니다. 이 “정보의 통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장르가 추리 소설입니다. 하지만 어느 장르에서도 가능하기에 언제나 기대를 하지만 다른 여타 장르의 작가분들은 이런 부분을 생각하지 않으시죠. 그런데 신의 한수에서는 이 부분이 너무나 아쉽게 여겨졌습니다.
스토리를 따라가보면 참 처음에는 말이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내용 전개상 어쩔 수 없겠지만, 등장인물의 내면에 관한 묘사를 보면 너무 단편적인 묘사들 뿐이라 누가봐도 웃긴 내용이었습니다. 여자의 심리에 대한 묘사가 턱없이 부족했고 그럼에도 주인공에게 넘어간다는 이야기 전개는 실소를 머금게 만들었는데요. 그럼에도 글을 읽었던 이유는 그냥 처음에는 빌린게 아쉬워서 였습니다.
신의 한수는 다른 여타 판타지와 같습니다. 대부분 넘쳐나는 현대판타지와 궤를 비슷하게 한다는 소립니다. 기업을 정복하고 행복해지는 뭐 그런 내용이었기에 별 생각없이 읽다가 제가 처음으로 소름이 돋았던 부분이 11권 중반부였습니다.
앞에서 말했다시피 작가는 정보를 통제합니다. 그렇기에 주인공과 주인공을 배신한 여자 사이에 있었던 내용 전부를 보여주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죠. 그렇다면 여기서 하나의 갭이 생깁니다. Information Gap 이라는 말로 정보의 간극입니다. 뭐랄까, 간단한 비유를 하면 서울로 가기 위해 처음에는 작가와 독자가 경부고속도로를 탔습니다. 그러다가 중간에 작가의 정보통제로 인해 독자는 중간에 빠져서 국도를 타고 서울로 갑니다. 작가는 그 국도가 훤히 보이는 고속도로에서 독자를 바라보면서 차를타고 가고 있죠. 그러다가 마지막에 독자가 “어라, 이건 국도인데?” 라고 인지하게 되는 것이 반전소설입니다. 그리고 “어디서부터 국도를 타게 된거지?” 라고 추리하고 그 답을 알게 되는 것이 Information Gap의 기법이죠.
작가의 스토리를 따라가보면 주인공 장빈의 복수가 주된 흐름입니다. 이 복수를 하기 위해 호스트를 하고 여자를 꼬셔서 결국 재벌가의 사위가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권의 중반부에, 주인공 장빈을 배신하고 떠났던 민세아와의 해후가 보입니다. 여기서 주인공은 민세아에 대한 칼을 숨기고 “사랑”을 보이죠.
이 부분에서 저는 엄청난 전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생각했죠.
“주인공 장빈의 전직은 영화와 드라마 작가이다. 작가라는 것은 결국 상상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면 장빈과 민세아가 결혼해서 헤어진 것은 무언가 모종의 거래가 아니었을까? 장빈의 작가적 상상력과 민세아의 뛰어난 매력이 결합되어 음모를 꾸민 것이 아닐까? 그리고 거기에 대한 독자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복수“라는 내용으로 살짝 가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그 음모의 목표는 무엇일까? 아마 극중에 나오는 기업가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서 그 기업에 대한 차지를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닐까?”
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소름 돋더군요. 그 시점에서 작가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 가지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그대로 장빈이 복수를 진행함으로써, 그냥 이건 흔하디흔한 남자의 복수극입니다 라고 독자에게 전달하는 것과 둘째는, 장빈과 민세아가 나중에 다시 결합해서 그 기업의 총수가 됨으로써 독자의 뒤통수를 쾅! 하고 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작가님은 첫번째를 선택하셨죠. 그래서 저는 너무나 아쉬웠습니다. 정말정말정말정말 너무 아쉽더군요. 결론만 살짝 비틀었다면 충분히 추리 소설이나 반전 소설의 타이틀을 달아도 될만한 글이기에 말이죠.
예전에 라이니시스 전기라는 판타지를 본 적이 있습니다. 비만 드래곤이라는 욕을 먹던 라이니시스라는 드래곤 이야기였죠. 장난같아 보였지만 결국 치밀한 계산에 따른 결론이 있는걸 보고 그래도 잘 짜였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작가가 정보의 통제를 잘했더군요. 웬만한 양의 정보를 독자에게 던져줬음에도 알아차리지 못했기에 제가 받은 충격은 상당했습니다.
벚꽃지는 계절에 그대를 그리워하네 라는 책도 기억이 나네요. 작가의 정보 통제로 인해 뒤통수를 콱! 제대로 얻어 터진 책이었습니다. 놀랍더군요. 단지 그 글을 따라가면 고속도로를 타고 있는 듯한 기분인데 결국 알고보면 고속도로는 맞지만 내가 탄게 에쿠스가 아닌 티코였다는 생각이 드는 책이었습니다.
글이 너무 산만해졌습니다. 마음에 쏙 든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재밌었던 책을 만난 것 같아서 기쁩니다. 결말이 너무 아쉬웠기에 권해드리고 싶진 않습니다만, 한번쯤 작가로서 정보의 통제를 한번 생각해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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