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l'absence
작품명 : 카미노
출판사 : 문피아 정규연재란
여행. 『카미노』를 설명하려면 이 단어를 빠뜨릴 수 없습니다. 주인공 소울은 7년 예정으로 자전거 세계일주를 하던 중 이계로 넘어가게 됩니다. 천성은 어쩔 수 없는지 다른 세계에 와서도 그는 여전히 여행을 떠납니다. 모든 것이 그가 있던 2100년대의 지구와 다르면서도 같은, 기이한 퍼즐같은 세계. 그 기묘한 세상을 자전거 하나에 의지하여 여행하며 소울은 다채로운 신비와 경이를 만나고, 많은 것을 느끼며, 그것을 기록합니다. 네, 이것은 소울의 이계 기행문입니다.
문장은 담백하고 간결하며, 요란스레 치장하지 않습니다. 세상을 보고, 사람을 보고, 자신의 내면을 보며 문득 떠오르는 감회를 짤막하게 던져옵니다. 잊혀져있던 비석 앞에 서서, 하늘같던 호수를 건너면서, 내리는 비와 솟는 비의 이중주를 들으면서, 소울이 떠올리는 상념의 조각조각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그와 함께 거니는 듯한 착각에 빠집니다.
제가 작가라면 l'absence님의 다양한 문화권에 대한 지식과, 부드럽게 스며드는 삶에 대한 사유와, 동화인 듯 신화인 듯 몽롱하고 아름다운 세계와, 그 모든 것을 이야기로 엮어내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배우고 싶었을 겁니다. 그러면서도 이면에는 치밀한 설정을 깔아두고, 적절한 간격으로 반전과 충격을 통해 시선을 묶어두는 균형감각을 부러워했겠지요. 기억하는 분은 드물겠지만, 『카미노』에서 저는 백작 회 님의 향기를 느꼈습니다. '열 세번째 제자'와 '풍진세계'에서 느꼈던 그 즐거움을 카미노에서도 얻을 수 있었어요.
모자란 부분이 없진 않습니다. 하지만 피와 광기로 가득찬 판타지 세계에 지친 저에게, 소울의 여정은 비오는 가을 밤 홀로 숲을 거닐며 빗소리에 젖어드는 듯한 아스라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단점이 잘 보이지 않게 되고 마네요. 사실 리뷰를 적을 준비를 할 때는 이런 저런 지적사항을 정리해두기도 했지만... 지금은 다 잊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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