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카이첼
작품명 : 잃어버린 이름
출판사 :
스포 다수 있을 수 있습니다.
잃어버린 이름은 상당히 다양한 관점으로 작품을 즐길 수 있게 짜인 글이다. 그렇지만, 역시 이 글에서 핵심적으로 취하고 있는 중심줄기는 '강자와 약자'에 관한 테마다.
'약자에게는 고통받을 권리밖에 없다'는 명제가 작품 내에서 지속적으로 드러나는데, 결국 작품의 말미에 가서 이 명제의 옳고 그름이 결정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모든 내용은 저 말이 옳다고 여길 수 있는 근거로 제시된다. 주인공인 위버는 언제나 '하지만' '그렇지만' '정말 약자의 권리는 고통받는 것 뿐일까' 따위를 뇌까리지만, 끝내는 저 말에 감히 반박하지 못한다. 마음에 들지 않지만 결국에는 쓰게 웃으며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식의 태도를 취한다.
그러나 아마도 작품의 최후에 이르러서는 저 명제를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 부정하게 될 것으로 예상 할 수 있는 단서들이 이미 드러나고 있다. 작품 내의 강자 라고 할 만한 에위나, 그리고 그레이스에게서 이미 그것들이 보여진다. 이번 에피소드에서 위버의 말은 그것이 자신의 마음을 위장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라고는 해도, 나름의 진실미를 갖는다.
적어도 실버라이트에 대해, 에위나는 분명히 약자 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 적극적으로 채용하고 있는 강자와 약자에 대한 니체의 묘사를 살펴보면 이해가 더욱 쉽겠다. 한 마디로, '강자는 쉽게 잊을 수 있는 사람' 이다. 강자는 어떤 상처나 아픔이 그 자신을 좀먹게 놔두지 않는다. 아픔과 상처에 신음하면서도 그것을 자신의 내면에 각인시키지 않으며, 결코 기억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을 좀 더 충만하게 하는 다른 무엇을 찾아 행함으로써 그 상처를 자연스럽게 '잊는다.'
이런 의미에서 실버라이트가 자신에게 가한 상처를 잊지 못하고 그것을 결정화한 채 자신을 학대하는 에위나는 약자다. 약자이기에 또한 그것을 지적하는 위버를 견디지 못하고 다만, 물리적인 힘의 우위를 내세워 위버가 더 이상 자신에게 다가오지 못하도록 선을 그어 놓는 것이다.
그레이스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녀는 강자이지만, 자신의 힘의 기원조차 알지 못한다. 그녀의 힘은 대단히 놀라운 것이지만, 그 힘이 작용하는 가장 밑바닥에 놓인 핵심에 대해 그녀는 무지하고, 그녀 자신의 말마따나, 정보의 부족함은 곧 그가 약자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작중에서 분명히 그녀는 한 번 무너질 것이다. 그 기점은 실버라이트의 재등장일 것이고, 그것은 위버의 각성과 때를 같이할 것이다. 그 때 에위나와 그레이스는 여지껏 그들이 서있던 지반이 강하게 흔들리는 지각변동을 겪게 될 것이고, 비로소 '배신'이라는 에피소드의 제목이 갖는 진정한 의미가 드러나게 될 것이다.
여튼, 다시 돌아오면, 이렇듯 작품 내에서 최고로 '강한 자' 들이라고 불릴 만한 이들을 통해서, '언제나 강하지만은 않다 혹은 언제나 강하기만한 것은 가능하지 않다'는 지점이 포착되기에, 그렇다면 '약자의 권리는 고통받는 것일 뿐이다.' 라는 명제가 과연 옳은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이 감상에서 따지는 옳고 그름은 윤리적 문제로서의 옳고 그름이다.)
'그것 말고 다른 무언가가 있지 않을까. 누구도 언제나 강자일 수 없고, 언제 어느 때에 약자일 수 있는 가능성에서 벗어날 수 없다면, 강자가 되기만을 종용하는 저 명제는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른다.'
사실 기본적으로 '항상 강한 자'로서의 개념은 니체에게서조차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강함 은, 때로는 강했다가도 다시 약해지는 삶의 순간에서 결코 약해진 그 상태에 머무르지 않고 다시 도약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 그 자체에서 드러나는 그 무엇, 으로 묘사된다. 그렇기 때문에 위버멘쉬는 '결코 멈추지 않고 넘어가는 자'로서 이해되는 것이다.
사실상, 잃어버린 이름에서 강자와 약자의 개념은 너무도 분명하게 니체에게 빚을 지고 있는 부분이 많은데, 그것에 비추어 보면 에위나나 그레이스 위버 모두 그들이 지닌 강함에 비해 너무 어수룩한 부분이 많다. 그들이 보여주는 미숙한 면면들은 작품 설정상 그들의 '물리적인 강한 정도'에도 핵심적으로 연결되어있어야 하는데, 그런 연결이 좀 헐겁지 않나 싶다.
특히 에위나나 위버. 그들이 목표로 하는 '모든 것을 향한 검'은 사물이나 사태를 해석함에 그 무엇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정신을 전제하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보기에 에위나는 아직 자유롭지 않고, 위버는 모든 것을 향한 검 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를 갖고 있음에도 에위나에 대한 일에 대해서는 정말 더럽게 멍청하고 단선적이기 짝이 없다. 모든 것을 향한다는 정신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에위나나 위버 모두 상대를 향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는 '약함'을 갖는데, 외면적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검은 어찌 그리 강할 수 있는가?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하지 않고 있는데, 다시 말해 약하지 않으려고 하는 그 어떤 의지도 보이지 않는데, 그들의 검은 투리에를 한 방에 가르고, 악마를 종잇장처럼 찢어발긴다. 있을 수 있는 일인가.
이 부분에 대해서, 위버는 아직 베일에 쌓여있는 게 너무 많아(가령 실버나 에위나조차 뛰어넘는 이해불가능의 직관력 이라든지, 이게 위버의 정체와 핵심적으로 연결되어있다고 보는데 뭐..)뭐라 말하기가 좀 그렇고, 에위나의 경우도 아직은 역장의 진실한 힘을 깨우치지 못하고 있다는 점, 그러므로 아직 모든 것을 향한 검 이 결코 완전하지 않다는 점에서 설명이 가능한 것 같기는 하다.
그들이 정신이 미숙한 만큼, 그들의 강함도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는 느낌.
역시 가장 기대되는 것은 실버라이트의 등장이다. 드러난 걸로만 보면 그는 이미 역장의 실체를 분명하게 알고, 또 활용할 줄 아는 것 같다. 그의 등장에 따라 악마들에 대한 이야기 또한, 많이 공개될 것이니 어서 그의 등장이 기대된다. 그레이스도 에위나도 진짜 좀 궁디팡팡 하면서 맞아야 됨. 이것들이 콧대도 높고 실력도 있고 오만하니 왠지 재수가 없어서. 진짜 한 번 질질싸게 당해봐야 되는데. 위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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