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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소설에서의 재미란 무엇인가
모두들 말하기를 “재미가 있어야 소설이든 무엇이든 읽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재미란 무엇인가? 주인공의 캐릭터, 스토리 라인, 주변 풍광의 묘사, 심적 침잠, 독자의 주인공에 대한 심리적 투영, 소설이 다루는 분야에 대한 전문적 지식, 카타르시스, 인간성에 대한 통찰....
수도 없이 많은 재미의 요인들을 많은 문학평론가들이 분석해 놓은 것이 있다. 특이한 것은 서울대 불문과 교수로 있다가 간경변으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문학평론가 김 현 교수가 1969년 월간 “세대“에 발표한 최초의 무협소설 평론 ”무협소설은 왜 읽히는가?“와 서울대 중문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전형준 교수가 2003년 서울대 출판부에서 간행한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를 들 수 있다. 또한 이화여대 국문과 이인화 교수(”잃어버린 왕국“의 저자이기도 하다.)의 ”김광주 번안 무협소설의 문학적 의미“(1998)도 있다.
곁가지 이야기지만 1961년 “정협지”를 번안해서 당시 장안에 무협소설 열풍을 몰고 온 소설가 김광주는 최근 TV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원작 “칼의 노래”로 유명해진 소설가 김 훈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김 훈의 후일담에 의하면 김광주 선생께서 병석에 누워있을 당시 동아일보 연재소설 원고(“낙양청년 비호”, 대만 중앙일보에 연재되었던 소설을 김광주 선생이 번안하였다.)를 보내야만 하는데 글을 쓸 수 없는 상태라 고등학교에 다니던 김훈이 대신 원고를 써서 신문사에 가져다 준 일도 왕왕 있었다고 한다.
무협소설에 대한 최초의 학문적 고찰이라고 할 수 있는 김현의 “무협소설은 왜 읽히는가.”에서는 소외되고 무력화된 중산층의 현실 도피와 대리 만족이 근본 이유라고 분석했다. 지금도 일정 부분 맞는 말이다. 그러나 무협문화의 향유자이자 생산자인 우리의 관점에서 볼 때에는 너무 현학적이고 케케묵은 냄새가 나는 것도 사실이다.
과연 무협소설, 장르소설의 재미란 무엇일까 하는 것이 필자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초점이다.
독자의 관점에서 2000년 이후에 나타난 재미있는 소설들은 크게 다섯 부류로 나눠 볼 수 있다.
1) 먼치킨 소설
2) 성장 소설 - “진가소전”, “군림천하” 스타일
3) 추적 소설
한시도 쉴 틈이 없이 독자에게 긴장을 요구하는 스타일이다. 예를 들면 미국 TV시리즈 “24” 같은 스타일. 무협에서는 설봉의 “사신”을 예로 들 수 있다.
4) 직업 소설
“학사검전”, “기문둔갑”, “의선” 과 같이 무공이 아닌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강호사에 말려드는 스토리. 헐리우드 영화의 문법이다.
예를 들면 하버드 교수인 기호학자가 살인사건에 말려드는 “다빈치 코드”, 움베르코 에코의 “푸코의 추”, 의사가 제약회사의 음모에 말려드는 해리슨 포드 주연의 “퓨저티브(도망자)”
각 분야는 나름대로 정석을 가지고 있다.
먼치킨 소설은 초강력 포스를 지닌 주인공이 “덤비면 죽는다.”라는 좌우명을 가지고 좌충우돌한다. 소설적인 장치도 적은 편이고 주인공은 큰 고생을 하지 않는다. 이 점이 먼치킨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이다. 독자 입장에서 마음 졸일 이유가 없다. 줄거리를 따라가면 즐겁고 흥분된다.
성장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독자의 심리적 투영과 대리만족이다. “진가소전”의 예를 들면 어려운 환경에 처한 주인공이 뒷방 할아버지에게 무공을 배우고 강호에 출도해 황실의 어려움을 해결하고 훌륭한 사람이 된다는 스토리다. 독자는 주인공 진가소를 자기와 동일시해서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게 된다. 주인공이 성공하면 즐겁고 기쁘다는 독자의 심리적 욕구를 만족시켜주는 소설이다. “군림천하”도 동일한 스토리 라인을 가져간다.
그러나 성장소설은 작가의 입장에서는 쓰기가 매우 어렵다. 작업에 착수하기 전에 세밀한 시놉시스가 만들어져 있어야 합리적으로 - 말이 되게 - 주인공의 성장을 설명할 수 있다. “어느 날 절벽에서 떨어지니 무공비급이 있더라.” 혹은 “병기점에 들어가 아무 칼이나 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간장, 막야 같은 명검이더라.”는 스토리가 독자들에게 별로 통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점이 “군림천하”의 완결이 상당 기간 늦어지고 있는 이유라고 보아도 틀림없다.
추적 소설을 읽는 독자는 긴장을 즐기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주인공은 언제나 곤경에 처해있고 - “24”를 보시라. 주인공 잭 바우어는 매 편마다 죽기 일보 직전이다. “사신”도 별로 다르지 않다. - 도와주는 사람도 별로 없다. 자기의 힘만으로 곤경을 빠져나와야 한다.
그러나 추적 소설은 작가의 상상력과 필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절대로 재미있는 이야기가 될 수 없다. 이런 소설을 쓸 수 있는 작가는 타고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만, 세밀한 시놉시스나 장황한 묘사는 이런 종류의 소설에 불필요할 수도 있다.
직업 소설은 헐리우드 문법에 가장 충실한 소설 기법이다. 타 분야의 전문가이기 때문에 기본적인 IQ는 보장된 셈이고 도와주러 나타날 사람들도 대기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런 소설의 주인공은 언제나 국외자일 수밖에 없다. “다빈치 코드”의 주인공인 기호학자도 프랑스라는 땅이나 경찰이라는 조직에서는 국외자다. “기문둔갑”에서도 주인공 왕소단은 무림맹에서도 국외자이고 가문에서도 국외자이다. “의선”의 주인공 양연소 역시 소림사를 비롯해서 무림에서는 국외자의 신분이다. “학사검전” 역시 극적 장치는 똑같다. 하늘을 뒤덮는 지혜와 신공을 가지고 있어도 사회에서는 알아주지 않는다.
독자는 이런 점 때문에 직업 소설을 좋아할 수밖에 없다. 자신은 회사에서도, 학교에서도 국외자이기 때문에 국외자의 관점에서 강호를 바라보는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게 된다. 투영과 대리만족이라는 공식에 딱 들어맞는다.
그러나 직업 소설을 쓰기 위해서는 저자가 이 분야의 전문가든지 아니면 엄청난 자료 조사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시간이 많이 걸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다작은 불가능하다.
대충 살펴본 바와 같이 장르 소설, 그중에서도 무협소설이 가지는 재미는 스토리 라인을 따라갈 때 느끼는 흥겨움 (먼치킨 소설),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심리적 투영과 대리 만족 (성장소설, 직업소설), 읽는 순간의 짜릿한 스릴 (추적 소설)을 주축으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논리적 설명이 가능한 사건 전개와 말이 되는 출연진의 캐릭터, 그리고 사건이 일어나는 현장의 생생함이 전제되지 않고서는 위에 설명한 재미를 느낄 수 없다.
정확하게 사용되는 문법과 어법은 필수적이다. 모든 이야기의 바탕이 정확한 문법과 어법이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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