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박성진(금시조) / 위치우위
작품명 : 절대무적 / 중국문화답사기
출판사 : 로크미디어 / 미래 M&B
1. 한국 남자는 일생에 세 번만 울기를 강요당한다. 태어나서, 부모가 돌아가실 때, 나라를 잃고(왕 혹은 주군이 죽을 때), 이렇게 세 번 정확히 말하면 세 가지 경우에 울수 있는 기회가 생간다. 나의 경우 여자도 울지 않는 영화를 보며 울곤 하는데 한국 남자로서 자격상실이다.
눈물이 흔한 사람이 권할 책이라 얕보지 말기를. 나 말고 다 이도 흘렸으니.
2. 소개할 책은 절대무적과 중국문화답사기이다. 조금 범위를 좁히면 절대무적 1권 중 사부의 사랑(정확한 소제목은 아닙니다)부분이고, 중국문화답사기 중 ‘중국의 우편배달부, 신객(信客)’과 ‘주공(酒公) 장선생이야기’이다.
3. 눈물이 흔한 사람도 변명을 할 수 있다. 아래의 글은 두 권의 책이 나에게 눈물을 준 방법에 관한 것이다. 먼저 낯선 책부터 소개한다. 위치우위(余秋雨)가 저자이다. 상하이 교통대학교수이며 예술평론가, 흔히 현대의 노신으로 일컫는다. 적은 분량이나마 노신의 글을 읽은 나로서는 둘 사이의 같음보다 다름이 눈에 더 띠어 선뜻 동의하기 힘들다. 노신은 잠자는 중국을 깨우기 위해 의도를 드러낸 채 글쓰기를 즐겼다. 하지만 위치우위는 계몽적인 글쓰기를 하지 않는다. 그는 신객과 주공의 삶을 연대기적으로 조망하기만 한다. 작가의 판단을 배제한 채 우편배달부와 술주정꾼의 삶을 그린다. 10여 page의 짧은 분량에 한 사람의 일생을 닮아냈다. 사람의 생애만큼 감동을 주는 소재가 어디 있으랴? 다만 작가는 한 권의 책이 아닌 10여 쪽의 분량으로 그것을 해냈다. 관형어구를 배제한 짧은 문장. 작가는 전달자의 역할만 한 것이다. 독자는 글을 따라가며 우편배달부의 삶을 추적하게 된다. 아마도 노신과 같음이라면 문장의 간결함과 인본주의가 아닌가 싶다. 과거 사람은 대놓고 논쟁적인 글쓰기를 할 수 밖에 없었다면 후인은 독자로 하여금 작가가 의도한 바를 느끼게 해준다. 작가의 글 역시 시대를 벗어날 수 없나 보다.
4. 절대무적의 작가는 금시조다. 하지만 이전의 작품과는 달리 실명(實名)출판했다. 그 자체로도 의미부여할 수 있겠으나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그 이름을 다시 보게 된다. 여기서는 절대무적의 전반을 다루지 않고 사부의 사랑이야기만 초점을 맞춘다. 정확히는 책 비평이 아니라 내 눈물에 대한 변명이다.
위의 우편배달부 이야기와 달리 픽션이다. 작가의 개입정도가 아니라 창조다. 여기서 문제는 독자의 개입이다. 대강의 줄거리는 이렇다. 사부와 사모는 결혼할 사이고(당연한 거죠^^) 사랑했으나 사모는 사부의 집안을 몰살시킨다. 사부는 복수를 다짐한다. 하지만 그는 복수의 대상을 찾지 못한다. 사부에게 있어 사모는 사랑의 대상이지 복수의 대상(원수)은 아니다. 원수가 없는 복수는 없다. 이것이 사부를 괴롭히게 된다. 그래서 찾은 것이 바로 자기 자신. 사부는 술에 빠져 지낸다. 원수여야 할 사람을 사랑한 자신이야말로 진정한 원수인 것이다. 여기에서 독자들은 사부에 대한 연민을 갖게 되고, 이것이 작가가 의도한 독자들 눈물 뺏기의 전제다.
울리려는 작가와 안 울려는 독자(독자는 통쾌한 사모를 향한 복수를 원한다)와의 시합은 시작됐고, 나는 패했다. 여기서 작가 금시조는 은폐하기와 드러내기의 적절한 시차(시간의 간격)전략을 사용한다. 이전의 줄거리에서 사모의 본심이 은폐됐고, 그 후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던 벗들의 악의가 드러나게 된다. 절정을 향했을 때 바로 사모의 진심(사랑)이 드러났다.
결국 사부는 복수에 성공했다. 그는 자기 자신을 용서하게 된 것이다(자기에게 복수의 칼을 겨눈 자는 스스로 용서해야 복수에 성공하기 마련이다). 그의 잘못은 원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아내의 사랑을 의심한 것이다. 그도 아내도 사랑은 변치 않았다. 아내가 자신의 dfl가를 몰살시킨 것은 운명이었다. 자신의 일가가 아내의 부모를 죽인 것도 운명이고, 복수의 의도로 접근했던 사모가 사부에게 사랑을 느꼈던 것도 운명이다. 운명의 굴레를 벗어던지면 사랑만이 남는다.
은폐와 드러냄의 장치. 작가 금시조는 독자의 개입을 마지막에 가서야 승인한다. 그래서 나는 독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그것이 눈물로 나타났을 뿐.
5. 하나는 예술평론 속의 에세이이고 하나는 소설이다. 장르는 다르지만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하나는 뒤로 물러서서 하나는 앞을 가리며 독자가 감동을 만나게 해 주었다. 작가의 방식의 차이다.
* 뱀다리 1 - 허섭쓰레기지만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뱀다리 2 - 글 성격상 높임 대위법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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