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의 여러 장편들중 최고작을 고르라면 사람사람마다 할말이 많을 것이다.
각각의 작품에 뛰어난 점이 있어, 모두 수작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녹정기만큼은 여타의 작품과 비교 할 수 없는 차이점이 있다.
첫째, 무협소설이면서도 무협소설이 아니다.
-무협소설이라 할라치면 최소한 무나 협중 한가지는 포함되야 할 것이다.
하지만 녹정기의 주인공 위소보는 무공은 말할 것도 없고,
협이란 단어와 전혀 인연이 없는 인물이다.
둘째, 영웅주의를 극복하였다.
-무협소설의 주인공은 대개 초인적인 능력을 지닌 인물들이다. 물론 천하제일
고수가 아닌 경우도 있으나, 그런 경우에도 왠만한 고수들은 농락하는 수준이
다. 보통사람들과 차별되는 인물이기에 독자로 하여금 감정이입하여 즐거움을
주는 것이다. 하지만 녹정기의 주인공 위소보는 보통사람인 혹은 보통사람도
못돼는 막되먹은 인물이다.
셋째, 실제 역사와 완벽히 조화를 이루었다.
-김용,양우생등의 작가들은 탁월한 역사관을 바탕으로 실제 역사를 무협소설
속에 생생히 녹여놓는다. 김용에 있어서 그 정점은 녹정기라고 생각한다.
넷째, 중화사상을 극복하였다.
-중국작가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작가들도 맹목적인 중화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몽고족은 무조건 악의 무리이고, 서장의 문파들은 대부분
중원을 침공하는 마도의 무리로 설정된다. 중국작가들은 자기들 이야기니
내심 이해할 수도 있겠으나, 우리나라 작가들 조차 반성없이 이를 차용하는
것은 실로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녹정기에서 김용은 성군 강희제를 등장시키
고 한족이 아닌 위소보를 등장시켜 위대한 한족- 비천한 오랑캐들이라는
도식을 극복하였다.
녹정기의 장점이 이것 뿐이랴 만은 일단 생각나는 것만 적어 보았다.
어렸을 때는 전혀 뛰어남이 없고 잔머리만 굴리는 주인공에 가로막혀
여러번 녹정기를 포기했었다. 도대체 이런 작품을 김용이 왜 썼는지 조차
의심할 정도였다. 하지만 네번째로 완독한 지금에 있어서는 녹정기가
김용최후의 작품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되었다. 아무리 천재라도
두번씩이나 장르의 벽을 무너뜨릴 수는 없을 것이다. 신필 김용이지만
녹정기를 뛰어넘는 작품은 내놓기 불가능하리라.
참고- 녹정기를 읽음에는 당시의 대략적인 중국역사를 알아두는 편이
좋습니다. 글내에서 설명된 부분도 있지만 이는 중국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어서 부족한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같은 경우는 조너선 스펜서
의 '현대 중국을 찾아서'를 추천하고 싶네요. 예일대 교수가 쓴 책이지만
지루함이 없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아마 녹정기와 같이 읽으면 재미가
두배가 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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