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우입니다.
아래 청풍님의 글의 대한 답변입니다.
용설아를 봉성으로 데려가면서부터 많은 싸움이 벌어지고 엄청난 적들이 사공운과 싸우게 된다. 그리고 그 적들 중에는 자신의 문파에서 실전된 절기들을 몇 백년만에 제일 완벽하게 익힌 인물들도 나온다. 그만한 사람들이라면 장문인들 정도로 비중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 그런 사람들이라면 그만큼 비중 있는 개성부여와 그렇게 움직이게 된 최소한의 과정을 그려주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전개 과정이 전혀 없다.
엄청난 사람들이라는 것 정도는 짐작하겠는데 전혀 그런 비중이 없이,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한 소모품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주인공은 어디서 그렇게 많이 나타났는지 이해가 안 가는 적들을 계속해서 물리친다. 아무리 적이지만 그들에 대한 개성이나 개연성을 너무 그려놓지 않으니 나중에는 누가 아군이고 적인지도 모를 상황으로 비춰졌다.
여기에 대한 답입니다.
1 : 이들은 십대 사령인들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주인공을 돋보이기 위한 소모품이란 말에 할 말이 없습니다. 이들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고 상당히 중요한 캐릭터들로 현재 나름대로 몰락한 문파들의 수장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용설향에게 사문의 잊혀진 비급을 얻는 대신 일정기간 그녀의 명령을 듣기로 약속하였고, 그 일을 진행중이였습니다. 즉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심정을 틈틈히 복선으로 보여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이 없었다고 하신다면 나는 할 말이 없습니다.
소설을 쓰면서 나오는 캐릭터마다 처음부터 자세하게 설명을 하고 글을 쓰란 말이나 마찬가지겠죠. 그리고 아직 소설은 세 권이나 남았습니다. 혹시 비밀수호대의 청년들을 기억하실련지 모르겠습니다. 그 중 황보룡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아 읽다가 마셨다니 알지 못하겠지요.
그는 바로 십대 사령과 사공운의 가교 역할을 하는 인물입니다. 십대사령인들 중 황보가의 인물이 있었죠.
그리고 글에는 감춰진 부분이 있습니다.
설마 십대 사령인 정도의 인물들이 그렇게 행동하게 된 사연을 처음부터 알알이 다 말하고 글을 쓰란 말은 아니리라 믿겠습니다.
2 : 갑자기 나타난 많은 적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조금만 더 자세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많지만 간단하게 신룡각과 금룡각. 이 두 세력의 하수인들이 전부입니다. 그것으로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부분을 설명하기 위해 용설아와 팽예린의 대화 장면이 군데군데 삽입된 것입니다. 그리고 글의 내용(스토리)상으로도 충분히 근거가 될 수 있도록 배치를 해 놓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그 부분을 놓치셨다면 아마도 내가 너무 어렵게 글을 써 놓았던 모양입니다.
사공운의 대화중에 그 부분을 분명하게 설명한 부분이 있습니다.
두 번째 의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처음으로 실망을 하게 된 부분은 위기에 처한 주인공을 대신해서 주인공의 사부가 목이 잘리며 대신 죽고, 주인공은 멀쩡하게 살아 나오는 장면이었다.
주인공은 중원 십대고수 중 한 사람이라고 몇 번이나 언급되었다.
십대고수를 키운 사부라면 그 이상이나, 아무리 청출어람이라도 그 비슷한 수준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그렇게 쉽게 죽어도 되는 것일까?
제자 사랑이 너무 극진해서 그렇다고 볼 수도 있지만, 주인공의 사문은 용설아의 가문인 용부와는 뼈에 사무친 원한이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그 철천지원수 가문의 여식을 구하려는 제자를 위해 그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 있을까?
열 번 양보해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하자.
그렇다면 사부가 그렇게 죽기까지의 과정이라도 전개가 되어야 한다. 어떤 수법으로 사부가 최대 위기를 맞은 주인공과 바뀌고, 어떻게 그 도산검림을 빠져나오고 하는 과정들이라도 그려 주어야 한다. 애초에 비중을 안 두고 창출한 사부라면 모르겠지만 제자를 위해 목숨을 바친, 충분히 그만한 비중과 자격이 있는 사부가 아닌가?
그 과정이 깨끗이 생략되고, 독자들에게 사부가 대신 죽고 주인공은 살았다는 그 한마디로 얼버무릴 수는 없다고 본다.
처음으로 실망감과 함께 작가의 무성의함까지 느꼈던 부분이다.
나중에 주인공이 그 사실을 알고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며 통곡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긴박한 순간에 그럴 시간이 어디 있을지도 의문이었고, 무엇보다 그건 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 그 전에 성의를 보여 주었어야 할 일이다.
가지는 전혀 없고 어느 순간, 모든 조건 무시하고 제자를 위해 목숨을 던진 사부라는 열매 하나가 더 열렸다.
1번 사공운의 사부에 대한 이야기는 호위무사 내내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의 제자에 대한 사랑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 성격의 인물이 왜 목숨을 받쳤냐고요?
생각해보십시오. 청풍님이라면 아무리 복수라지만 죄 없는 어린 소녀를 납치해서 생과부를 만들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와 제자가 사랑하는 여자를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상황을 제대로 이해 못하는 제자와 제자의 여자에게 죄책감이 안 생긴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입니다.
더군다나 유한 성격의 사부 입장에서 말입니다.
그리고 사부가 죽은 것은 자신이 죽음으로서 제자의 위험을 어느 정도 제거한 것입니다.
사부가 죽자 사공운이 죽은 것으로 오인하게 되었고, 사공운에게 시간을 벌어 주었죠. 이 부분은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사부의 죽음에 대해서 강하게 언급하지 않은 것은 그럴 경우 많은 양으로 늘어나는 소설의 양이 자칫 지루하게 보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대신 사공운의 비통함으로 대처하려 하였습니다.
2 : 사부의 죽음 후 사공운의 행동
당시 사공운은 봉성의 인물들을 만나고 나서죠? 즉 이미 봉성의 테두리에 어느정도 들어섰고, 응원군이 와 있는 상황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느 정도 안심이 된 상황이였고요.
세 번째 의문에 대한 해답입니다.
두 번째로 실망한 부분은 주인공의 죽은 남성이 되살아나는 부분이었다.
처음 접했을 때 15년이라는 세월동안 남자구실을 못하는 것을 감수하며 내원 호위무사로 뛰어드는 주인공을 보며 비장함을 느꼈다.
그런 설정은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는 하나의 큰 룰로 작용해야 한다.
그런데 용설아가 내민 약봉지 하나로 간단히 해결되어버린다.
물론 그 약봉지를 받기까지 엄청난 수고를 했다. 하지만 너무 간단하게 처음 정한 룰을 바꿔버렸다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1 : 룰은 원래부터 그렇게 정해진 룰이었습니다.
둘은 헤어지기 전에 마지막으로 육체적 교감을 나눕니다. 억압되었던 남성이 풀어지는 것은 단순하게 육체적인 해체를 위한 룰이 아니었습니다. 그 부분은 정신적으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장치였죠. 즉 활근정은 단순하게 사공운의 남성을 풀어주는 약이 아니라 용설아의 마음을 전해주는 일종의 매개체였습니다.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진 룰 이였구요.
만약 이런 설정이 독자를 이해시키지 못했다면 그것은 분명 나의 자롯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간단하게 정한 룰을 바꾸었다는 말은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네 번째 의문에 대한 해명입니다.
세 번째로 실망한 부분은 용설아가 낳은 아이가 하나뿐이 아니라 쌍둥이고, 진아라는 아들이 있다는 설정이었다.
그 부분에서 결국 책을 덮고 말았다.
자신이 아이를 낳았다는 기억이 되살아나지만 쌍둥이라는 사실은 기억 못하는 설정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딸을 낳을 때는 깨어있었고 아들을 낳을 때는 정신을 잃었단 말인가?
가사상태에 있었다가 아들을 낳고 나서 딸을 낳을 때 깨어나 버렸다면 억지로 말이 될 듯은 싶지만...
어쨌든 쌍둥이에 아들이 하나 더 있다는, 이제껏 전혀 짐작도 못한 갑작스런 설정!
기막힌 반전일까?
절대 아니라고 본다.
반전이란 주어진 틀 속에서 독자들도 이미 알고있는 요소들을 이용해 독자들이 미처 생각 못한 한 차원 높은 상황전개로 독자들을 감탄시키는 것이다.
이제껏 전혀 틀 속에 들어있지 않던 요소를 갑자기 추가하는 이런 식의 설정은 틀 자체를 수정하거나 무너뜨리는 것이지 반전이 아니다.
1 : 쌍둥이 중에 아들은 동생입니다. 즉 누나를 낳고 기절을 한거죠.
이 부분 좀 자세하게 읽어 봐 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그전에 두 호법과 공정이 대화하는 부분을 좀 자세히 읽어 봐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해답은 나와 있습니다.
2 :
처음 아이가 쌍둥이가 될 수 밖에 없는 부분은 일권 처음부터 용설아에 대한 설명이 나오면서부터 이미 어느 정도 복선을 깔아 놓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도 호위무사를 읽다 보면 곳곳에 그 부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왜? 용설아를 봉성에 보냈는지. 그리고 용취아에 대한 이야기 곳곳에 말입니다.
전혀 틀 속에 들어 있지 않았던 요소는 아니라는 변명입니다.
혹시 그 부분의 의문이 독자분들은 다시 한번 읽어 봐 주셨으면 합니다.
그래도 납득 못하신다면 그것은 분명히 나의 오류입니다.
다섯 번째 해명입니다.
그리고 이해가 안되는 설정도 많았다.
우선, 엄청난 힘과 그만한 경쟁세력들을 가진 용부의 용설아가 무공을 모른다?
주인공을 상대적으로 멋지게 보이는 설정이기는 하겠지만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설정이다.
그건 용설아가 납치되어 사공운과 함께 정이 들대로 들만큼 살다가 임신까지 하고 나타난 사실을 용부사람들 거의 전부가 모르고, 이대 호법이 바로 구해왔다고 믿고 있다는 설정만큼이나 당황스러운 설정이었다.
사공운과 6개월을 같이 살고, 애를 낳을 때까지 8-9개월간 가사상태로 두었다는데....
남들이 볼 때는 납치되었다가 바로 구해진 후, 그 다음부터 족히 1년 이상을 두문불출이다.....
용부에서 용설아의 위치를 생각할 때, 어떻게 구해왔다고 믿을 것이며, 그 기간동안 구구한 억측 한 마디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그 후 쌍둥이를 낳은 여자를 봉성으로 과감히 시집보내는 용부는 무슨 똥 배짱인가.
수궁사란 것이 있고, 아이 낳은 여자와 안 낳은 여자는 왠만하면 알아본다.
1 : 용설아가 무공을 모르는 부분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공부의 무공을 모르는 여자가 용공공의 부인이 된다고 하면서 바탕에 깔은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은 나중에 아주 중요한 반전 하고도 상관이 있는 글입니다.
조금 더 인내심을 지니고 보신 후에 평해 주셨으면 합니다.
2 : 쌍둥이를 낳은 여자를 봉성에 보내는 부분이요.
이 부분 또한 소설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고 실제 호위무사에서는 근간을 이루는 설정입니다. 또한 당시 중원의 모든 여자가 수궁사를 지니고 있었단 것은 아닌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극히 소수였라는 것이 호위무사에 설정입니다.
3 : 사공운과 6개월을 같이 살고, 애를 낳을 때까지 8-9개월간 가사상태로 두었다는데....
남들이 볼 때는 납치되었다가 바로 구해진 후, 그 다음부터 족히 1년 이상을 두문불출이다.....
용부에서 용설아의 위치를 생각할 때, 어떻게 구해왔다고 믿을 것이며, 그 기간동안 구구한 억측 한 마디 나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아니 신룡각과 금룡각은 당시 용설아를 납치하려고 했던 세력중에 끼어 있었습니다.(십대 사령인.)
그들은 당시 천룡전에서 뒷조사를 할까 전전긍긍하는 중이었죠. 어떤 억측을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습니다.
여섯 번째 우연입니다.
개연성 부족의 극치는 맹각이 사라진 용설아를 만나는 부분에서 이루어진다.
대개의 경우 개연성부족은 우연의 중복이라는 모습으로 가장 많이 다가온다. 아니, 우연의 중복은 필연적으로 개연성 부족을 낳는다.
맹각이 도화랑군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다. 그러나 그것은 첫번째 우연이기에 문제 될 것이 없다. 뒤이어 도화랑군이 우연히 용설아와 만나 보자기로 납치해 가다가 맹각과 마주치게 되자 ‘이 여자는 아이를 가졌고, 다가오면 아이와 산모까지 죽인다’ 라고 거짓 협박을 했다. 그러나 우연히도 도화랑군이 납치한 용설아는 그때 아이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도 안 되자 도화랑군은 용설아를 감싼 보자기를 던졌고, 던진 보자기를 맹각이 잘못 잡은 우연이 겹친다. 그 때문에 용설아가 보자기에서 흘러내려 하필 돌에 머리를 부딪치는 우연이 또 겹친다. 결국 단엽 사부의 영몽환이 효력을 잃고 용설아의 기억이 부분적으로 되살아난다.
몇 개의 우연히 중복되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막힌 우연은, 그 전에 단엽의 사부가 용설아에게 영몽환을 복용시키면서 용설아에게 복용시킨 것은 뜻하지 않게 너무 오래된 것이라 머리에 충격을 받으면 깨어날지도 모르겠다고 걱정한다. 그리고 정확하게 용설아가 머리에 충격을 받는다.
하필 그런 중요한 순간에 싱싱한 영몽환은 다 떨어지고 오래된 것만 남아있었을까?
우연치고는 기막힌 우연이다.
청풍님 세상에 우연이란게 전혀 없이, 아니 소설을 쓰면서 우연이 전혀 없는 설정으로 글을 쓸 재주가 아직 저에게는 없습니다. 아직은 능력 부족입니다.
그리고 그 부분에서 우연이 겹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큰 사건으로 번졌겠죠.
사실 그 우연이 없었으면 호위무사도 없습니다. 그렇게 이해해주시길.....
마지막입니다.
아무리 단엽이 용설아를 집 박으로 못나가게 했고, 등잔밑이 어두웠다고 하지만 도화랑군이 3일만에 도달할정도로 용부와 가까운 거리에 용설아가 6개월 동안 살았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다.
그런 곳에 둘을 살게 한 단엽사부야 말로 정말 이상하다.
단엽 사부의 깊은 심계일까? (분명히 5년 휴가라 했는데.....)
깊은 심계에 의한 의도적인 행동이라면 단엽 사부는 나중에 살아날 확률이 높다.
그게 아니고, 미리 모든 계산(?)까지 하고 죽은 것이라면 제갈공명 100명이 와도 못 당할 사람이다.
그리고 용설아가 사라지고 나서 기억이 되살아나 호위무사로 들어올 때까지의 5년동안 단엽은 무얼 한 것일까?
사라진 아내를 찾고자 ‘이런 여자 못 봤소’ 하며 초상화라도 들고 집 주변에서부터 사방으로 수소문하고 다니다보면 용부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당장 소문이 나던지 무슨 일이 벌어져야 할텐데....
단엽사부가 막은 것이라 볼 수 있겠지만 아내를 애타게 찾고자 하는 남편을 사부라고 무슨 권리로 막을 것인가?
오히려 백방으로 도와 주는 척이라도 해야지.
그리고 맹각이 어떤 사람인데 도화랑군이 3일 달리고 다시 한 눈을 판단 말인가?
아무리 취음정에 취한 여인을 구하다 추격이 늦춰졌다고 하지만 3일 동안 안 잡힌 것만 해도 억지스러운 일인데 한눈까지 팔다니?
용설아가 다시 용부로 구출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우연과 억지가 있었는지 머리가 아프다.
중간 중간에 용설향이란 여자가 용부 제일의 두뇌 중 한 사람으로 나오는데 실상은 그렇게 뛰어나 보이지도 않아 어설픈 감이 있었다.
사공운을 잡기 위해 엄청난 사람들을 동원했고, 그 엄청난 사람들을 동원할 수 있는 여자기에 엄청난 두뇌의 소유자라는 삼단논법식 결론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한번쯤은 독자도 깜박 속을 만한 명석함이 보여지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한가지 덧붙이자면 주인공을 보고 주변인물들이 너무 많은 감동을 받는다.
그렇게 처절하게 싸우고 지쳐도, 막강한 적이 나타나면 언제 지쳤냐는 듯 또 이기는 주인공이기에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작가가 궁극적으로 감동을 시켜야 할 사람은 작품 속의 주변인물들이 아닌, 작품을 읽는 독자들이다. 작품 속의 등장인물들이 너무 많은 감동을 받다보면 독자들이 감동을 받을 여지가 줄어든다.
이상은 용설아에게 아들이 있다는 설정이 나오는 부분까지 읽고 느낀 점들을 적은 글이다.
이후, 기막힌 반전에 의해서 앞의 개연성부족이 말끔히 해결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너무 뒤로 밀리는 반전은 좋지 않다. 길어도 같은 권내에서 끝나야 한다.
사혼정은 태산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산 속에 사는 사람. 등잔 밑이 어두운 법입니다. 더군다나 산 속이란 말입니다.
그리고 사공운은 평민이었습니다. 또한 후에 사부가 한 말이 있었습니다.
호위무사를 읽다 접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것은 일부 작가의 책임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조금만 인내를 지니시고 끝까지 읽은 다음 글에 대한 평을 해 주셨다면 더욱 좋았을거란 아쉬움이 크게 남습니다.
물론 나 역시 완벽하지 않습니다.
일부는 눈에 거슬리는 것도 있고, 또한 오류도 있을 수 있습니다.
아직은 초보 작가입니다. 감안해 주신다면 작가로서는 더 없이 좋겠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후, 기막힌 반전에 의해서 앞의 개연성부족이 말끔히 해결될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너무 뒤로 밀리는 반전은 좋지 않다. 길어도 같은 권내에서 끝나야 한다.
이 말을 전 어떻게 받아 들여야 좋을지 고민입니다.
호위무사의 경우 일권의 복선이 마지막 권에 풀어지는 것도 있으니 말입니다.
혹시 내 글에 대해서 설명하는 중 민감한 부분이 있었다면 읽으시는 분들에게 미리 사과 드립니다.
일부 독자분들의 좋은 충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름대로 정성들여 평을 해 주신 청풍님에게 어떤 면에서 고마움도 느낍니다.
글을 수정하기전엔 사실 조금 화도 났었지만 다시 읽고 생각하면 그럴수도 있었겠다 이해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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