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춤법에는 무척 까탈스러운 사람이다, 내가.
하다못해 인터넷몰에서 뭘 구매하고는 배송원에게 남기는 글 한 마디를 적다가도 맞춤법이 헛갈리면 일부러 새 창을 열고 국어사전을 검색하여 올바른 표현을 확인해야지만 직성이 풀릴 정도다.
그런데 언어라는 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더 가변적이라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러니까 이게 옳다, 저게 그르다 하고 정해 놓은 것도 결국은 익숙해졌느냐 않느냐 하는 문제가 아닌가 싶다는 얘기다.
맞춤법 규정이 바뀌거나 할 때 특히 그 점을 실감하게 된다.
전에는 설겆이가 맞는 표기였는데 언제부터인가 설거지가 맞다고 바뀌었었다.
항상 설겆이로 적다가 설거지로 바꿔 적기 시작할 때는 저항감이 좀 느껴졌었더랬다.
하지만 자꾸 설거지로 적다 보니 이제는 설거지 쪽이 더 자연스럽게 여겨지게 되었다.
어릴 때는 항상 소고기 소고기 하던 것을 그건 틀린 말이라며 쇠고기로 바꿔야 옳다는 말도 들었다.
처음엔 영 어색해 하면서 마지못해 사용하기 시작한 쇠고기에 간신히 좀 익숙해졌다 싶자, 이번에는 소고기도 틀린 표현은 아니라며 소고기와 쇠고기를 병용하란다.
둘 다 허용된다면 그냥 쇠고기로 적기로 하였다.
헛갈린다는 표현도 마찬가지ㅡ
당연히 이게 옳은 표기려니 믿고 사용하였던 헷갈린다가 사실은 틀린 말이고 헛갈린다가 옳다는 사실을 2년쯤 전에 알게 되었었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도 한동안 계속 헷갈리다로 적곤 하였다.
말이란 건 결국 사람들의 약속 아닌가.
헛갈리다가 실제로는 옳은 말이더라도 실제로 말하는 사람들이 다들 헷갈리다라고 말하는 이상 사람들을 따라가는 게 순리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다가ㅡ 어느 게 옳은 말인지 알면서도 잘못되었다는 말을 사용하기가 아무래도 편안치 않아 어느 날인가부터 나 역시 럿갈리다로 적기 시작하였다.
요즘은 헛갈리다가 자연스럽고 헷갈리다가 부자연스럽게 여겨지기 시작한다.
사람의 말이란 것도 알고 보면 생각보다 허약한 물건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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