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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호정담

우리 모두 웃어봐요! 우리들의 이야기로.



작성자
Lv.96 강림주의
작성
14.03.15 01:38
조회
1,753

한국교육이 자주 하는 착각중 하나는, 무엇인가를 배울 때 시간을 ‘주입’하면 학업성취도라는 완성물이, 마치 가래떡 뽑듯 주루룩 밀려나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냥 시간을 주입만 하면 참 마법같이 완성물이 튀어나올 것이라 생각하니 공부는 엉덩이힘이라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겠지요. 그럴까요? 소수의 예외가 있을 지언정, 대체적으로 적용시키기는 힘든 말이라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중요하느냐, 저는 흥미와 자율성이 핵심이라 생각합니다. 사람이 배움에 흥미를 느끼면 스스로 하게 되고, 스스로 더 잘하는 방법을 찾아보고, 스스로 더 많은 것을 탐구하며, 스스로 더 깊숙히까지 파고듭니다. 박사과정까지 밟는 사람들은, 역시나 다양한 예외가 있지만, 대체적으로 본다면 대부분 그런 사람들입니다. 학문이 너무도 신비롭고 경이로워서, 아니면 너무나도 재밌고 너무나도 흥미로워서 논문 하나라도 더 읽어보려 하는 사람들이지요. 

배움의 즐거움이란 즐거움중의 으뜸입니다.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고,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어느덧 보이기 시작하며, 마침내 세상을 눈꼽만큼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는 것, 과거에는 미지로 남아있던 것이 이제는 인류 모두가 마음껏 활용할 수 있는 새로운 지식이 됬다는 것, 이 즐거움이 얼마나 대단한지요. 전 개인적으로는 과거에는 보이지 않던 것이 어느덧 보이기 시작할 때 가장 즐겁습니다. 과거에는 이해가 되지 않아 얼렁뚱땅 넘어갔던 것을, 이제는 사소한 것까지 깊이있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의 희열이 얼마나 대단합니까.

이것은 뇌에서 어떤 일이 돌아가는가를 감안한다면 매우 합리적인 결론입니다. 저희가 느끼는 기쁨은 뇌에서 돌아가는 보상 시스템에 의해 나타납니다. 저희가 무엇인가를 성취해낼 때와 자주 연관되기는 하지만, 그외에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실 때, 혹은 만족스러운 똥을 쌌을 때 만족감이 느껴지는 것도 보상 시스템의 결과입니다. 똑같은 음식 자주 먹으면 질리죠? 보상 시스템이 연속적으로 나타나는 똑같은 자극에 더 적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Skinner_box_scheme_01.png

이것은 보상 시스템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스키너의 상자입니다. 상자안에 갇힌 쥐가 이런저런 조작을 하면 다양한 반응이 나타납니다. 실험자가 어떻게 조작을 하느냐에 따라, 쥐는 상자에 중독이 되서 끊임없이 버튼을 누르거나 레버만 당길 수도 있습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것은 보상 시스템이 가지고 있는 패턴에 대한 집착입니다. 

사실, 보상 시스템은 보상 그 자체보다는 어떤 상황에 보상 시스템이 작동하느냐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나는 저번에 밥을 먹어서 보상 시스템이 작동했어, 나는 저번에 생수를 해서 보상 시스템이 작동했어, 나는 저번에 비디오 게임을 잔뜩 해서 보상 시스템이 작동했어, 나는 저번에 힘겨운 프로젝트 끝에 팀원들에게 인정 받고 승진을 해서 보상 시스템이 작동했어. 그러면 보상 시스템의 엔돌핀을 갈구하는 뇌는 보상 시스템이 작동하는 패턴을 기억하고, 분석하고, 더 효율적으로 반복하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습관입니다. 

이 모든 것의 결론은 매우 확실합니다. 학생이 배움으로부터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것, 즉 학생의 보상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강력한 학습동기입니다. 학생이 배움으로부터 즐거움을 느낀다면, 즉 엔돌핀이 분비되는 보상 시스템이 작동 된다면, 또다시 보상 시스템을 작동시켜 엔돌핀을 얻기 위해 또다시 기존의 패턴을 반복합니다, 즉 다시 배웁니다. 그것으로 끝나냐면 당연히 아니고, 학생은 더 많은 엔돌핀을 얻기 위해 기존의 패턴을 강화시킵니다, 즉 배우고자 하는 것을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보기도 하고 더 깊이있게 파고들며 이해하고자 합니다. 어떤 면에서도 잃는 것이 없는 완벽한 윈윈입니다. 학생은 스트레스를 덜 받고 신나서 좋고, 학습동기가 생긴 것도 좋고, 효율도 증가하고, 자연스레 학업성취율도 높아집니다. 가장 강력한 동기는 공포와 절망, 압박이 아닙니다. 그것들은 사람을 안에서부터 갉아먹고, 결국 장기적으로는 언젠가 쓰러지도록 만듭니다. 가장 강력한 동기는 희망과 즐거움입니다. 더 낫아질 수 있다는 희망, 너무 재밌고 즐겁다는 기쁨, 이것들은 사람을 근본적으로 바꾸어놓습니다. 인본주의적 가치가 현대에 들어서 강하게 부상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학생이 어떻게 배움을 즐기도록 만들까. 이것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습니다. 그중 하나는, 이제서야 제목에 적은걸 얘기하게 됬지만, 자신이 배운 것을 실제로 써먹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신이 배운 것이 현실에서도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흥미를 느끼기 쉽습니다. 제 경험을 얘기해보자면, 책 속에 적혀있는 글자들이 처음에는 그저 글자로 보였지만, 실제 현실과 연관성을 찾게 되니 사실은 이 글자들이 현실세계를 적어둔 것이구나라는 느낌이 확 들면서 흥미가 무지막지하게 생겨났습니다. 그래서 초등학교에서도 실험을 하는 것입니다. 책으로 읽는 것과 직접 보고 하면서 책속에 적힌게 현실에서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흥미를 쉽게 유발시키거든요.

진화심리학적으로 봅시다. 사람의 보상 시스템은 생존과 크게 밀접한 연관을 둔 채 발전되었습니다. 이것은 보상 시스템이 매우 기초적인 생존관련 부분들과 밀접한 연관을 두고 있는 것에서 보입니다. 목마를 때 물을 마시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습니다, 배고플 때 밥을 먹으면 시장이 반찬이고요. 추울 때 몸을 덥히면 세상이 다 녹아내리는 것만 같고, 더울 때 찬물에 뛰어들면 이곳이 바로 천국이구나 싶습니다. 아까 보상 시스템에 대해 말할 때 왜 똑같은 음식을 반복적으로 먹으면 보상 시스템이 둔해지는지도 말했지요? 그렇게 되면 더 강한 보상을 위해 자주 먹던 음식 대신 새로운 음식을 찾아볼 텐데, 그것은 자연스레 영양학적으로 균형이 잡힌 식사로 이어집니다. 똑같은 음식만 수년이고 먹는다면 영양학적으로 문제가 생기기 쉽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자연에서 생존할 때 영양학적 불균형은 제법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 기초적인 즐거움에서 한단계 더 나아가봅시다. 비가 내려도 비가 새지 않는 지붕을 짓는 방법을 알아냈을 때의 기쁨, 화살에 플렛칭을 달아서 더 안정적으로 더 멀리 더 강하게 활을 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을 때의 기쁨, 자고 일어난 후에 모닥불의 잔재에서 간단하게 다시 불을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을 때의 기쁨, 더 날카롭고 더 단단하게 창촉을 다듬는 방법을 알아냈을 때의 기쁨. 단순히 묘사를 보는 것 만으로도, 이런 상황에 어떤 원초적인 기쁨이 느껴질지가 왠지 느껴지지 않나요? 실제로 ’현실에 써먹어서‘ 현실을 더 풍요롭고 안전하고 생존하기 쉬운 곳으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을 ‘배울때’ 느껴지는 기쁨입니다. 

그러니 이거 배워서 어디에 써먹어요라는 질문은, 물론 언제나처럼 다양한 예외가 있겠지만, 대체적으로는 지금 배우는 것에서 흥미를 느끼기 위해 의미를 찾고자 하는 지루한 학생의 SOS라 생각합니다. 그럴 때는 그거 ㅄ같은 질문이라고 깍아내리기보다는 어떻게 써먹을 수 있는지에 대해 현실을 얘기하며 이해시켜주는 것이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수학 배워서 어따 써먹어요. 프로그래밍에 써먹을 수 있을지도 몰라. 

프로그래밍 배워서 어따 써먹어요. 최근 일어나고 있는 증강현실 붐에 끼어들어서 너만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진 새로운 방식의 증강현실을 개발할 수 있을테고, 최근 일어나고 있는 가상현실 붐에도 비슷한 원리로 끼어들 수 있겠고, 아니면 최근 뇌에 대한 이해도가 깊어져가며 뇌의 원리가 서서히 밝혀져가고 있으니 인간을 모방한 인공지능을 개발해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아예 로봇공학쪽으로 빠져서 스스로 행동을 학습하는 로봇 알고리즘을 개발할 수도 있겠고, 아니면 아예 시뮬레이션을 개발해서 현실을 컴퓨터 속에 옮겨 볼 수도 있겠지. 정 아니라면 마인크래프트의 컴퓨터크래프트 모드를 통해 마인크래프트 속의 마인크래프트를 만들어도 되고 말이야. SF로 들리신다고요?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현실입니다. 이미 이루어졌고, 이루어지고 있는 것들입니다. 

물론 배움으로부터 기쁨을 느끼는 방법이 저것 하나뿐인 것은 아니고, 저것이 언제 어디에서나 만가보도로서 사용 될 수 있는 방법인 것도 아닙니다. 현실은 하나로 다 해결해먹기에는 훨씬 더 복잡한 곳이지요. 하지만 저 방법이 방법중 하나인 것은 확실하지 않나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Comment ' 5

  • 작성자
    Lv.38 도버리
    작성일
    14.03.15 01:48
    No. 1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5 사정화
    작성일
    14.03.15 02:04
    No. 2

    교육에 대해서 약간의 관심이 있어서, 글을 읽으니까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들어주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44 홍백
    작성일
    14.03.15 02:23
    No. 3

    희망을 준다라. 정말 공감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6 네르비
    작성일
    14.03.15 12:10
    No. 4

    그렇지요.... 일례로 제가 고등학생일 때에 생활법률이라는 과목이 신설되었습니다. 학생들의 집중도는 그야말로 최상....! 등기보는 법, 유산분배 받는 법, 전세제도를 잘 활용하는 법, 복지제도를 이용하는 법 등이 인류역사에서 등장하는 법의 정신과 함께 교육되었습니다. 법에서 모르는 것은 죄가 된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얼마나 정곡을 찔렀는지 아무도 졸지 않았지요.
    안타깝게도 요즘 학생들은 그 과목이 외울 것도 많고 어렵다며 기피한다고 합니다만, 조금만 흥미를 가져도 굉장히 재미있게 배우고 익힐 수 있는 과목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일단, 어디다 써먹을지가 눈에 확 보이는 과목이잖아요? ㅎㅎ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7 레몬티한잔
    작성일
    14.03.15 15:20
    No. 5

    세상에 배움에 쓸데없는건 없다고 하죠. 심지어 주역을 배워도 점집이라도 차릴수 있으니까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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