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룡을 처음 본게 2003년 쯤이던가? 17세 대표팀에서였습니다.
그때 본 정성룡의 특징은...
“그 자식 목청 한 번 좋네.”
...였었고, 별명을 확성기라고 붙여주었죠.
킥이나 등빨 말고는 이렇다할 특징이나 특기가 없어서 당시 축구팬들 사이에서 이 친구가 국대키퍼가 될 거라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 시절에 이운재 다음에 누가 키퍼 하냐고 하면 나왔던 이름이 김용대, 염동균, 김영광, 차기석이었습니다.
김용대야 2002년 월드컵에 탈락한 후로 상당히 절치부심 하는 입장이었고, 기본 내공이야 있으니 운재나 병지 후계자 될 거라고 아무도 의심하진 않았죠.
염동균의 경우에는 히딩크가 훈련생으로 따로 차출했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고, 본능적인 선방능력을 한창 뽐냈던 김영광은 올리버 칸이랑 비교되곤 했습니다.
그리고 차기석... 정성룡과 비슷한 나이에 청소년 시절에 주전 골키퍼였습니다. PSV에서 주목할 정도였지요.
김용대와 김영광의 경우는 다들 팀에서 제몫을 하는 키퍼들로 성장했지만, 국대 간판 키퍼가 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이운재에 밀리고, 한창 폭풍 성장해버린 정성룡에게 밀려버렸죠.
염동균의 경우에는 말하기도 싫은 승부조작 사건에 연류되어 영구제명되었죠.
가장 안타까운 게 차기석인데... 만성심부전증 때문에 신장 이식 수술을 무려 2번이나 받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3부 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부천 FC 1995에서 2012년까지 뛰다가 연세대에서 코치로 있는 걸로 압니다. 얼마 전엔 박지성 자선 경기에도 참가했다던데...
아무튼 정성룡은 수 많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국대 간판 키퍼가 되었는데...
올림픽 메달 따고 군면제 되더니 그 때 부터 플레이가 굉장히 이상해 지더군요. 국대에서도 그렇고, 소속팀에서도 그렇고...
올림픽 때 보여준 악착같은 느낌이 없다고나 할까. 뭔가 낭창하다고 할까.(솔직히 그건 현재 국대의 올대 맴버들도 마찬가집니다. 기성룡이나 구자철 등등...)
이운재가 2010년 월드컵 마지막 평가전까지 뛰고 본 대회에서는 정성룡에게 밀려서 벤치를 지켰는데, 정성룡도 이번에 똑같은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더군요.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당시 최고참 키퍼였던 최인영이 긴장해서 삽질 뜨는 바람에 독일전에서 전반에만 3실점 하고 당시 새내기였던 이운재에게 장갑 맡기고 교체 되었는데, 홍으리 감독은 이 20년 전의 일을 과연하고 생각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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