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전에 숯가마 사우나에서 잠깐 일했었다.
내가 종사했던 열 가지 정도의 몸쓰는 일 중에서도 육체적으로 가장 힘든 일자리였다.
일 자체는 그리 힘들지 않지만 도대체 쉬는 시간이라고는 없이 열 시간씩, 열 두 시간씩 일을 하다 보니 그렇게 힘이 들었던 것이다.
ㅡ알아서 일하고 알아서 쉬어라.
말은 그렇게 하고 있었지만 막상 내가 어느 날 사람들 눈을 피해 쉴 수 있는 보일러실에 들어가 담배 두 대를 피고 십 분쯤 뒤에 돌아와 보니 나를 찾느라 온 사우나가 발칵 뒤집혀져 있었다.
그런 일을 겪고 난 뒤로는 다시는 내가 알아서 쉬는 시간을 만들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 사우나에서 내가 맡은 일은 남탕 청소였지만 실상 사우나 일 전반에 걸쳐 사람 손이 딸리는 곳은 모두 불려가곤 했었다.
게르마늄 실, 원적외선 실, 숯가마 실, 휴게실, 로비와 주차장 청소는 물론이고, 카운터에 사람이 없으면 카운터도 봐야 했고 매점에 사람이 없으면 빙수도 갈고 감식초도 타 주어야 했다.
처음 며칠은 견딜 만했으나 그런 나날이 계속되자 피로가 누적되어 하루에도 수십 번씩 그 자리에 드러누워 버리고 싶어지곤 하였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남탕 탈의실 바닥에 벌렁 드러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곤 하였다.
옷 벗으러 오는 손님 발소리가 들리면 즉각 일어날 수 있도록 귀를 쫑긋 세운 채로....
그런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체력의 한계가 느껴져 더는 버틸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결국 한 달을 채우고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하였다.
무슨 놈의 직장이 도대체 사람 쉴 시간을 안 주고 온종일 부려먹는단 말인가.
게다가 일을 마치고 나면 새벽 서너 시인데, 시내 버스도 다니지 않는 시간에 집까지 돌아가려면 매일 3,4천 원씩 택시비가 나가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한달 130만 원 월급을 받는 사람이 교통비만 10여 만 원이 드니 말이다.
월급이 나왔다.
처음에 나를 채용할 때는 하루 열 시간이던 근무 시간을 13시간으로 늘이면서 ‘대신에 보수는 좀더 생각해 주겠다’고 하더니 130만 원에서 일 원 한 푼도 더 주지 않고 있었다.(사실은 12시간이지만 정해진 시간에 내게 주어진 청소 일들을 모두 마치면 늘상 한 시간씩은 시간이 초과되곤 하였다.)
어차피 떠나려는 판에 얼마 안 되는 돈 때문에 싸우고 싶진 않았다.
각서를 써 주었던 것도 아니고 입으로 한 말이니 자기들은 그런 소리 한 기억이 없다고 나오면 나로서는 사실 따질 건덕지도 없기도 하였다.
그런데 일을 그만두겠다는 통고는 일 주일 전에 해두었는데도 새 사람을 아직 구하지 못하였으니 며칠 더 일을 해달라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기로 하였다.
사흘인가 나흘인가 더 그곳에서 일해 주었는데, 그 다음달 월급날이 되어도 내 통장에 넣어 주겠다던 돈이 입금돼 있질 않는 것이었다.
전화를 스무 번쯤 넣었다.
두 번인가는 직접 사우나에 찾아가기도 하였다.
그런데 매번 사장을 만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전화도 받지 않고, 만날 수도 없고ㅡ 고작 십여만 원밖에 안 되는 돈 때문에 이렇게 애을 먹이다니....
정말 얼마 되지도 않는 돈 때문에 아둥바둥거려야 하는 일이 치사하기도 하고 남부끄럽기도 하였지만 어쨌거나 내가 당연히 받아야 할 돈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좀더 생각해 주겠다’고 하였던 보수를 날름 삼켜 버린 거야 자기들이 잡아떼면 그만인 구두 약속에 불과했으니 내가 항의할 근거가 없지만 이건 얘기가 다르지 않은가.
몇 억인지 몇십 억인지 하는 사우나까지 갖고 있는 사람들이 부리는 사람 월급 몇 푼을 떼어먹으려 들다니....
결국 창원 노동청에 직접 찾아가 민원을 넣었다.
그렇게 전화를 해도 연결이 되지 않던 사장한테서 며칠 뒤에 전화가 걸려 왔다.
돈 몇 푼 때문에 왜 이 법석을 떠느냐, 돈을 받고 싶으면 자기한테 얘기를 하지 왜 노동청을 찾아가느냐고 나를 타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람, 나보다 열댓 살은 더 젊은 사람이 나한테 말을 탕탕 놓는 것이었다.
정작 그곳에서 일할 때는 그래도 그때 벌써 쉬흔을 넘었던 내게 나이 대접을 해준다고 말을 높여 주던 사람이 말이다.
말놓지 마세요, 말놓지 마세요, 두세 번 그렇게 항의를 해도 계속 반말을 하는 사람에게 나도 결국 말을 놓기로 하였다.
“아무튼 나한테 주어야 할 돈만 주면 되는 거야. 그러면 모두 해결돼.”
“또라이 같은 새끼!”
내가 자기한테 반말을 하는 것이 괘씸한지 그는 그렇게 욕설을 던지며 전화를 끊었다.
그 날인가 그 다음 날인가 돈이 입금돼 있었다.
자기 딴에는 나 같은 괘씸한 인간에게 한 푼이라도 더 돈을 주고 싶지 않다는 의사 표시인지 한달 월급액을 초과 근무일수로 나누어 일 원 단위까지 표시돼 있는 금액이 조금 우스웠다.
이렇게 정확한 사람이 십 몇 만 원은 왜 떼먹으려 들었니?
내가 사는 동네가 외진 산동네라 동네를 지나가는 버스 노선이 한정돼 있어 버스를 타고갈 때마다 그 사우나를 지나쳐 가곤 한다.(정확히 바로 앞은 아니고 그 사우나 간판이 비스듬히 보이는 네거리를 지나간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그 사우나 간판에 밤이 돼도 불이 들어와 있지 않은 것이 눈에 띄었다.
‘화수림’이라는 상호 글자가 빨간색이 되었다가 연두색이 되었다가 분홍색이 되었다가 하는 모습을 밤이면 볼 수 있었는데 웬 일일까?
어느 날 그 부근을 걸어갈 일이 있어 일부러 그곳까지 찾아가 봤더니 사우나 건물이 통째로 폐쇄돼 있었다.
사업 자금이 딸렸는지 어쨌는지 장사를 그만둔 모양이었다.
요즘 보니 다시 간판에 불이 들어와 있다.
2년쯤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으니 어쩌면 그 새 사장이 바뀌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기만 하다면 그 사우나에 손님 자격으로 한 번 찾아가고 싶은데....
숯가마라는 게 원래 그렇게 효과가 좋은지 몰라도 맥반석 달걀을 숯가마 열기로 굽기 위해 계란판들을 쌓느라고 한 십 분쯤만 숯가마 속에 들어갔다 나와도 몸이 가뿐해지곤 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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