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자판에 문제가 생겨 며칠 동안 화상 키보드로 글을 써야 했었다.
문장 하나 적는 데 2,3분씩 걸렸었다.
특히 ‘있’이나 ‘었’ 자는 한 번 적는 데 열 번쯤은 에러가 나오곤 했다.
그나마 며칠 동안 화상 키보드에 익숙해져 그 정도이지, 맨 처음에는 무려 서른 번쯤 시도를 하여 겨우 ‘있’자를 쓸 수 있었더랬다.
이 고생을 하고도 글을 쓰려 들다니, 나도 참 어지간하다 싶었다.
한국 문학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라도 쓰면서 이러는 거라면 이해가 될 테지만....
아무리 돈 사정이 빡빡해도 명색이 글을 쓴다는 사람이 문제 있는 자판을 그냥 둘 수는 없어 오늘은 기어코 노트북을 들고 수리 센터를 찾아갔다.
무려 11만 7천 원을 내란다.
그런 거금이 내게 있을 리 없다.
그 돈을 내면 다음 주쯤에는 말 그대로 담배 살 돈도 없어질 것이다.
난색을 짓는 나를 본 수리 센터 아저씨는 노트북에자판을 usb로 연결하여 사용하는 방안을 제시해 주었다.
며칠 전에 올렸던 글에 달린 어느 분의 댓글과 같은 방법이다.
노트북에 이것저것 주렁주렁 연결하여 사용하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갑갑해졌지만 그러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였다.
글을 안 쓸 수도 없고 지금 내 처지에 11만 원을 따로 돌릴 수도 없다.
내 행색이 꽤나 초라해 보였는지 수리 센터 아저씨는 일만 원짜리 자판을 8천 원으로 깎아 주었다.
지금 자판을 연결하여 이 글을 적고 있는데,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역시 궁하면 궁한 대로 길이 열리는 모양이다.
참, 수리센터에서 나와 도서관으로 가는 길에 나와 스쳐지나가는 사람 얼굴이 눈에 익은 듯하여 ‘혹시 아무개....?’ 하고 불러세워 봤더니 그 친구가 맞았었다.
십 년쯤 전에 컴퓨터 국비 훈련 학원을 다닐 때 같이 다녔던 친구였다.
그 친구도 행색이 엉망이었다.
옷차림이 남루한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얼굴 표정 자체가 만성적인 좌절감에 시달려 온 사람 특유의 찌들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내 얼굴도 이 친구와 별반 다르지 않겠지....
“요즘은 무협 소설 안 써?”
물어 봤더니 무슨 허황된 소리를 하느냐는 듯한 표정을 짓는다.
이 친구도 소설 쓴다고 버둥거리더니 그 간에 소설은 오래 전에 포기한 모양이었다.
나도 이런 길을 걷게 되지 않을까....
둘 다 직장을 잃고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끼리 십 년 만에 만나 봤자 같이 밥 한 끼 사먹을 수도 없다.
다음에 어느 한쪽이라도 형편이 좀 풀리면 그때 함께 술 한 잔 마시자고 하고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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