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12월 31일이면 나는 집안 청소를 깨꿋이 한 다음 목욕을 하러 가곤 한다.
정결한 몸과 마음으로 새해를 맞겠다는 것이다.
오늘도 방청소, 마루 청소를 마친 다음 갈아입을 옷을 챙기고 목욕탕을 향해 나서면서, 나는 자신도 모르게 콧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노래가 무슨 노래인지를 깨닫는 순간, 나는 화들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르긴 해도 지난 몇 년 동안 불러 본 적이 없던 노래, 바로 '국민교육헌장가'였다.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조상의 빛난 얼을 안으로 되살려....
노래는 거기서 더 생각나지 않았다.
하지만 곡조는 거기서부터 헷갈리기 시작하지만 노랫말인 국민교육헌장은 지금도 달달 외울 수 있다.
아마 나는 지난 30년 내내 저 노래의 곡조를 허밍으로 부르다가 그때마다 '내가 왜 이딴 노래를 기억하고 있담!' 하고 화들짝 놀라며 살아왔던 듯하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데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있는 법이다.
제대한 지 20년이 더 지난 지금까지 선명하게 외우고 있는 내 군번처럼.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로 시작하여 '새 역사를 창조하자'로 끝나는 저 글을 아마 박정희 자신이 쓰지는 않았을 테지만, 그러나 저 글은 모든 교과서의 맨 앞장에 '대통령 박정희'라는 선명한 필자 표시와 함께 실려 있었다.
우리는 모두 저 기나긴 글을 외워야만 했다. 역사. 민족. 자주 독립. 인류 공영. 약진. 공익. 능률. 실질. 숭상. 경애. 상부상조. 투철.....어린아이들에게는 너무나 딱딱하고 생경한 단어들로 온통 채워져 있던 그 기나긴 글을 말이다.
그때 내가 국민학교 4학년이었던가, 2학년이었던가....
흐린 구름이 잔뜩 끼어 있던 어느 오후, 정규 수업을 마치고도 저 글을 외우느라 모두 교실에 남아 있어야 했던 날이 생각난다.
우리는 한 명 한 명 차례로 선생님 앞으로 불려져 나가 '우리는 민족 중흥의....' 하고 타령을 시작해야 했다.
용케도 그 소독약 냄새 물씬한 단어들의 태클을 뛰어넘고 '대통령 박정희'란 골대에 '새 역사를 창조하자!' 하는 통쾌한 골을 차넣는 데 성공하는 아이는 우유맛 나는 급식빵을 상으로 받고서 집으로 돌아갈 자격을 얻었지만, 그러지 못하면 다시 자기 책상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내가 몇 차례 도전 끝에 집으로 돌아갈 자격을 얻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날의 그 음산하던 하늘빛은 그 교실이 있던 응달진 서향 건물에 칠해져 있던 청회색 페인트와 함께, 마치 그 음울한 시대의 상징처럼 내 기억에 각인돼 있다.
그 문장에 곡조를 단 것이 '국민교육헌장가'다.
아마 아이들로 하여금 국민교육헌장을 더 쉽게 외울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 만들었던 것일 게다.
노래뿐 아니라 '국민교육헌장'이란 제목의 TV 미니 시리즈도 있었다.
매주 국민교육헌장에서 따온 한 구절을 주제로 TV 드라마를 만들곤 한 것이다.
이를테면, '타고난 저마다의 소질을 계발하고'의 주간에는 학업을 포기하여야 할 처지에 놓인 소년이 기계 수리 방면에서 자신의 소질을 발견하고는 실의에서 벗어나 자부심을 되찾게 되는...,그런 식이었다.
지금은 연극 기획자로 이름을 떨치고 있는 중견 탤런트 송승환 씨가, 고지식한 탓에 집안식구들을 고생시키는 청렴한 공무원인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철없는 어린 아들 따위의 역할로 그 드라마에 자주 출연했었던 기억이 난다.
국민교육헌장 자체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그 문장 하나하나는 아무도 이의를 달 수 없는 공자님 말씀들이었으니까.
'너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났다'는 단언 앞에서 '아니오. 나는 그런 사명을 띠지 않았소' 할 수는 없다.
'능률과 실질을 숭상하자'고 권하는데 숭상하지 말자고 대꾸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렇게, 수긍을 할 수밖에 없는 소리 앞에서 일일이 수긍을 하다 보면 어느새 박정희의 충성스러운 신민이 돼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바로 그 시스템이 문제인 것이다.
아이들로 하여금 그렇게 박정희의 훈시가 담긴 글을 외우도록 강요하던 학교, 모든 교실에 당연하다는 듯이 걸려 있던 박정희 사진, 매일매일 이름표와 함께 달아야 했던 불조심. 반공방첩. 자연보호 따위의 표어들, 뉴스 보도에 들먹여지는 박정희란 이름 뒤에 단 한 차례도 빠뜨리는 법 없이 꼬박꼬박 '대통령 각하께서는' 을 붙이던 TV 아나운서....
그 시절, 박정희는 곧 국가였다.
박정희를 욕하는 것은 곧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행위였다.
박정희가 유신 체제에 돌입하려 하던 시기가 생각난다.
그때 내 주위의 어른들은 조심조심, 신중함을 넘어 비굴함에 가까운 겁먹은 태도로 정부에 대한 불만들을 교환하였었다. 그리고 수업시간에 땡땡이 한번 안 치던 모범생이었던 어린 나는 그런 어른들을 수치스러워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박정희가 만든 세상에 철저히 적응할 준비가 돼 있던 자신이 한심하기 짝이 없지만, 그러나 이는 역설적으로 희망이기도 하다.
지금 김정일을 저렇게 우상처럼 떠받들며 사는 북한 아이들도 겉으로 보이는 만큼 우리와 소통의 가능성이 아주 단절된 외계인이 돼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토록 흔쾌히 박정희에게 충성을 바칠 준비가 돼 있던 내가 차츰 나이를 먹으면서 이전과 다른 정보들을 습득하는 과정에서 박정희 숭배에서 벗어날 수 있었듯, 지금은 김정일에게 숭배를 바치는 이북 사람들도 여건만 조성되면 언제고 그 우매한 숭배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내 잠재의식 속에 유령처럼 문득문득 떠오르는 저 노래는 무엇인가?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오늘 내게 주어졌던 이런저런 자질구레한 정보들 중에서 과연 무엇이 자극이 되어 내 속에서 잠자고 있던 저 유령을 깨웠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유령은 한낮의 밝은 광선 속에서는 배기지 못하고 사라지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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