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피시방에서 일하던 시절의 글입니다.)
피시방 알바가 손님 개개인을 놓고 호감 또는 반감을 품는 것은 어쩌면 좀 우스꽝스러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똑같이 돈을 내는 손님이라도 마주치면 괜히 반가운 손님이 있는가 하면 문 열고 들어오는 모습만 봐도 이유 없이 짜증이 치미는 손님이 있는 건 사실이다.
우리 피시방에 오는 손님 중에서 호감 가는 사람의 대표적인 존재가 나와 거진 동년배로 보이는 어떤 남자 손님이다. 어쩌면 나보다 두어 살 더 나이를 먹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사람은 우선 얼굴이 참 착하게 생겼다. 인상이 너무 좋다.
'저 나이에 저런 기분 좋은 얼굴을 가지고 있다니....'
순하게 생긴 사람들은 흔히 모자라는 것처럼 보이기 쉬운데, 이 사람은 그런 느낌과도 거리가 멀다.
어느 집단에 들어가든 쉽사리 그곳 풍토에 적응하여 모나게 굴지 않고 정 필요하다면 동료들과 함께 더러 악덕도 저지를 듯한, 그러면서도 자괴감 따위에 빠지는 일도 없이 늘상 서글서글하게 웃고 다닐 듯한 그런 사람이다.
이 사람, 전직이 무엇이었는지는 몰라도 현재는 아마 대리 운전을 하며 사는 모양인데, 하룻밤에도 한두 차례씩 피시방에 찾아와 한두 시간씩 앉아 있다가 가곤 한다.
그런데 보통 2,3백 원씩 나오는 거스름돈은 받지 않고 그냥 나가는 것이었다.
그런 일이 거듭되다 보니 나로서는 은근히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팁이 정상적인 보수에 속하는 업종에 종사하는 것도 아닌데 아무리 푼돈이긴 해도 받을 이유가 없는 돈을 자꾸 받다 보면 사람 분위기가 천해질 성싶어서다.
고작 백 원짜리 동전 두세 개에 이렇게 신경을 쓰는 꼴이 어쩌면 대단히 좀스러운 모습인지도 모르지만ㅡ어쩌겠는가. 평생 이렇게 스케일이 작게 살아온 것이 나라는 인간인 것을.
그래서 컴 이용료를 500원 단위로 세분해 놓고는 카운트 프로그램에 찍혀 나온 금액에서 번차례로 한번은 조금 더 많이 받고 그 다음번에는 조금 덜 받는 것으로 내가 알아서 계산을 맞추곤 한다.
그런 방식으로 내가 자기의 '팁'을 사양하는 것을 그 사람도 알아차린 모양인데, 행여나 '그것도 팁이라고 주느냐'는 뜻으로 삐딱하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걱정하였지만 다행히도 그렇지는 않은 듯하였다.
그런데, 손님이 그렇게 마음에 들어 봤자 알바 쪽에서 그에 대해 특별 서비스라도 제공하느냐 하면 그런 건 또 없다.
그저 엊그제처럼, 마침 주변에 다른 손님이 앉아 있지 않을 때 벽에 붙어 회전하던 온풍기 바람을 그 손님 자리에만 가도록 다이얼을 돌려 주는 정도가 고작이다.
나중에 그가 떠나고 나서 자리를 치우러 가봤더니 온픙기가 꺼져 있었다.
그날 따라 한산하여 손님이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온풍기가 쓸데없이 돌아가지 않도록 일부러 꺼 주고 간 것이다.
나, 저 사람 너무 마음에 든다.
한데, 그와는 반대로 볼 때마다 기분이 나빠지는 손님도 있다.
자기 나이의 거의 갑절 가까이 먹은 피시방 알바를 너무 편안하게 부려먹으려 드는 청년이다.
이 친구, 화장실에 갔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가는 길에 커피 자판기 앞을 그냥 지나치면서 나를 향해 커피 한 잔 가져오라고 시킨다.
게임을 하다가도 수시로 내게 커피를 갖다 달라고 요구를 하곤 하는데, 그렇게 가져오게 한 커피를 입도 안 대고 그냥 식게 내버려 두었다가 나중에 새로 또 커피를 가져오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건 나이하고도 상관없는 문제인 듯싶다.
난 카페나 식당에서 다른 사람이 내 시중을 들 때면 공연히 미안해서 프리마 통이건 소금통이건 밑반찬 접시건 쟁반에서 내려놓는 일을 함께 거들어 줘야지만 직성이 풀린다.
젊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개점 시간에 백화점 같은 곳에 갔을 때 양쪽으로 도열한 백화점 직원들이 나를 향해 절을 해대면 그만 달아나고 싶어지면서 덩달아 맞절을 하지 않으면 마음이 편안하지가 않다.
아마 나란 인간은 타고나기를 천민으로 타고난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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