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어김없이 교육봉사를 나갔습니다. 매주 수요일은 거의 반드시 나갑니다. 예. 사실 이번 주가 마지막이지만요. -_-;
오늘은 영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저번에도 좋지 않았지만, 이번에는 우리 반 여자애 셋이서 자꾸 일찍 집에 보내달라고 온갖 거짓말과 술수와 협박을 동원해가며 떼를 쓰더군요.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이 자기들에게 밥 사준다고 약속했는데 약속 시간이 다 되어가니 보내달라고 아주 울고 불고 난리가 났는데...
아주 눈에 뻔히 보이는 거짓말이어서 바로 씹었죠. 학교에서는 수업 시간 준수하라고 했으니 저는 그것에 따라야 하거든요. -_-; 그런데 이 녀석들은 그 선생님과 전화해보라고 전화 통화까지 시켜주는데, 막상 받아보니 그 녀석들의 친구 녀석... 아놔 이 자식들 -_-;;
그렇게 생떼 쓰다가 갑자기 배가 아프다고 징징거리면서 보내달라고 하는데... 여태까지 거짓말한 녀석들이 이제 초등학교 선생님 거짓말이 안 먹히니까 레파토리를 바꾼 줄 알고 저는 당연히 또 씹었습니다. 근데 진짜 눈물 흘리고 장난 아니더군요. 나중에는 막 심각한 표정으로 말도 없이 먼저 집에 가버리는데... 저는 걔들이 무단으로 조퇴하는 줄 알고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냥 무시했습니다.
걔들 가고 나서 알고 보니까 다른 여자애 한 명이 다 썩은 미숫가루물을 가져왔는데 그걸 나눠 마신 듯... 그리고 진짜 배탈이 난 듯....;;
(근데 그 애는 저더러 그걸 마셔보라고 하더군요. 이 자식이 장난하나;;)
아무튼 애들 둘이 삐져서 나가버리고, 저는 기분이 꿀꿀해진 채로 수업이 끝난 자리를 남은 애들과 함께 정돈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오늘은 그 애가 오지 않나 온갖 노심초사를 다 하며 잔뜩 쫄아 있었죠. 그래서 빨리빨리 치우고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멀리...운동장에 그 애가 보였습니다. 예. 저 졸졸 쫓아다니면서 괴롭히던 녀석 말입니다. -_-; 이번에는 교실에 쪼르르 쫓아오지 않고 그냥 집에 가는 것 같대요? 저는 '아싸라비야! 오늘은 빨리 집에 가겠구나!' 해서 신이 나서 그 아이의 등 뒤로 바이바이를 해줬죠.
그런데 그 순간, 그 애가 갑자기 휙 돌아보더군요. 혹시 창문에 서 있는 저를 알아볼까 싶어서 저는 쫄아서 굳어버렸죠. 그런데 녀석이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다시 제 갈 길을 가더군요. 진짜 간이 콩알만해진 게 한 십 년은 수명이 줄어든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곱게 가나 했는데... 이 녀석이 자전거 보관소에서 자기 자전거를 풀고는 그냥 얌전히 집에 가면 될 것을, 제 자전거 근처에서 갸웃거리는 겁니다. '아오! 빨리 집에 안 가고 뭘해?' 소리쳐주고 싶었지만 꾹 참았습니다. 들키면 바로 여기로 달려올 테니까... -_-
근데 이 녀석이 자꾸 집에 안 가고 교문 근처에서 뭘 기다리는 듯이 꿈지럭거리니까 내 속이 타들어가더군요. '제발 집에 가라... 제발 집에 가라...' 하고 속으로 되뇌이고 있었는데....
그 녀석이 제 자전거를 만지작거리더군요. -_-
"야, 이 자식아! 내 껄 왜 만져! 빨리 집에 가!!"
하고 그 순간, 저도 모르게 냅다 소리를 질렀는데... 지르고 나서야 아차! 했죠. 하지만 그 녀석은 이미 제가 있는 창문 쪽으로 시선을 돌리더군요. 이미 엎질러진 물. ㅜㅜ
근데 눈치채자마자 바로 쪼르르 달려올 것 같던 녀석이 계속 꿈지럭거리지 뭡니까? '너무 멀어서 내가 누구인지 모르나? ㅇ_ㅇ;;' 해서 급안심하고 잽싸게 애들을 교실에서 내쫓고 교무실에 출석부를 던져 놓으러 달려갔습니다.
교무실을 나오면서 창 밖으로 녀석이 있나 없나를 확인했는데...
이제는 교문 근처에 그 녀석이 없는 겁니다!
아싸! 집에 갔구나!!
아주 기분이 좋아져서 저보다 늦게 내려오던 우리 반 녀석들이랑 같이 학교 건물을 나섰습니다. 나가기 전에도 미리 근처에 녀석이 혹시 매복하지 않았나 두리번거리며 온갖 생쑈를 하면서 나갔지요.
"뭐해요? 선생님?"
"혜수 녀석 있는지 확인해본다. ㅋㅋ"
"혜수 저기 있는데?"
"뭐? 교문에 없구만. 걔 집에 갔어. ㅋㅋㅋㅋ"
"아뇨. 저기. -_-"
애들이 손으로 가리키는 쪽을 보니까...
그 녀석이 자전거 위에 올라탄 채로 씩 웃고 있었습니다.
진짜, 레알 거짓말 안 하고 그 때 손에 들고 있던 초코파이를 툭 땅으로 떨어뜨렸습니다. -_-
젠장! 이 녀석이 정문으로 안 나가고 후문 쪽으로 돌아와서 제가 학교 건물 바깥으로 나오기를 기다렸던 거죠! ㅜㅜ
우리 반 녀석들은 "ㅋㅋㅋㅋ 선생님 바보 ㅋㅋㅋㅋ" 하면서 먼저 뛰어가버리고... 저만 덩그러니 남은 채로 그 녀석과 마주보고 서 있었습니다.
"여기서 뭐 하냐. -_-"
"^^"
"여기서 뭐 하냐고 젠장. 빨리 집에 안 가고?"
"내가 가든 말든 무슨 상관?"
"아놔, 집에 갈 거였잖아! 근데 왜 거기서 대기 타고 있냐고! 또 나 약올리려고 그러지?!"
"ㅇ_ㅇ 나 그냥 서 있었는데?"
녀석이 유들거리면서 말하는데 아주 쥐어박고 싶더군요.
"미친, 교문 앞에까지 가서 그냥 서 있는 녀석이 어디 있냐! 나 기다리고 있었잖아!!"
"난 그냥 서 있었대두? 얼마나 서 있든 내 맘이지. ㅇㅇ"
"-_- 지금 장난하냐?"
녀석은 계속 피식피식 웃어대고... 저는 점점 혈압이 오르고...
"입 벌려봐."
"?"
걔가 뭣 모르고 진짜 입을 벌리기에... 그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초코바이를 그냥 봉지째로 쑤셔박으려고 했습니다...
...'박으려고' 하기만 했습니다.
번개처럼 빠르게 제 손에서 낚아채더니 냅다 자기 손가방에다가 집어넣더군요. -_-;;
재빠른 자식;; 먹을 거 챙길 때만 빠르지?
기가 찬 저는 그냥 무시하고 가려는데 그 녀석이 자전거를 끌고 슬그머니 쫓아오는 겁니다.
"아오! 왜 쫓아오냐고!"
"그냥 나는 교문 쪽으로 가는 건데?"
"교문은 저 쪽이잖아, 저 쪽! 너 후문에 서 있었잖아!!"
"ㅇㅇ 내 맘이지."
"아놔 이 자식이 진짜..."
"근데 당신 왜 살아?"
"...-_-"
아오. 아주 이번에도 그 말은 반드시 빼먹지 않더군요.
짜증나서 그 녀석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가서 뚝 섰습니다. 제가 코앞에서 내려다보니까 녀석도 약간 긴장했는지 살짝 딴청 피우는 척을 하더군요. 그 상태에서 머리를 한 대 꽉 쥐어박아줬죠.
"아오, 기분 더러워. 왜 만지고 그래?"
"뭘 만졌다고! 니가 신경 거슬리게 하니까 한 대 박았지!"
"내 몸 함부로 만지면 어쩌구 저쩌구(제대로 못 들음)"
"아무튼 빨리 집에 가아앗!"
그러고는 휙 돌아서 정문 쪽으로 뚜벅뚜벅 걸어갔습니다. 그랬더니 그 녀석도 뭐라고 궁시렁거리면서 휙 돌아서 가버리더군요. 저는 혹시 다시 돌아오지 않나 한동안 힐끔힐끔 녀석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진짜 뒤도 안 돌아보고 그냥 그대로 쭉 가더군요.
'읭? 이번에는 군말없이 순순히 가네? 어헣헣 잘 됐다.'
그대로 후다닥 정문으로 달려가서 자전거 풀고 쌩 튀었습니다. 예.
오면서 한동안은 '오늘 하루는 무사히 끝났구나!' 싶어서 아주 싱글벙글하면서 달려왔죠. 예...
근데 가만히 달려오면서 생각한 건데, 아까 수업 끝나기 전에 우리 반 녀석들 두 녀석도 그렇고, 이 녀석도 그렇고 애들이 영 삐진 것 같단 말이죠?
가만 보면 방금 전까지 저 기다리느라 교문에서 꿈지럭거리던 녀석이 "집에 가!" 한 마디에 휙 돌아서 가버리는 게...
여태까지 팔을 툭툭 치거나 녀석의 뒷목을 부여잡거나, 머리카락을 살짝 잡아당기거나 하면서 화를 냈지만 이번처럼 머리를 쥐어박은 건 처음이거든요.
녀석이 평소와 다르게 저한테 들리지 않도록 뭐라고 궁시렁거린 게 아무래도 상처받은 것 같고...
근데 진짜 꿀밤 때린 것도 아니고, 그냥 주먹으로 살짝 때면서 꾹 눌러줬을 뿐인데! 진짜 눌러주기만 했다고요!! ㅜㅜ
꼴에 자존심은 더럽게 세단 말이지?!
ㅜㅜ 괜히 또 오늘 잘 나가다가 꼭 막판에 이렇게 망한단 말이에요??
이번 주 금요일, 그러니까 모레에 다시 나가게 됩니다.
이제는 마지막 시간이어서 애들 끝나고 뭐든 먹을거리 좀 사주고... 오늘 조퇴 안 시켜줘서 삐진 애들도 좀 달래려고 하는데...
이 녀석도 따로 불러서 어떻게 달래줘야 하려나요. -_-;
아놔 그냥 교육봉사일 뿐인데! 나는 교사 될 것도 아닌데!! 괜히 한 학기 동안 선생님 소리 좀 많이 들었더니 쓸데없이 교육자의 마인드가 생겨서 그런지 계속 신경쓰여서 미치겠네요.
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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