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론을 논하기에 앞서 이 글은 개인의 영리와 무관함을 밝힙니다.
요즘들어 장르시장이 죽어가고 있다는 건 다들 실감하고 계실 겁니다. 이렇게 장르시장이 축소되는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그중 하나는 작가들의 빈약한 상상력이 포함되어 있다고 여겨지고 있지요. 뿐더러 일부 부족한 필력과 어이상실 황당무계 논리개밥 역시요.
이에 저는 독창적인 세계관을 구축하여 정체된 장르시장의 변화를 주고 싶습니다.
그렇다고해서 누군가가 짜놓은 것을 네가 날로먹을 것이냐? 그건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전 변화를 주고 싶을 따름입니다. 이에 제가 구상한 소설내용까지 있고요.
근데 왜 이 글을 쓰느냐?
대필을 자청하는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기존의 틀을 깨부수기에는 하나의 작품으로선 부족하다 여겼기 때문입니다.
대학 입학하기 전까지 약 두 달의 시간이 남아있습니다. 사람에 따라선 하나의 글을 써 내려가기도 힘들겠지만, 저는 다른 이의 소재를 빌어(이건 제가 날로먹겠다는게 아니라 그분이 쓸 것들을 계속해서 말씀해 주시는 것을 뜻하는 겁니다. 저의 주관은 절대 배제한 채로요.)
두 작품을 동시에 집필하려 합니다.(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무상봉사로 영리와 무관/개인의 역량문제도 있겠지만 직접 부딪혀보고 조율해 나가겠습니다.)
끝으로 제 필력에 대해서 의구심을 품을 분들이 계실까봐 이렇게 제가 쓴 글을 올립니다.
(전국단위)공모전 관련해서 금상을 수상한 글입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자랑이 아닌 신뢰를 얻기 위함입니다.
-본 글은 장르문학이 아닌 순수문학입니다.
소재를 제공해주실 의향이 있으신 분은 댓글이나 쪽지를 보내주세요.
직접 문자나 전화를 걸어주셔도 됩니다.
010-3795-4167
소재와 더불어 앞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나 등장 인물 역시 제공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소재만 주시고 나몰라라 하시면... ㅜㅜ
전 어디까지나 대신 써주는 입장이고 글을 풀어 나가는 것은 소재 제공자의 몫입니다.
쌍방 중 한쪽의 부득이한 상황으로 협력관계가 끝난다면 전 미련없이 손을 놓을 것입니다. 서로 만들어 간 것은 소재 제공자의 몫이지 제 것이 아니니까요.
설령 이로인해 수입이 발생한다 해도 소재 제공자에게 모두 돌아갈 것입니다. 전 한푼도 받지 않을 것이구요.
영리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니라는거 부디 유념해 주시길 바랍니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 건데, 소재만 생각했지 그에 따른 구체적 이야기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시는 분들. 괜찮습니다.
앞으로 만들어 가도 됩니다. 친구분들과 함께 만들어 가셔도 되고 아니면 지인분들과 또 문피아 분들과 만들어 가도 됩니다.
말 그대로 전 대필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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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입김이 하얗게 말려 부서졌다. 한 해의 끝에 접어들어 부는 바람은 앙상하고도 삭막한 고요를 대지에 내리 앉혔다. 별이 자취를 감춘 도심하늘 아래 잿빛 구조물들은 흉물스런 외양을 벗어던지고 이지러지는 색으로 가장해 새벽의 공허를 지워 버렸다. 바글거리는 무리에 섞이지 못하는 고독한 시야에는 어지러운 빛을 뿌려대는 간판들이 혼탁하게 녹아들었다.
홍등이 점멸해가는 번화가를 벗어나며 옷깃을 여몄다. 눈을 찔러대는 난잡한 네온사인 간판처럼, 무질서하게 섞인 향수가 옷에 배어 맞바람에 화악 풍겨왔다. 늘 끼고 다니면서도 이질감이 떨이지지 않는 화장품 특유의 그것은 머리를 아프게 조여 온다. 이는 현기증에 얼굴을 찌푸리곤 추위에 얼어붙은 다리를 재촉해 마저 걷고 있었던 길을 걸어 나간다.
곳곳에 균열이 인 콘크리트 좁은 담벼락 사이를 지나 골목을 빠져나온다. 몇 해가 지나도록 발에 익지 않는 하이힐을 신은 탓에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발이 비명을 질러댄다. 평소라면 쉽게 오르내렸을 계단도 오늘따라 유달리 멀어 보인다. 어색한 8자로 겨우겨우 걸음을 이어간다. 을씨년스러운 정적 가운데 ‘또각’ 거리는 소리만 요란하다.
별거 든 것도 없는 핸드백이 어깨 끝에서 무겁게 늘어진다. 전날 비가 내린 탓에 파인 곳마다 물이 한가득 고여 있다. 발끝을 잘못 디딜 때마다 철퍽, 물방울이 무릎 위로 튀어 오른다. 가뜩이나 피곤한데 짜증만 더해간다.
집으로 돌아와 날 괴롭히던 것들을 하나 둘 떼어내 바닥에 내팽겨 친다. 가면을 굳게 지켜주는 부품들을, 내일 일터로 향할 때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은 가볍게 무시하며. 발을 괴롭히던 구두, 초점이 어긋난 싸구려 렌즈, 어깨가 뻐근해지도록 짓누르던 짝퉁 핸드백, 덕지덕지 칠했던 화장들을 한 꺼풀씩 벗겨낼 때마다 콱 막혔던 숨구멍이 조금은 트이는 느낌이다. 이어서 한겨울 차디 찬 냉수로 화장품 냄새를 씻겨 내려 본다. 흐르는 물줄기가 살결에 퍼질 때마다 한기가 뼈 속까지 닿는 듯 오한이 인다. 그래도 꾹 입술을 깨물고 한참을 보낸다. 입술이 시퍼렇게 질려서도 멈추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냄새는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비누를 꺼내든다. 거품을 내어 온 몸에 문지르며 화장품의 잔향을 다른 냄새로 덧칠해나간다.
샤워를 마치고 나와서야 엉망진창인 집안 꼬락서니가 눈에 들어온다. 이리저리 널브러진 옷가지들, 수북이 쌓인 인스턴트 용기, 미어터져 포화상태를 넘어선 쓰레기통까지. 방 전체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지독하기 짝이 없다. 나는 그런 것들을 뒤로하며 옷을 챙겨 입는다. 어젯밤 이맘때에 걸려왔던 전화가 자꾸만 귓가에서 왱왱거린다. 흘려들었을 거라 무시했던 그 말들은 아직도 뇌리 속에 박혀 선명함을 유지하고 있다.
밖에는 인영들로 가득 메워졌어야 할 거리의 공백을 메우는 안개가 빽빽이 들어찼다. 사람들과 부대끼는 걸 그리 꺼리는 편은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이편이 나았다. 이따금씩 마주치는 ‘나’를 아는 이들의 눈빛은 하나같이 불쾌하기 짝이 없으니까. 동물원 원숭이 보듯 시간이나 보낼 요량으로 외곽을 겉돌 뿐인 시선들에 구역질만 치밀어 오른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걸음의 종착역에 다다라 기억을 더듬어본다. 이곳을 찾지 않은 게 얼마나 되었는지, 몇 달이 되었는지, 몇 년이 되었는지는 망각에 묻혀버려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내가 오지 않았던 사이에 변화라도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을 품고 문고리를 잡아당긴다.
듣기 싫은 마찰음 없이 문이 미끄러지듯 열리며 익숙한 것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기억의 잔상과 완전히 일치하는 그 모습에 나는 무언의 안정을 느낀다. 외로이 홀로 남겨진 침대에 겉도는 무미건조함. 그래,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의, 식, 을, 찾, 아, 가, 고, 있, 다, 고.’
고개를 도리질치고 시선을 침상으로 고정시킨다. 뒤이어 목구멍에 걸려 넘어오지 않던 한숨을 길게 내뱉는다. 비록 나란 존재가 결과로부터 비롯되었다하더라도 연이라면 이미 내 손으로 끊어버렸는데, 어째서 난 아직도 당신에게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그래, 모두 당신이 자초한 일이었을 텐데. 스스로 생각해봐도 한심하기 그지없다. 곱씹어보면 지금 이 자리에 서 있단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매몰차게 발걸음을 돌리려던 그 때, 문 옆에 놓인 한 장의 백지가 눈에 들어온다. 누렇게 색이 바랜 단 장의 방명록엔 무엇도 적혀지지 않은 공백으로 가득하다. 하긴, 무리도 아닐 테지. 하루 밥벌어먹기도 힘들었던 당신에게 병문안을 올 사람이 그 누가 있을 리가, 당신에겐 나밖에 없었을 텐데.
꿈을 꿨다. 몽롱한 의식의 공간에서 깨어진 꿈의 편린이 허공에 부유한다. 거친 삭풍에 깎여 나갔을 거라 여겼던 과거가, 내면에서 존재를 감추고 있었음을 인지한다. 동시에 내가 나 자신에게 연민을 느꼈던 그 날들이 생생이 스쳐지나간다. 손이 닿지 않는 흐릿함 속에서 조각났던 파편들이 맞추어져가며 정신을 더욱 깊은 곳으로 끌어당긴다.
계속되는 가난에 허덕여야 했었던 나날들이 어지럽게 뒤엉키며 생동감을 되찾아간다. 감았던 눈을 뜨고 세계를 바라본다. 닭이 울기 전 집을 나선 당신의 빈자리에 홀로 떨어야만 했던 어린 자신이 되어 세계를 바라본다.
좁아진 세계, 눈이 향하고 있는 그곳은 온갖 쓰레기로 가득했던 더러움 대신 따뜻한 이부자리가 놓여 있다. 창밖은 이미 빛이 닿지 않는 깜깜한 어둠이 잠식한 지 오래다. 끼이익, 듣기 싫은 마찰음이 경첩에서 흘러나오며 피곤에 절은 당신이 이곳으로 들어온다. 곧이어 당신은 무거운 짐 보따리를 내려놓고 나를 품에 앉는다. 포근하지만 상처 입은 육신 안에서 어린 동공의 흔들림은 서서히 멎어간다.
…. 처음부터, 부조리한 세계였다. 얼굴도 모르는 아비 따윈 내 알 바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의 모태는, 살아 숨 쉬는 매순간마다 너무도 혹독한 홍역의 연장선상에 놓여야만 했었다. 단지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남들의 배가 되도록 일을 했어도, 수중에 쥘 수 있었던 돈은 언제나 부족했다. 전기세에 식비, 허름한 집의 월세만으로도 버거운 살림에 나는, 어렸음에도 세상을 직시할 눈을 생존을 위해 터득해야만 했다. 그 때문에 나는, 마땅히 또래들에게만 주어졌던 특권도, 사치도, 즐거움도 모두 버리고 달려 와야만 했다.
그러나 그 뿐 이었다. 많은 것을 포기하고 달려왔던 삶, 그 속에서 한 순간 품어왔던 꿈의 날개가 꺾여나간 이후로부턴 조그만 미련조차 남아 있지 않을 터였다. 그런데…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것은. 마음을 다잡을 수 없는 착잡함에 식탁 위, 한 장의 사진을 눈에 넣어본다. 활짝 핀 개나리를 배경삼아 미소 짓고 있는 두 모녀를.
전해 듣기론 상태는 급속히 호전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날 보지도 못하고 미동조차 할 수 없었던 몸이 여러 자극에 반응을 보이는 수준까지 회복되었다고…. 의사는 이대로 간다면 머지않아 의식까지 되찾을 수 있을 거란 희망적 견해를 늘어놓았다. 기뻐해야 하는 걸까, 솔직히 나는 모르겠다.
잠시 거울에 비친 날 관조한다. 전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 그 커다란 괴리감 사이에서 나는 아무런 감흥조차 느끼지 못했다. 덕지덕지 화장품을 덧칠하고 빨간 입술로 웃음을 파는…. 그 자신이 이렇게 변하리라곤 꿈에도 몰랐었지. 깊게 눌러쓴 가면은 이제 완전히 동화되어 이젠 실체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문득, 과거의 잔재가 다시 의식 위로 떠오른다. 어릴 적, 샛노란 병아리 모자를 쓰고 십자가 아래에 섰던 그 날들이. 낡고 검붉게 부식된 판자 사이에서 있던 나를 딱히 여긴 목사의 인도로 교회에 발을 들여놓은 이후로부터, 기억은 시작된다.
탁한 것들 사이에서 세계를 받아들였던 나로선 햇빛에 영롱한 보석처럼 빛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찬란함은 실로 범접할 수 없는 엄숙한 성질의 것이었다. 나는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전처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노닐기보다는 그곳에서 멍하니, 유리조각들을 바라보곤 했었다. 여린 손을 꼽아가며 주일을 기다렸던 기억도 얼핏 스치는 듯싶다. 한글도 떼지 못했으면서 찬송가를 열심히 불렀고, 배가 고팠음에도 간식을 받아 집에 챙겨가기고 했었다. 그렇게 의미 없는 나날들이 흐르고, 자신을 ‘자각’한 나는 간절히 두 손을 모아 모든 것을 관장한다던 절대자에게 간청했다.
당신의 종이 청하노니 제발 이 불행을 거두어 달라고, 앞으론 당신의 충실한 사도가 되어 살아가겠다고. 세상 더러움에 물들지 않았던 아이는 신께서 소망을 들어주리라, 그리 믿었었다.
허나, 거듭된 불황과 단 하나뿐인 가족에게 병마가 찾아오면서부터 나는 그 행위가 부질없었음을 깨달았다. 그런데 십 수해가 지난 지금, 이제야 신이란 작자는 이제야 손길을 내미는 걸가?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그러나 손을 맞잡기 전 나는, 고개를 가로젓는다.
아니, 이젠 불가능하다. 이제 와서 무슨. 허나 알면서도 떨쳐내지 못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그곳으로 돌아간다. 벗어나지 못하고 늘 배회하는 그곳에서, 나를 맞이하는 앙상하게 마른 뼈 위에 덧댄 가죽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갈라진 살결에 미어오듯 가슴이 답답해진다.
목자의 비호를 받지 못했던 나는 언제나 상실을 겪어야만 했었다. 어리석게도 나는, 양심에 집착해 피할 수 있었던 아픔도 자처해가며 버텨 왔었다. 장차 자라나 성년이 되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란 희망 하에서. 허나 내가 품어왔던 날개를 꺾어버린 건 다름 아닌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존재였던 ‘당신’이었다.
무엇이 그리도 힘들었는지는, 나는 지금에 이르러서도 알 지 못한다. 허나 한 아이의 어미로서, 당신은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해서는 안 되었다. 가족이란, 적어도 단 둘뿐인 가족이라면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상의라도 할 수 있었을 터였다. 그렇지만 실상 당신은 그저 홀로 자신을 지탱해 왔을 뿐이었던가.
가족이라 여겼던 이에게서 받은 믿음에 대한 ‘보답’. 어쩌면 난, 아무런 언질도 없이, 날 홀로 두고 떠나려 했던, 홀로 짐을 버리고자 했던 당신에게 나는 일종의 배신감마저 느끼고 있는지도 몰랐다.
모성의 비호 아래, 따뜻한 온실 속에서 순수한 열정을 지켜왔던 나는, 그 날도 평소처럼 땅거미가 짙게 깔릴 즈음, 귀가를 준비할 무렵이었다. 갑자기 울리어오는 전화에 난 모든 걸 내팽개치고 달려 나갔다. 사고가 있었을 거라고, 제발 많이 다치지 말아주기를,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입 안에 단내가 풍길 지경에서도 이미 날 외면했었던 신에게 빌고 또 빌었다.
그러나 입원실, 그곳에 도착해 내게 돌아온 것은 [자살 기도, 의식불명 중태]가 적인 단 장의 흰 종이. 방금 전가지만 해도 터질 듯 뛰고 있었던 심장이 멎어버리는, 혈관 속을 미친 듯이 질주하던 핏줄기가 싸늘히 식어버리는 그 공허감과 허탈감은 이루 형용할 수 있었을까.
직후, 나도 감당하기 어려운 현실에서 벗어나 이 무거운 짐덩이를 내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맘이 모질지 못한 탓이 아니라 병상에 누워 하얗게 질린 얼굴로 신음하는 당신을 두고 차마 돌아올 수 없는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부터, 내가 나 자신을 부정해왔던 나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회상에 잠기면 잠길수록 자꾸만 눈앞이 뿌옇게 흐려져 간다. 의식이 돌아오고 있음을, 그 환히 반기어주던 반달 두 눈동자를 마주할 그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딱딱하게 굳어버렸던 육신은 점점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스스로 호흡할 수 없어 부착했던 기구도 떼어냈고, 미약했던 복부의 기복도 이젠 확연히 육안으로 식별할 수도 있었다. 가끔 눈꺼풀이 파르르 떨릴 때면 화들짝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초조해 하고 있는 걸까?
창틀 너머 넘실거리는 태양은 마지막 황혼을 불태워가며 방 안을 황금색으로 물들인다. 평화롭다, 라고 느낀다. 자신을 잠식해오던 화학 물결 속에 이리저리 치여 다니던 나와의 괴리감을 인지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병상 곁을 지키는 것이 일상으로 바뀌어버렸다.
화장실 찬물로 얼굴을 씻어내며, 눈을 감아본다. 거친 세상 삭풍에 맞서 감내해왔던 선택 옳은 걸까, 이 집착이 그른 것은 아닐까. 근래 들어 부쩍 자신에게 되묻는 날들이 잦아진다.
그러나 언제나처럼 의문에 답을 내지 못하고 다시 돌아간다. 내가 나임을 오롯이 증명해주는, 나를 지탱해주는, 지금도 살아 숨 쉬는 그 존재에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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