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박성호
작품명 : 이지스 AEGIS
출판사 : 드림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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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본인은 전경 제대자다. 그래서 <이지스>라는, 그리스 신화의 아테나 여신이 든 방패를 제목으로 삼은 판타지 소설의 출간 소식이 들리자마자 어서 읽을 수 있기를 고대해 왔다.
그리고 드디어 읽었다. 그에 대한 평을 써나가고자 한다.
1.
<이지스>는 제대를 사흘 앞둔 말년 수경을 주인공으로 삼은 글이다. 이 인물은 매유 유쾌한 성격을 보유하고 있다. 어찌 보면 평범한 대한민국의 청년같으면서도 보통 사람에 비하면 성격상 특이점이 보인다. 게다가 현역 의경들과 같은 시선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일반적인 사회인과는 조금 다른 사고방식을 엿볼 수 있다.
<이지스>는 이러한 주인공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는 시종일관 긍정적이고 엉뚱하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1인칭 주인공 시점과 코믹한 스타일의 소설의 결합은 유쾌한 주인공으로 융화된다.
출판사인 드림북스가 높이 평한 작중의 위트와 유머는 1인칭 주인공 시점이기에 빛을 발한다고 할 수 있다. 인물의 성격과 서술방식이 적절히 맞물리며 큰 효과를 이루었다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2.
<이지스>의 저자 박성호가 선택한 1인칭 주인공 시점은 글의 분위기를 밝게 이끄는데 주효했다 할 수 있겠지만, 그 이면에는 부정적인 면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지스>는 서술자가 자평하듯, 묘사가 빈약하다. 최소한의 묘사라고 좋게 말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엄연히 빈약하다 평하는 게 옳다. 그러나 저자는 묘사가 빈약한 원인을 서술자의 성격과 지식의 부족 탓으로 돌린다. 감성적인 면이라고는 눈꼽만치도 없고, 표현을 하고 싶어도 할 말이 없다 한다.
분명히 말해, 묘사가 너무나 빈약하다. 그러나 서술자의 스타일이라는 면죄부를 들이민다. 분명히 그럴싸한 논리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평을 하는 입장에서는 면죄부를 용납하기 힘들다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3.
<이지스>는 퓨전 판타지를 표방하고 있다. '의경'이라는 특수한 직급은 판타지 월드에는 없다고 설정되어 있으니 퓨전이라는 형태를 취해야 했던 당위성은 충분히 확립되어 있다.
그러나 주인공은 작중에서 자신이 리얼 월드로부터 왔음을 밝힌다. 이 과정에서 저자의 손이 닿았다. 저자의 입김 없이는 도저히 성립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판타지 월드의 누구도 주인공이 리얼 월드로부터 왔음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여기서 '누구'라고는 해도 작중에서는 겨우 두 명에 지나지 않지만, 그 둘이 모두 리얼 월드에 대한 관심이 없다는 점은 저자의 손길을 극명하게 시사한다.
작중에서는 리얼 월드에 대한 언급이 없다. 경찰과 의경, 의경의 시위 진압 대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주인공에 대한 것이라 할 수 있으며, 리얼 월드에 대한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작위성은 글의 진행을 부자연스럽게 만든다. 그리고 <이지스>에 등장하는 판타지 월드의 인물은 매우 부자연스럽다. 주인공에게 리얼 월드는 어떤 세상인지를 전혀 궁금해 하지 않는다. 주인공에게 판타지 월드가 어떤 곳인지를 신나게 설명하면서도.
작중 인물의 리얼 월드에 대한 관심은 진행에 크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다. 그것이 저자에 의해 부자연스러운 형태로 무시되었다는 점, 즉 작위성의 문제는 충분히 <이지스>를 평가절하할 수 있는 원인이 된다.
4.
<이지스>는 어디까지나 가벼운 글이다. 영화 300과 연관된 진압 사건, 그리고 화투에 대한 이야기, 그 밖에도 글이 진행되는 내내 가볍기만 하다. 읽는 데 부담이 없다는 건 <이지스>의 방향이기도 하고, 실제로 충분히 좋은 스타일이다.
다만 이에는 그 반대의 분위기를 표현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다. 계속 유쾌한 글이었기에 정작 진지해져야 할 때는 진중한 느낌을 살리기가 힘들다는 것, 아니, 진지한 분위기로 독자를 이끌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지스>는 아쉽게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2권의 전투 장면, 500명의 사람으로 5000마리의 오크에 맞서 싸우는 장면을 보면 여실히 드러난다. 사실상 2권 전체가 해당 장면의 연출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나 다름없으니만큼, 전투 장면의 중요성은 타에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전투의 진행 동안 서술자인 주인공은 상자를 쌓아 만든 단상 위에 올라가 전황을 한 눈에 파악하고자 했다. 곧, 해당 시점에서 서술자의 역할은 주인공이 아니라 관찰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저자는 서술자를 주인공의 위치에 그대로 둠으로써 관찰자로서의 역할에 부실했고, 독자를 장면에 끌어들이는데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괴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기본적으로 유쾌한 글이 유쾌하지 않게 되었는데, 유쾌함을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재미가 제공되지 않았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가장 재미가 없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글쓴이에게도, 읽는이에게도.
5.
<이지스>의 저자인 박성호는 육군 제대자다. 그런 그가 의경을 주인공으로 하는 글을 쓰기란 분명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이미 시작되었고, 의경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자료를 수집하는 과정은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하나가 빠졌다. '감수(監修)'라고 불리는 과정이 바로 그것이다. 쉽게 말하면 지도 및 감독이다.
저자는 의경의 생활을 직접 겪은 바가 없으며, 따라서 인터뷰와 자료 수집을 통하여 실제에 최대한 가깝게 표현하려 했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하더라도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는 현실적인 내부적 사정이라는 게 있는 법이다. 그것을 해당 상황에 처한 감독자로부터 지적받고 수정을 꾀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지스>는 현역 의경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글이다. 또한 이야기의 초반부는 주인공이 의경 생활을 하며 겪은 리얼 월드의 이야기가 저술되어 있다. 그러나 이는 현실과 괴리가 있다. 직설적으로 말하면, 전의경 제대자 또는 현역 전의경의 눈에는 너무나 많은 오류가 보인다.
용어의 사용, 전의경의 지휘체계, 대열의 구성, 시위대의 연설 및 시위 진행, 실제 상황의 흐름, 그 밖에도 연출의 부족 등이 너무나 많이 눈에 띈다.
아쉬운 것은 그 모두가 감수를 거치면 전혀 문제가 없도록 수정될 수 있는 문제점이라는 것이다. 출간 전에 원고를 전의경 제대자나 현역 전의경에게 보여주기만 했어도 됐을 것을, 그 과정을 빠뜨려서 전의경 관계자인 독자의 눈을 찌푸리게 했으니, 이를 어찌 용서하랴.
6.
가볍게 읽으려면 그리 문제가 될 것은 없는 글이다. 무난하다 정도로 평하면 무난하리라 여긴다. 어려울 것 없이, 슬슬 읽으면 술술 읽히는 글이다. 저자 또한 그러함을 추구하고 있으니.
다만 장점이 큰 만큼이나 단점이 크게 두드러진다. 저자의 시각이나 기교에 문제가 있다는 점이 더욱 아쉽기도 하다.
권이 진행될수록 점점 많은 문제가 불거져나올 것이다. 전지적 작가 시점과 별다를 것 없는 활용 형태를 보이는 시점, 문장과 문단의 불분명한 처리, 서술자의 근거 없는 발상 전환, 장면 연출의 미숙 등은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점점 괴리감을 크게 만들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평하는 것은 실로 안타깝기 그지없으나, <이지스>는 싹수가 누렇다. 적당히 자라나는 것은 가능할 터이나, 크게 되리라고는 기대하기 힘들다. 즐거운 이야기를 써나가는 만큼이나 소설적 기교와 완성도에도 관심을 가졌다면 한결 낫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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