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사랑하고, 이별하고, 그리워하라.
출판사 : 문피아 연재작
저자 : 쿠쿠리야
- 잘 보았습니다. 굉장히 매력적인 이야기 구도였어요. 현재의 내가 끊임없이 과거와 그 전 과거의 시간 속을 역행하며, 그리고 그 속에서 만나는 사람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며 내 사랑, 내 철학을 구축한다. 정말 좋은 구도를 선택하셨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그 매력만큼 힘겨운 길이죠. 왜냐하면 시간을 정방향으로 이어나가지 않는 이러한 글은, 시간변동시 적당한 장치가 없다면 그 구도가 주는 매력 이전에 혼란을 부추기는 독이 될 뿐이기 때문이에요. 아직 그 혼란을 바로잡을 구심점이 분명하지는 않으나, 화가 진행될수록 그 장치가 발전하는 부분이 보이니 이는 제가 굳이 거론하지 않아도 작자님께서 앞으로 꾸준히 발전하실 것이라 믿고 말을 삼갈게요. 다만 이 구도와는 달리 계속 현상태로 유지하고, 이대로 계속 둔다면 자칫 글을 망치게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부분- 바로 이 소설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감성의 남용을 지금부터 거론하려고 해요.
이 소설을 읽었을 때 매력적인 구도를 선택하셨구나, 라는 생각과 함께 1인칭이 주는 이점을 잘 이해하고 계신 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1인칭이 가장 큰 장점은 읽는 독자가 이야기의 화자에 이입되기 쉽다는 점이 아닐까 싶어요. 그런 장점을 빌어볼 때 이 이야기의 흐름은 충분히 그것을 잘 살리고 있지 않나 싶네요.
주인공이 걷는 길, 그가 만나는 사람, 그리고 그 순간 화자가 지닌 감성 등. 그 모든 것이 나름 독자에게 충분히 전해지는 흐름으로 연결되어 있지 않나, 저는 개인적으로 생각했어요.
다만, 그 장점이 쓰인 만큼- 그 장점과 함께 발현되는 단점 또한 무시하지 못할 만큼 존재하고 있다는 게 아쉽네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서간체로 쓰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서간체소설을 읽고 있다는 착각이 문득 들었어요. 아마도 1인칭 사용시 겪게 되는 문제점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네요.
서간체에서 유독 두드러지지만, 굳이 서간체가 아니더라도 1인칭 소설에서 가장 쉽게 드러나기 일수인 문제점은, 지나친 감정의 남용이 아닐까 싶어요. 솔직히 1인칭이 3인칭보다 더 쓰기 쉽다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 이유는 아마도 주인공의 감성을 주르륵 이어가기만 해도 어느 정도의 양이 나오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그것에 적절한 절제가 없다면, 남용이 되고- 3인칭과는 달리 시점의 환기가 드문 1인칭에서는 그 남용을 초반에 막지 않으면 화가 진행될수록 커져만 가요.
이러한 남용을 막는 수단은 여러가지가 있는데, 작자님께서 그 브레이크 역할로 선택한 것은 아마도 타인의 말이 아니었을까 짐작해요. 하지만 그것이 잘 스며들지 못하고 작중에서 붕 뜬 느낌을 숨길 수 없네요.
타인의 말이란 것은 1인칭 주인공이 자신의 철학 속에서 이어나가는 이야기 속 개입하는 타인의 또다른 철학 그 자체이지요. 그리고 그것은 난발하던 주인공의 감성을 막아내는- 환기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듯해요.
아마도 요점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요? 타인이 자신의 말을 주인공한테 전할 때-특히 자신의 철학을 전개할 때 말이 길어지는 특성이 있었어요. 짧은 말로도 충분히 전할 수 있는 상황, 이야기를 지나치게 길게 늘려 전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네요.
독자는 바보가 아니죠. 가르치는 글이 아닌, 독자와 작자의 공감을 통해 완성되는 소설의 지은이는- 짧은 말로써도 충분히 그 이야기를 독자가 짐작할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고 봐요. 그런데 주인공의 감성을 절제할 수 있는 수단인 타인의 말조차도 이토록 길고,(짧은 말로 대체가 충분히 가능한 부분이 보이는데도) 설명조 투를 사용한다면 남용 위에 또다른 남용이 겹쳐 절제는 커녕, 오히려 더 난잡한 글이 되게 만드는 위험요소가 될 우려가 있어요.
절제, 이것은 분명 힘든 일이에요. 소설에서, 특히 1인칭 소설에서 절제를 둔다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지요.(이것은 초보와 프로의 차이이기도 하고요) 아마도 이것을 지나치게 신경쓰다보면 앞으로 쓰실 글이 초반부 이야기와 이어지지 않는 괴리감이 피어날 듯 보여요. 그렇다면 적어도 타인의 말만큼은 절제하여, 그것이 주인공의 남용된 감성을 환기시켜주는 수단으로써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한 번쯤 생각해 보시는 게 좋지 않을가 싶네요.
(남용되기 쉬운 감성을 정말 잘 절제한 소설, 저는 신경숙 작가님의 '풍금이 있던 자리'를 꼽고 싶어요. 1인칭, 심지어 문단에서 거의 금기시되다시피 하는 서간체를 사용하면서도, 절제와 절제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그 속에 묻어난 감성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거든요. 읽으셨을 거라 생각하지만, 아직 안 보셨다면 한 번쯤 보시는 거 추천!)
절제의 부족함을 말하며, 또 한 가지 더 말하고 싶은 것은 상징의 불명확성이 아닐까 싶어요. 특히 초반 1~2화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더라고요. 비틀즈의 노래, 그림, 그리고 주인공이 둘러보는 풍경. 그 하나하나의 의미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나열만 되고 있는 거 같아요. 더군다나 만나는 사람들은 분명 중요한 역할-주인공의 내적갈망을 두드리는 무언가임에 분명한데, 그들을 설명할 때, 그들의 속내를 말할 때 그것이 그저 긴 설명이 되어 흐르는 듯해요. 아무리 정밀하게 쓰고, 많이 쓴다해도 이렇게 그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상징, 또는 가치가 명확하게 불거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훑어 지나가고, 흩어져 잊혀지는 안타까운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요. 앞서 절제를 말할 때와 마찬가지의 말이지만, 요점을 분명하게 바로잡는 연습이 필요한 것처럼 보여요.(지극히 개인적인 말이에요. 그냥 흘려들으세요)
연애를 다루는 이야기는, 사람의 근본문제인 실존을 그 어떤 장르보다도 두드러지게 다루는 이야기라고 생각해요. 타인과의(이성친구, 혹은 스쳐가는 사람 등) 만남, 그 유대 속에서 서로의 존재를 핥아주고, 보듬아주며 주인공의 실존을 분명시해주고 그 성공 속에서 독자의 실존감을 고양시키기도- 만약 그 유대가 깨어졌을 시 그 분명해진 만큼 큰 실존의 상실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유도하는 이야기가 연애소설이 아닐까 싶네요. 이처럼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니고 있는 근본문제인, 실존을 다루는 만큼 섬세함이 그 어떤 이야기보다 크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절제된 섬세함으로 이야기 전체를 어뤄만져 완성도 깊은 작품을 써내려가주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끝으로, 글 마칩니다.
ps. 혹시 시간나시면, 비트겐슈타인의 언어철학 전, 후기를 살펴보시면 참 좋은 공부가 되지 않을까 싶네요. 말할 수 없는 것은 말하지 마라. 즉, 말할 수 있는 것만 말해라. 소설, 특히 이런 감성을 늘어놓는 글에 가장 도움이 되는 철학이 아닐까 싶어요.
아우... 그런데 이전에 썼던 글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좋은 글인데 아쉬운 면이 있다! 는 생각이 너무 강하게 들어서 좋은 말은 생략하고, 굳이 다른 연재작에 비하면 지금도 충분히 좋은 부분을 거론한 게 아닐가 싶어요. 이점 죄송합니다. 하지만 재밌게 읽은 독자의 말이니, 그냥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도 있구나~ 하고 흘려 보셨으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다음 편도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겠습니다~)
(일하면서 급하게 쓴 거라... 오타, 맞지 않는 표현 등은 역시 애교(..)로 봐주시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아직 이곳에 글 쓰는 게 익숙하지 않아서, 혹시 게시규칙 어긋난 부분 있으면 지적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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