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끝나지 않은 소설에 대하여 감상이나 비평을 올린다는 것은 참으로 위험하고 어설픈 짓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에게 장경이라는 이름은 살아있는 무협을 보여주는 몇 명의 걸출한 작가중에 하나였고 앞으로도 그의 소설 팬임을 기꺼이 말할 수 있기에 성라대연에 대한 나의 감상을 친구에게 보낸 편지로 갈음합니다>
호(虎)에게
작년 10월 성라대연이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퇴근길에 무협총판서점인 홍지서점으로 달려가 무슨 보물인양 두권의 책을 끼고 집으로 돌아와 아끼면서 읽기 시작하였다네.
너도 철검무정, 천산검로, 장풍파랑을 거쳐 암왕 빙하탄에 이르기까지 장경은 어느듯 한국무협을 대표하는 작가중의 한명으로 성장하였고, 나 또한 그동안 그가 다루어 온 변방의 이야기와 그가 추구(?)한 무협소설의 비장미에 가슴 깊은 감동을 느꼈온 사실을 잘 알거야.
누구에게 들은 이야기인 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장경이 자네가 공부하던 부산의 그 바닷가에서 책을 집필한다고 하던데 길거리에서 스치고 지나간 인연이 있었는지도...
작가가 서문에서 밝혔더니 성라대연은 주인공 소호가 원말 명초의 대격변기 속에서 종사로 성장해 가는 이야기 속에 청의자, 철용, 유소운, 여홍, 아민, 이시라 등 수많은 뭇별들이 이리저리 얽혀 돌아가는 이야기라네.
두권의 책을 읽는 동안 장경소설에 대한 나의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아니면 내가 뭇별들의 잔치에 초대받지 못한 아웃사이더인지 몰라도 집중력과 무협소설의 가장 큰 매력인 흥미가 일지 않았다네.
장경의 세련된 글 솜씨에도 불구하고 나로서는 수많은 별들이 등장만 하였지 개성을 가지고 살아 움직인다는 느낌이 오지를 않았고, 너무 잦은 인물과 장면의 이동도 짜증이 났고 결국 별 볼일 없이 사라져 버릴 것 같은 인물들의 이야기도 길게 늘어져 있어 다음 권에 대한 의욕조차 반감되어 버렸다네.
그후 3권.. 4권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좀더 모아 읽어야 성라대연에 대한 묘미를 느낄 것 같아 꾹 참다가 7권까지 모아 다시 읽어 나갔다네.
산왕 소호도 꿋꿋하게 성장해 나가고 뭇별들이 마구 떠돌다 자리를 잡으면서 초반부에 비해 훨씬 흥미롭게 읽었지만 그동안 장경의 소설에서 느꼈던 감동과 읽고 나서도 오랫동안 감돌던 여운은 결국 느낄수가 없었네.
내가 왜 이런 느낌을 가지게 되었는가?
무협에 대한 나의 열정이 식은 것은 아닌지? 이제 사십을 넘어 버린 우리들의 나이가 무협의 진보함을 따라 가지고 못하는 것은 아닌지 내내 황당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네.
하지만 나로서는 자네에게 성라대연에 대한 마지막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네.
이글은 전체적으로 장경의 새로운 시도이고 보는 각도에 따라서는 상당히 잘된 글이라고도 볼 수도 있겠지만 나로서는 이글의 가장 큰 단점은 갈등구조의 상실이라고 보네.
도대체 무협에서 갈등이 사라지면 무엇으로 긴장감과 흥미를 유발시킬수 있는가?
자네는 성라대연안에서 전개되는 이런 저런 대립과 대결을 내가 보지 못했다고 탓할 지 모르지만 나는 다시 한번 묻고 싶네.
주인공인 소호와 갈등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초반의 십만흑산영웅련? 중반 이후의 수진환? 마지막으로 아민 또는 아민과 대적하게 될 뭇별들?
이러한 갈등구조가 빈약하다 보니 소호는 7권에 이르러 아민을 탈출시킨다고 의형제와 대결하게 되고, 무당장문인 청명자를 살해하고 큰별 곽극마저 죽인 절대고수 수진환은 갑자기 나타난 조연 중의 조연 당효의 적성혈아표에 어이없이 유성처럼 떨어지네.
차리리 청명자를 살해한 사람을 찾다가 뼈저린 실패를 맛보고 폐관수련중인 청의자가 수진환를 만나 갈등을 일으키고 그 사이에서 소호가 고민하였다면 적어도 이렇게 씁쓸하지는 않았을 지도...
밤이 깊었네. 좀더 하고 싶은 이야기는 8권을 보고 하기로 하세.
자네의 벗 국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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