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다카노 가즈아키(...맞나?)
작품명 : 그레이브 디거
출판사 : 황금가지
13계단을 보면서 오, 이 작가 글 잘쓰네..라고 생각해서 질러 본 그레이브 디거를 다 읽었습니다. 13계단이 죄와 벌에 대해 약간 생각을 하게 해주는 정통 추리물에 가까운 작품이어서 비슷한 스타일을 기대했는데 약간은 다르더군요.
이 책은 약간 초현실적인 소재가 있습니다. 그레이버 디거라는 녀석인데...이건 밑에서 설명하기로 하고. 이런 오컬트와 현실이 섞여서 공포감을 주는 소재는 추리소설의 오래된 단골 소재입니다. 예를 들어 301호실에 유령이 살고 있다! 라고 했는데 그곳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유령이 죽인 건지, 사람이 죽인 건지 모를 사건을 주인공이 해결해나가는 식의 소설은 꽤 많습니다. 제가 본 물건 중에는 쓰르라미 울적에가 제일 재밌었습니다. 비쥬얼 노벨이라 소설하곤 좀 거리가 있는 물건이긴 하지만 오컬트와 현실이 뒤섞인 멋진 분위기를 풍기고 있고, 그걸로 일상적인 풍경을 공포스럽게 묘사해내는 솜씨가 탁월한 물건이였죠. 이 소설은 오컬트와 현실의 교차가 주된 소재는 아닙니다만 제목이 그레이브 디거인 만큼 약간은 그런 재미도 선사하고 있습니다.
그레이브 디거라는 제목의 유래는 작가가 창작한 영국의 복수자입니다. 마녀사냥에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가 무덤에서 일어나, 부패한 성직자들을 고문하며 죽였다는 설정으로 이 소설에서 상직적 의미를 부여받고 있는 소재입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전 범죄자입니다. 얼굴이 딱 범죄자처럼 생겨 항상 마음을 고쳐먹고도 항상 손해를 보고 있는 주인공입니다. 그래도 저지른 죄를 후회하고 있고 개과천선하기 위해서 골수이식을 준비하고 있는 착한(?) 악당이기도 하죠. 내일 골수 이식을 위해 병원에 입원을 해야하는데, 손발이 가로 세로로 묶인 채 삶아져 살해당해 버린 엽기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주인공은 용의자로 지목당하게 됩니다. 최고로 적합한 골수를 가지고 있는 주인공이 체포당할 경우에 이식받을 사람의 생명이 위태로워진다는 걸 주인공은 알고 있기 때문에 경찰로부터 도망치게 됩니다. 이 과정이 진짜 재미있는데 모 경찰 왈 "범죄자 도주 올림픽이라도 열린다면 녀석이 틀림없이 금메달을 딸 걸요." 랩니다. 진짜 잘 도망다니죠. 주인공이 계속 도망치며 사건은 꼬리를 물고 일어나고, 그레이브 디거의 등장과 함께 독자들은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범인이 누구인지, 정체가 무엇인지 짐작도 가지 않을만큼 사건들만 줄줄이 일어납니다.
그래도 주인공은 계속 도망칩니다. 경찰에게서 도망치고, 정체불명의 적에게서 도망치고, 온갖 곡예도 부리면서 병원으로 향합니다. 독자들이 책에서 눈을 돌릴 수 없을 정도로 긴박한 추격전이 계속 이어지고. 쫓기고 쫓기던 주인공과 얽히고 섥힌 사건은 마지막 대단원을 맞으며 모든 수수께끼가 풀립니다. 그리고 덤으로 마지막은 초현실적인 소재를 하나 던져주며 끝납니다. 이번에도 약간 법에 대한 생각을 해볼만한 소재도 하나 던져 줍니다만, 13계단만큼 비중이 크진 않습니다.
확실히 재미있고, 눈을 땔 수 있는 독자가 있다면 환불해준다는 카피를 내도 좋을만한 소설이라는 평에 걸맞는 소설입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주인공의 도주, 미궁에 빠진 사건에 대해 파헤치는 경찰, 주인공을 쫓는 경찰과 의문의 무리, 거기에 그레이브 디거. 이 요소들이 합쳐져서 엄청 재밌습니다. 다만... 좀 불만인 점도 있습니다. 전작인 13계단보다 개연성이 약간 약합니다. 그렇게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긴 합니다만, 후반부 여러 곳에서 보이는 멋진 연출들을 위해 약간 작위적인 설정이 쓰였습니다. 우연적 구성도 쬐금 보여서 추리소설로서의 점수만 매기면 100점을 주고 싶지는 않은 글입니다. 하지만 매력적인(?) 주인공의 도주는 그걸 덮고도 남을만합니다. 그레이브 디거, 추천합니다.
ps. 추리소설은 역시 까발리기를 피하고 감상을 쓰려니 너무 힘들군요. 재밌는 부분을 쏙 빼고 감상문을 써야 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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