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박성진
작품명 : 광마
출판사 : 로크미디어
단 한 차례도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의 어린시절부터 그가 이 세계에서 '소멸'하는 그 순간까지. 광마란 책은-, 마치 지독한 인연처럼 나의 손에서 책을 놓게 하지 않았다.
따분하고, 신변잡기적인 책은 삼십분이면 읽어버리는 나에게, 한 권의 책을 세 시간 아니, 그에 준하는 시간에 가깝게 읽게 만든 그 마력은, 나에게 의문점과 답을 동시에 주었다.
'광마'는 마귀와의 계약을 통해 첫 장을 열었다.
나는 이 소설을 색안경을 끼고 보았다. 광마. 미친 마귀.
딱 봐도, 흔히 말하는 먼치킨, 절대무공, 절대무적. 주인공이기에 기연이 있고, 필연이 있고, 무조건 강해지고, 이유없이 죽지 않는. 이미 제목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그 '비인간적인 강함'을 나는 싫어한다.
하지만, 광마라는 소설은 너무나도 명확히, 그가 강해질 수밖에 없고, 그가 인간 세계에 있어 악마로 군림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보여준다.
그는 하나의 인격체이면서도, 악마였다. 눈물을 보일 줄 알면서도 그 눈물이 슬퍼서가 아니라, 눈물을 흘리게 만든 자들을 처단하지 못해서라고 변명하는.
복수를 했지만, 그냥 마음에 안 들어서 죽였다고 변명. 혹은 진실을 말하는 그 속사정을 도저히 지금도 알 길이 없다. 마치 수수께끼와 같았다. 이 소설은-
처음의 음산함. 박력. 소마귀일 때의 적무한.
과연 그는 악이었을까?
그가 사랑하고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을 주위에선 끊임없이 몰아쳤다. 그는 강했고, 비범했으나 그런 모든 사건들을 통해서 얻은 것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허무. 좌절. 절망.
그는 사랑하는 사람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것은 처음이나 끝이나 똑같다. 그에게는 마치 지킬 권리 자체가 없는 듯했다. 파괴, 파괴, 파괴. 결국에는 자기 존재마저도 파괴하는, 파괴할 권리만을 가진 듯한 인간.
우리는 과연 그를 미워할 수 있는가?
그는 악했다. 자신의 적을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파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나지 않았다. 세상을 자신의 마음대로 농락했다. 죽였고, 죽였고, 또 죽였다. 피가 마를 날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정말 그 '적무한'이 그런 것일까?
그를 막으려고 했던 천마와 하후벽. 그리고 '악마'를 사랑한 손혜상은. 결국 그 누구도 지켜주지 못했다. 그에게 남은 것은 끝까지 절망 뿐이었다.
악은 정말로 악인가, 선은 정말로 선인가.
그 잣대를 구분지을 수 있는 사람이 정말로 있단 말인가?
만고부는 악이다. 자신들의 쾌락을 위해선 무조건 죽인다. 불행하게 한다. 사람을 절망케한다. 심지어 그것이 자신이 될지라도.
영겁조화문은 선이다. 만고부에 의해 고통받게 되는 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악을 처단할 수 있는 힘을 주었고, 용기를 주었다.
하지만-, 만고부는 정말 악인가? 영겁조화문은 일체 거짓 없는 선인가?
모용광은 구중어림위의 조장이었다. 그는 적무한의 양부인 적기상과 양모인 운가려를 죽였다. 그는 분명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그런 일을 저질렀다.
그런 모용광이 적무한에게 잡혀 어둠에 갇혔을 때. 수많은 절망과 낙오감에 빠졌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지 않았다. 결국 적무한이 환한 빛과 등장했을 때, 그는 자신이 살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이제 편히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죽든 살든, 그것은 희망이다.
보이지 않는 손이 개입한 것은 악이고, 모용광이 품은 희망은 선인가?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뭐든지 이중성이 있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물어서 선과 악을 결정 짓는 것은 본연 인간의 자세다. 예를 들어, 물건을 훔친 사람을 보았을 때 그것은 분명 나쁜 일이다. 그것은 '범죄'다. 하지만, 물건을 훔친 사람의 집엔 굶고 있는 처와 자식이 있다면? 그리고 그 물건을 훔쳤을 때 그 범인의 마음에 이제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면?
그것은 악인가, 선인가.
광마 적무한. 만고부의 백파천. 영겁조화결의 안효봉.
악, 마, 선으로 대변되는 대표적인 인물들은, 결국 악에 의해 모든 것이 먹혀버렸고, 악은 악끼리 다시 싸우기 시작했다.
손혜상은 적무한을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그의 목숨을 '파괴'할 권리를 찾았다. 적무한은 그녀를 사랑하진 않았지만, 그녀가 '파괴'되는 것을 원치는 않았다.
여린 것은, 여리기 때문에 파괴하기 쉽지 않다는 작가의 말.
아아- 그렇다. 끝내 적무한은 모든 사람을 구했지만, 그가 사랑했던 사람들 한 명도 구할 수 없었다.
그가 분노한 것은, 그가 파괴할 수 없던 존재가 파괴당했기 때문인가, 아니면 자신이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 때문인가.
많은 것을 던져주었고, 스스로 해결책을 찾게 해주었다.
이런 책은, 진실로 오랜만에 보는 대작. 대작이란 말이 아까울 정도의 거작이다.
그래서 이제 나는 책을 덮고 감상문을 쓴다.
광마 적무한은 모든 것을 태고로 돌려놓았다. 그 세계에선 무공도 없었고, 강호도 없었다. 모든 사람이 평등했으며, 육체적으로 단련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었다.
장풍도 없고, 지풍도 없다.
적무한이 원했던 세계가 그런 것이었을까?
무공이 없기에 모든 사람이 평등한, 하지만 그 세계에도 어느 순간 나타날 '불사조'란 존재. 작가는 마지막에 분명히 전했다.
'세상의 탐욕과 위선이 사라지는 날, 이곳에도 서광과 더불어 푸른 구름 피어나리라. 내린는 신우로 사막은 옥토로 변하고. 누리에 만발할 성화, 부드러운 감로. 열매로 풍요로워지는 세상을 꿈꾸면서.......' - 광마 中 발췌.
이 작품의 끝을 덮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과연, 이만한 작품을 다시 볼 수 있을까. 다시 보게될 수 있을까'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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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의 주인공은 너무나도 강합니다. 제가 쓰고 있는 소설 '귀골검(鬼骨劍)'의 주인공과는 반대되죠. 하지만 제 주인공이 추구하는 길과 적무한의 길은 비슷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하나하나 자세하게 읽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 작품을 더이상 볼 수 없다면, 저는 제 글에서 완성시킬 것입니다.
조금- 광오할지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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