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성상영
작품명 : 테페른의 영주
출판사 : 마루
그의 나이 예순 둘. 3서클을 마스터한 마법사이자 테페른 영지의 영주. 그는 수명을 다해 생을 마칩니다.
하지만 어둠 속에서 다른 차원에서의 전생을 기억속에 떠올리게 되고 그 기억과 함께 다시 육체에서 깨어나게 됩니다.
무림을 배경으로 한 전생의 기억 속에서 그는 자신의 꺼져가는 생명의 불을 다시 지필 방법을 찾아내게 되고 이를 위해 영지를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으로 이 소설은 긴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이 소설의 재미의 포인트는 전생의 여러 기억을 이점으로 활용한다는 것에 있습니다. 이를 이용해 능력을 크게 상신시키고 영지를 발전시켜 나갑니다. 독자가 재미있어할 만한 소재를 사용하여 이를 짜임새 있는 스토리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에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와 같은 환생과 영지발전을 소재로 한 소설의 경우에는 주인공의 지식과 그것의 운용이 소설의 재미를 판가름해 버립니다.
일컨데 영지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주인공의 지식이 독자의 지식수준보다 얕거나 크게 다를 바 없다면, 다시말해 이 소재를 위해 작가가 준비한 자료와 지식이 일천하게 느껴진다면 그 순간 급격한 평가절하가 시작됩니다.
그러한 모습은 독자가 보기에 단순한 생각에서 파생된 계획이 엄청난 좋은 결과로 이어진다거나, 혹은 딱 봐도 변수가 많은 계획이 상황에 조각맞추듯 들어맞고 다른 이들은 탄성을 내지르는 모습으로 나타나기 십상입니다. 독자는 그 소설의 인물전체의 두뇌 수준을 의심하게 되며 더 나아가 이를 소설의 수준으로 평가하게 됩니다.
테페른의 영주에서 작가는 고도의 지식을 바탕으로 정교함을 추구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대신 독자의 입맛에 맞는 스토리를 무기로 하여 재미창출이란 목적에 걸림돌이 되지 않을 수준 이상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는 다른 차원의 기술을 다른 세계에 결합시키는 과정에서 밸런스가 흐트러지기 쉽다는 것을 감안하면 성공적이라 평가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부분에서 오류가 생겨 독자의 의혹을 받으며 무너진 소설이 많이 있다는 것을 기억한다면 박수를 보낼 만 합니다.
덕분에 작가가 주인공의 이점을 살려 선택한 기술들은 스토리의 감칠맛을 더해 주었으며 주인공의 영지가 점차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주인공에게 다른 세계의 관념과 철학 그리고 세계관이 뒤섞이게 되고, 또 그의 생각을 현실화 시킬 힘이 뒷받침되면서 점차 이상화되어 가는 그의 영지를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됩니다.
노예 해방, 영지 백성들에 대한 복지개선, 병사들의 새로운 훈련방식.... 그러한 것은 소설 안에서 "대의"로 표현되며 주인공의 강렬한 의지이자 소설 전체의 목적으로 표상화되고 있습니다.
흔한 스토리이긴 하지만 이정도의 바탕을 갖춘 영지물은 흔하지 않기 때문에 영지발전소설을 읽고싶어 애가 탔던 분께는 목마른 대지의 단비와 같은 소설이 될 것입니다.
단지 아쉬웠던 점은 새로움이 부족했던 점입니다.
딱 한 가지 실질적 예를 들자면 이 소설에서는 여러 차원의 지식을 거론하며 주인공의 자아는 전생이라 판단되는 여러 사람의 기억으로 물들어 가지요. 하지만 주인공을 빼고는 다 지구에 살던 사람들입니다. 역사학자와 과학자 그리고 무림인. 이 셋은 모두 지구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무림인은 은나라 시대의 사람이고 역사학자와 과학자는 현대에 사는 사람들입니다.
왜 넷중 셋이 다 지구인이냐는 것은 주제넘는 참견이긴 합니다.
그런데 여러 차원이 실존한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소설의 바탕 세계에 직접적인 가상의 끈이 연결되어 있는 용계, 신계, 마계를 제외하곤 특별히 존재가 알려지지 않은 차원은 현재 지구밖에 나오지 않았으니 뭔가 한계를 가진 차원계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좀더 이런 부분에서 상상력이 좀더 발휘되었으면 좀더 개성적이었을 거라는 별것 아닌 불평은 조금 있습니다.
그러한 점을 제외하고는 이 소설은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만한 요소를 잘 갖추고 있었습니다.
지위건 명예건 돈이건 영토건 힘이건 어느 것 하나 모자람없이 성장하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은 독자의 대리만족을 충분히 시켜주고 있기 때문이니다.
단지 재미있게 읽은 것과는 별개로 적의 설정에 있어서는 개인적 취향에서 세 가지 측면이 마음에 안 맞았습니다.
남과 다를 수 있는 제 취향에 근거한 주관적인 감상이니 읽다가 거슬렸던 점을 맘 편히 적도록 하겠습니다.
1. 거대한 존재
한없이 튀어나오는 듯한, 세상의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할 수 있다는 듯한 거대한 존재와 음모는 상당한 부담을 줍니다. 이러한 적이 부담스러운 이유는 그들이 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마치 주인공이 제어당하는 듯한 통제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의 전생의 기억을 가지게 된 것을 뻔히 알고 있는 듯 나타나는 몇명의 절대적 존재들. 그들은 한 장의 마지막 부분에서 몇줄로 등장합니다. 주인공을 그렇게 운명지었고 또한 방목하고 있다는 듯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렇게 세상에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이 자신들의 생각과 통제 범위안에 있다는 듯 뜬금없이 거대하고 추상적인 말들을 중얼거리며 대단한 척 폼을 잡다가 사라집니다.
이런 스타일의 존재를 작중 세계의 배경에 설정해 놓는 것이 이 작가의 스타일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남의 손가락 아래 조종되고 있는 듯한 주인공의 모습은 개인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을 뿐더러, 그가 다른 이보다 앞서나가고 있는 배경의 이점이 다른 이에게도 드러나 있다는 느낌에 소재에 대한 매력이 줄어들었습니다.
자유성이 제약되고 마치 한계가 규정되어 진 것 같다는 뭔가 암울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전 저런 스타일을 싫어하지만 같은 상황에서도 이러한 것을 느끼느냐 느끼지 않으냐는 것은 사람 마다 다르기 때문에 개인적인 투정일 뿐입니다.
2. 스토커 네크로맨서
주인공은 우연히 마차를 습격하는 네크로맨서를 마주치게 됩니다.
"흐음 이 마력장은? 오호 이런이런. 죄송합니다. 상당한 분이 계셨군요?"
주인공의 실력을 본 그는 대결을 하지 않고 떠납니다.
"흐음..부하나 늘릴까 하고 왔더니만.. 이래서야 무리겠군요. 그럼 물러가도록 하죠."
이런 첫 만남.
이후 주인공은 한적한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수년간 살다가 다시 세상에 나오는데 이 때 주인공과 같이 있는 여자의 용모를 보고 도적떼가 꼬여들게 됩니다. 이를 공격하여 몰살시키는 주인공. 그런데 뜬금없이 이렇게 싸움이 끝난 자리에 아까 그 네크로맨서가 나타납니다. 마치 스토커처럼.
"흐음.. 예전보다 강력해 졌잖아?"
이렇게 중얼거리고 사라집니다.
그런데 이후에도 녀석은 주인공의 모든 움직임을 예상하고 있기라도 한 듯 주인공이 가는 곳마다 나타납니다.
다음에 만날 때는 주인공을 회유하려 하려다 실패했는데도 강한 주인공을 앞에 두고 여유를 부리며, "역시 저를 실망시키지 않으시는 군요."라며 오히려 칭찬을 합니다.
적에게 존댓말을 하는 그녀석의 말투가 거슬렸고 주인공에 비하면 별것도 아닌 주제에 모든 것은 내 예상 안에 있다는 듯 항상 여유를 부리는 이녀석을 콱 깨물어 주고 싶다는 충동이 들었습니다. 마침 주인공이 강렬한 기세로 이녀석을 무섭게 공격하지만 '팟'하며 사라집니다.
순간 이녀석은 준비된 적이구나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절대 죽일 수 없는... 아무리 필사적으로 그가 데려온 적을 공격하고 도살하더라도 마지막에 이녀석을 죽이려 하면 도망쳐 버리면 땡인 주인공을 위해 존재하는 질기고 질긴 '적'
과연 이러한 생각이 틀리지 않았는지, 이후에도 엄청난 전력으로 다시 공격해 오는 그녀석은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귀환주문마저 막혔는데도 불구하고 검은 그림자가 감싸는 시각적 효과와 함께 또다시 도망치는 가공할 생명력을 보여줍니다.
이보다 강한 듯한 녀석들도 주인공을 죽이려다 도망치지 못하고 죽어나가고, 주인공과 그 측근들도 그 네크로맨서보다 강하고 다재다능한데도 불구하고 위기상황에서 그렇게 확 사라지며 도망치지 못하는데... 저는 진정한 강함을 어떤 위기상황에서도 도망칠 수 있는 그 네크로맨서에게서 볼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생명력이 깊고 끈질긴 스타일은 사람 죽는 장면을 그다지 권장하지 않는 공중파 TV 만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데 한녀석이 질기게 살아서 계속 주인공을 도발합니다.
옛날 가즈나이트가 출판되던 시절 이런 스타일의 적을 바라보며 입었던 정신적 상처를 아직 치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 네크로맨서가 죽기 바라는 소망이 충족되지 않는 상태에서 소설을 계속 읽어나가다 보니 차라리 권왕무적처럼 '죽이고 또 죽이고 그래 다음 차례는 누구지? 다음 놈 이리 온'과 같은 스타일이 그리워졌습니다.
3. 죽여도 줄지 않는 적의 전력
비싼 갑옷을 걸친 수백명의 실력있는 기사들이 주인공에게 죽어나가는 데도 불구하고 별다른 타격이 없는 듯 새로운 전력으로 무장해 곳곳을 혼란케 하는 적의 모습..
아마 주인공이 죽여도 죽여도 또 새로운 전력이 등장할 것 같은 느낌을 주었습니다. 그동안 죽은 녀석들이 허약한 녀석들도 아니었고 한 나라에서 숨겨놓을 법한 큰 전력에 상응하는 집단들이었는데 이를 주인공이 그만큼 죽였으면 한숨 정도는 쉬어줄 만도 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헌데 '그래도 우리는 멀쩡해. 실패했으면 그뿐.'이라는 듯한 한계를 알 수 없는 적의 거대함이 너무 안개와 같았습니다. 헤쳐도 헤쳐도 그 끝이 안 보인달까요.
좀더 이 느낌을 정확히 설명하자면 다른 차원의 지식으로 믿을 수 없이 강해지는 주인공에 맞춰 소설에 거대한 적을 설정했다는 느낌.
때문에 초반에 죽이는 적들부터가 상당한 전력을 가지고 있다면 도대체 나중에 죽이는 적들은 얼마나 강해질까하는 생각에 밸런스 붕괴가 약간 우려되었습니다.
뭐 이런 세가지 생각은 모두 개인적인 취향에 거슬림을 주었을 뿐 그 자체가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도 있구나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하지만 취향의 무서운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아무리 문제가 없는 소설이라 할지라도 특정한 부분에서 취향에 거슬리면 소설을 덮어버리는 것이 취향이라는 것의 무서운 점입니다.
물론 테페른의 영지는 이를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외의 점에 있어서는 아무런 거슬림 없이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약자가 없고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대의를 실천하기 위해 그 힘을 키우고 영지를 불리는 주인공!
그가 과연 그가 가진 지식을 이용해 어디까지 뻗어나갈 수 있을까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주인공 테페른의 행보를 즐겁게 감상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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