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명 : 고동남
작품명 : 마법사의 도시
출판사 : 파피루스
마법사의 도시는 문피아 연재때부터 눈여겨 본 작품이었는데, 정작 책이 나온 뒤론 영 손이 안 가서 지금까지 놔두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늘 원래 구하려던 책이 없어서 그냥 있길래 집어 와서 읽었는데, 책을 다 읽고 나서 딱 든 생각이.
'오랜만에 배부르다.' 였습니다.
장르소설을 읽으면서, 요즘 주로 제가 책을 고르는 방법은 그 책만의 느낌이 있냐 없냐 입니다. 그냥 쉽게 말하면 소설이 뭘 말하려 하는지가 딱 느껴지는 소설을 좋아합니다. 그게 재미든, 작가의 생각이든요.
마법사의 도시가 포함되어 있는 이른바 '현대판타지'의 흐름을 간단히 풀어보면, '뭔가 비범한 능력이 있는 주인공이 배경이 현대인 공간에서 벌이는 활극'입니다. 요즘 나오는 현대판타지 소설들도 다 저 도식을 따르고 있지요. 저 도식을 어떻게 맛깔나게 풀어나느냐에 따라 소설의 재미가 갈립니다.
그런 점에서, 마법사의 도시는 상당히 맛깔나게 저 도식을 풀어내고 있습니다. 우선 주인공의 능력은 하늘을 훨훨 날라다니고 벽을 때려 부수는 등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는 다른 현대판타지와는 달리 소박합니다.그냥 호흡법을 통해 몸이 조금 강해지고, 머리가 뛰어난 정도입니다. 대신 이 능력을 얻는 과정을 작가는 '푸른 실'을 통해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푸른 실은 이게 뭔지 확실히 소설에서 설명되지 않습니다. 주인공도 이게 뭐지, 하고 차근차근 푸른 실에 대해 알아나가지요. 이 과정은 읽는 이의 호기심을 불러 일으킵니다. '대체 푸른 실이 뭐지? 어라, 색이 변했네?' 이렇게요. 무슨 무공비급이나 영약 먹고 부왘! 강해졌다! 이렇게 마무리 짓는게 아니라 '푸른 실'의 정체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유도하지요. 또 잊을 법하면 주인공의 꿈에서 등장하는 마법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얘가 대체 뭐지, 하면서 쭉 보게 되거든요.
그리고 주인공이 벌이는 활극 부분에서는, 이 소설은 정말 소박합니다. 미혼모인 어머니로부터 태어나고, 할머니 슬하에서 자라다가 결국 할머니마저 떠나고, 홀로 어린 나이에 세상을 살아가게 된 주인공. 일반인과 다른 주인공과 얽히는 사람들, 주인공의 일상생활 속에서 그 사람들과 벌어지는 이야기. 딱 이겁니다. 뭐 초능력을 휘두르고 괴물이 튀어나오는 건 없습니다. 그냥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그런 세상 속에서 주인공의 인생을 작가는 담담히 풀어냅니다. 어찌보면 지루해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그 담담히 사람 관계 등을 풀어나가는 스토리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주인공의 능력 부분도 있고, 세상에 원체 관심 없는 애늙은이 주인공이 서서히 변해가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밌거든요.
마지막으로, 이 소설에서 가장 마음에 든 건 소설에 어거지가 없다는 겁니다. 다른 소설과 마찬가지로 주인공은 어린 나이부터 비범한 능력을 보입니다. 근데 그런 주인공이 전혀 어색하지가 않아요. 작가가 주인공의 심리와 능력, 상황에 대해 공들여 설명해주니, 읽으면서 '오 그렇구나'하며 납득하게 되더군요.
어쩌다 보니 감상이 길어졌는데, 사실 이 소설을 책으로 나오고 나서 지금까지 안 읽었던 이유는 연재본만 읽어본 느낌으로 현 시장에서 필패할 글이라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쾌락을 추구하는 시장 흐름에서, 이 소설처럼 담담하게 주인공의 심리와 주변에만 포커스를 둔 내용은 안 먹힐 거라 생각했거든요. 일반 소설이라면 모를까...하지만 막상 읽어보니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습니다. 담담함 속에서도 뒤를 궁금하게 만드는 내용. 이정도 퀄리티라면 괜찮겠다는 믿음이 들었거든요.
아무튼, 요즘 쏟아지는 현대판타지 중에선 수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책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글이니, 이 글을 읽고 흥미가 당기셨다면 일독을 권합니다.
Comment ' 9